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코노비치 메클레르
Григорий Конович Мекле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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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그리고리 코노비치 메클레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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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Grigory Konovich Mek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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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9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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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5년 8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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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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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소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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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소련군 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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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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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소련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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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코노비치 메클레르(러시아어: Григорий Конович Меклер, Grigory Konovich Mekler, 1909.06.26~2005.08.10[1])는 소련군 장교로, 1945년 해방 후 평양의 소련군정 시기 김일성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고문이었다.
생애
메클레르는 1909년 6월 26일 벨라루스(Belarus)의 바예보(Baevo) 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 대학 역사철학부와 동양학부 일본어학과를 졸업 후 소련군 정치장교로 복무하였다. 특히 소련군 제1극동방면군 정치공작 장교로 해방 전 88 국제여단과 관계를 맺었다.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해 대중조직 공작을 통해 북한의 소비에트화에 크게 기여하였다.[2]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김일성이 처음 대중 앞에 선보이며 연설을 하던 때에 사회를 맡기도 했다.[3]
그는 1946년 9월 평양을 떠나 소련으로 돌아갔으며,[4] 1955년 퇴역 후 소련 과학 아카데미 동양연구소의 전임 연구원으로 있는 한편 지질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일했다. 일﹣소협회 상무이사로도 활동했다. 러시아 공화국 문화공로학자의 칭호를 받은 바 있다.[2] 1982년부터 연금생활에 들어갔으며, 2006년에 사망했다.
그는 평양의 소련군정 핵심인사들 중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인물로, 소련 붕괴후 김일성과 평양 소련군정에 관한 많은 인터뷰에 응하고, 증언도 남겼다. [아래 참고]
그는 1946년 8월의 북조선 공산당과 신민당(연안파)가 북조선 노동당으로 합당하는데도 관여하였으며 당시 작성한 보고서가 남아있다.
메클레르의 후일 증언
- 김일성정권 내가 만들었다;소련군 정치장교 G.메크레르의 증언 <對談> / 메크레르,G·惠谷治 極東問題. 159(1992.5) pp.48-58. 極東問題硏究所
- Soviets Groomed Kim Il-Sung for Leadership Vladivostok News January 10, 2003
- Kim Il Sung's Soviet Image-Maker The Moscow Times Jul. 22, 2004
위 기사를 번역, 요약한 기사: 그리고리 메클레르, “김일성 지도자 만들기 구소(舊蘇) 군정 치밀한 작전” 동아일보 2004-07-23
- Тайный советник "солнца нации" Андрей Почтарев, Независимое военное обозрение. 2005-01-14
The secret counselor of the "sun of the nation" : Andrey Pochtarev, Independent Military Review. 2005-01-14
- "Крестный отец" Ким Чен Ира «Аргументы и Факты» 05/12/2002
"Godfather" Kim Jong Il : «Argumenty i Fakty (Arguments and Facts)» № 11 05/12/2002
- Сделан в СССР "Совершенно секретно", No.9/268, Опубликовано: 1 Сентября 2011 : SoftMixer
Сделан в СССР "Совершенно секретно", No.9/268, Опубликовано: 1 Сентября 2011 : Waback Machine
Made in the USSR, "Top Secret", No.9 / 268, Published: September 1, 2011
소련 군정 당시 메클레르 사진
아래의 처음 세 사진은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 당일에 찍은 것이다. 첫 사진에는 메클레르는 나오지 않으나, 그는 이 행사의 사회를 맡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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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의 김일성 사진. 앞줄 왼쪽이 강미하일 소련군 소좌(고려인), 뒷줄 맨 오른 쪽이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장. 메클레르 중좌는 이 집회의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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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이 평양에서 대중 앞에 처음 나서던 날의 사진. 좌로부터 강미하일 소좌, 김일성, 메클레르 중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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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 집회가 끝난 후 만경대를 찾은 김일성. 앞줄 왼쪽 끝이 강미하일 소좌, 오른 쪽 끝이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좌, 화살표가 김일성. 세 사람의 복장이 민중대회 행사 당일의 것과 동일하며, 김일성은 여전히 적기훈장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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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어느날 저녁 만찬에서 조만식(좌), 메클레르 중좌(중) 및 김일성(우)이 식사하는 모습.
각주
외부 링크
- 소, 조만식 대통령 구상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 중앙일보 1991.08.14 종합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