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공학부(Airplane Engineering Department)는 미국 육군 통신대의 장비부(Equipment Division)에서 데이턴 (오하이오주)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맥쿡 비행장에 설립한 미국 항공근무대의 로 실험기술설비에 본부를 두었다. 부서는 1917년에 설립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공학을 실험하기 위함이었다.
1917년 6월, Raynal Bolling 래이넬 보일링[*]이 이끄는 항공기생산국의 프랑스 임무대가 영국과 프랑스의 항공기를 가져와[1] 이듬해 1918년 Jesse G. Vincent 제스 G. 빈센트[*] 중령[fn 1] 산하에서 영국과 프랑스에서 가져온 항공기의 미국형을 연구 및 설계하였다. 8월 31일에 공학부(Engineering Division)로 개명되었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오하이오주 페어필드,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있는 항공창의 통제를 위해 현장근무반(Field Service Sections (FSS))를 두었는데, 국외의 파나마, 하와이, 필리핀에 있는 항공창은 현지의 지부에서 통제하고, 현장근무반은 고문을 맡았다.[5]
1942년 4월 1일에 항공단 물자사령부(Air Corps Materiel Command)로 개명되기 시작하여, 1942년 4월에 항공대 물자사령부(Air Force Materiel Command), 1943년 4월에 물자사령부(Materiel Command), 1944년 1월 15일에 육군 항공대 물자사령부(AAF Materiel Command)로 바뀌었다.
1944년 7월 17일, 항공근무사령부와 함께 육군 항공대 물자근무대로 이름지어진 새로운 조직의 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항공기술근무사령부
항공기술근무사령부의 각 문장의 종류
육군 항공대 항공우주기술사령부의 패치
항공기술근무사령부의 문장 (WW2, 초기형)
항공기술근무사령부의 문장 (WW2, 후기형)
1944년 8월 31일, 육군 항공대 물자근무대는 육군 항공대 기술근무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45년이 되었을 때, 미국 본토 안의 항공기술근무사령부의 기지는 14개로 늘었고, 미국 육군 항공대의 미국 공군으로의 분리 계획이 시작되었다. 7월 1일, 육군 항공대 기술근무사령부는 항공기술근무사령부(Air Technical Service Command (ATSC))로 개편되었다.
1946년 1월, 미국 육군 지상군의 육군원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와 육군 항공대 대장 칼 스파츠는 미국 공군에 항공기술근무사령부를 포함한 7개 주요 사령부를 조직하는 사안에 동의하였다.
항공물자사령부
1946년 3월 9일, 항공기술근무사령부는 항공물자사령부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각 지역의 항공기술근무사령부 또한 항공물자지역대(Air Materiel Area (AMA))로 개편되었다.
↑Maurer, Maurer (1978), “The Final Report and a Tactical History”(PDF), 《The U.S. Air Service in World War I》 (Washington, D.C.: Officer of Air Force History, Headquarters USAF) One, 53–54쪽,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7월 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