가르시 로드리게스 데 몬탈보
![]() 가르시 로드리게스 데 몬탈보 (Garci Rodríguez de Montalvo, 1450c. – 1505)는 14세기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세 권의 책으로 처음 썼던 기사 문학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현대판을 편찬한 카스티야인 작가이다. 몬탈보는 원작 시리즈에 네 번째 책을 추가하고, 그 뒤를 이어 라스 세르가스 데 에스플란디안이라는 속편을 썼다. 몬탈보가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주로 그 책 안에서 캘리포니아라는 단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몬탈보는 다음과 같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르시 오르도녜스 데 몬탈보,[1] 가르시아 구티에레스 데 몬탈보[2] 그리고 가르시아 데 몬탈보 엘 비에호.[3] 전기몬탈보는 스페인 바야돌리드도의 메디나델캄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메디나의 의회 정책을 지배했던 일곱 가문 중 하나인 폴리노 혈통에 속하는 영향력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이 혈통은 보탈로르노의 8대 영주 마르틴 구티에레스 데 몬탈보에서 비롯되었다. 한때 몬탈보는 메디나델캄포 시의원 직함을 가졌고 주변 마을의 서기였다.[3] 1482년에는 메디나델캄포에서 그라나다도의 알하마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부대에 속해 있었는데, 알하마는 최근 무어인에게서 탈환된 곳이었다.[4] 가르시 로드리게스 데 몬탈보에게는 페드로 바카, 후안 바카 몬탈보, 프란시스코 바카 세 자녀가 있었다. 그의 손자 가르시아 데 몬탈보는 1540년경 베네수엘라와 페루 정복에 참여했으며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의 정보원이었다.[3] 바야돌리드 대법원에서 진행된 소송 기록에 따르면 몬탈보는 1505년까지 사망했다.[3] 그의 작품 대부분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4] 라스 세르가스 데 에스플란디안몬탈보는 가울라의 아마디스 소설을 번역하고 재구성하며 자신의 네 번째 책을 추가하는 데 여러 해를 보냈다.[2] 그런 다음 그는 아마디스의 장남의 삶과 방랑을 다룬 속편인 라스 세르가스 데 에스플란디안(에스플란디안의 모험)을 썼다.[5] 속편에서 몬탈보는 인도의 서쪽에 있는 신화적인 캘리포니아섬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소설은 에르난 코르테스와 다른 탐험가들이 북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놓여 있다고 믿었던 "섬"을 발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539년, 코르테스의 위임을 받아 항해하던 프란시스코 데 울로아는 칼리포르니아만과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해안을 탐험하여 그곳이 섬이 아니라 반도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보는 지도학적 오개념은 18세기까지 많은 유럽 지도에 계속 남아 있었다.[8] 이 사가는 후대 작가들의 책으로 이어졌다. 이 책들에는 여섯 번째 소설인 플로리산도(루이스 파에스 데 리베라, 1510년), 이어서 그리스의 리수아르테(펠리시아노 데 실바, 1514년), 그리스의 리수아르테(후안 디아스, 1525년), 그리스의 아마디스(펠리시아노 데 실바, 1530년) 등이 있다.[5] 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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