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수발총병연대(독일어: Garde-Füsilier-Regiment)는 프로이센 육군의 한 연대다. 베를린에 주둔한 근위군단에 속했다. 국왕 근위부대라는 고상한 성격상 소속 장교들은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다. 독일 제국 당시에는 노이에 바헤 경비부대가 이 연대 소속이었다.
1826년 근위예비보병(향토방위)연대(독일어: Garde-Reserve-Infanterie (Landwehr) Regiment)라는 이름으로 처음 편성되었다. 1851년 근위예비보병연대(독일어: Garde-Reserve-Infanterie-Regiment)로 개명하고, 1860년 근위수발총병연대라고 개명했다. 연대 본부와 제1대대는 포츠담에, 제2대대는 스판다우에 주둔했다. 1851년에서 1918년 사이에 연대 전체가 베를린의 마이케퍼 병영으로 주둔지를 옮겼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동원령에 따라 교도보병연대와 함께 제6근위보병여단을 이루어 제3근위사단에 속했다.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속을 유지했다. 수발총병연대는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하는 데 참여했고 이후 나뮈르를 함락시킨 뒤 동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제1차 마수리아 호 전투를 치렀다. 브셰지니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어 1개 대대 규모만 살아남았다. 동년 12월 1일 2개 대대 6개 중대로 재편성되었고 12월 22일 12개 중대가 되었다. 1915년 1월 수발총병연대 제3대대가 재편성되어 이후 연대는 그달 말을 카르파티아에서 보냈다. 이후 몇 달 동안 츠비닌 참호전에 참여하여 4월에 능선을 점거했다. 1916년 4월 서부전선으로 돌아와 샹파뉴에서 참호전을 치르고 솜 전투에 참여했다. 1916년 9월에서 11월 사이 잠시 동부전선에 갔다가 다시 서부전선으로 와서 로렌 일대에서 참호전을 수행했다. 1916년 12월 제2, 3기관총중대가 합류해 병력이 증강되었다. 1917년 아라스, 파스샹달, 캉브레 전투들에 참여했다. 1918년 초 독일군의 마지막 발악인 춘계 공세에서 수발총병연대는 극심한 피해를 입어 2개 대대 6개 중대밖에 남지 않았다. 4월 5일 3개 대대로 재편되고 1918년 9월 14일에는 1개 지뢰발사기중대가 합류했다.
전쟁이 끝나자 근위수발총병연대는 1918년 12월 14일 동원이 중지되고 베를린에서 해산되었다. 근위수발총병연대원 일부는 2개 자유군단을 이루어 이후 국가방위군에 합류했다.
Jürgen Kraus: Handbuch der Verbände und Truppen des deutschen Heeres 1914-1918th Teil VI: Infanterie. Vol. 1: Infanterie-Regimenter. Verlag Militaria. Vienna, 2007, ISBN978-3-902526-14-4, p. 27
von der Mülbe: Das Garde-Füsilier-Regiment. Zweite Auflage. Verlag R. Eisenschmidt. Berlin 1901.
Carl H. von der Schulenburg-Wolfsburg: Geschichte des Garde-Füsilier-Regiments. Erinnerungsblätter deutscher Regimenter (preuß. Anteil, Band 157). Oldenburg. Stalling.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