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라를 정복한 조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웠고, 진 시황제가 통일 진나라에 일괄적으로 군현제를 도입했을 때에도 36군 중 하나로 있었다.
전한
전한 건국 후 대나라를 분봉하면서 운중군·안문군과 함께 대나라의 봉토가 되었다.[1] 고제는 태원군을 봉토로 삼은 한왕 신이 일으킨 반란과 조나라와 대나라의 병권을 쥔 진희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후 옛 대나라의 영토에 태원군을 더해 대나라를 새로 봉했고,[1] 대나라는 이후 대부분의 존속 기간 태원군의 속현인 진양이나 중도에 서울을 두었다.[2][3] 태원나라나 한(韓)나라가 별도로 존재했을 당시 대나라의 서울은 명확하지 않다. 원정 3년(기원전 114년) 대나라가 폐지됐는데, 대군은 대나라의 내사지가 아니므로 이미 경제 3년(기원전 153년) 이후 제후왕국의 변군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한나라의 직속 군이 됐을 것이다.[3][4][5] 따라서 대략 기원전 197년 ~ 기원전 114년까지는 대군태수와 대상이 별도로 존재하게 된다.
유주자사부에 속했으며,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5만 6771호, 27만 8754명을 관할했다. 18현을 관할했다. 오원관(五原關)·상산관(常山關)이 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의 순서를 따르며, 일반적으로 첫 현이 군의 치소이다.[6] 지금의 다퉁시와 장자커우 시의 접경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