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데라 황도대![]() 덴데라 황도대(Denderah zodiac)는 덴데라 신전 단지에 있는 오시리스에게 봉납된 예배당의 주랑 현관에서부터 전해지는 황소자리(소)와 천칭자리(천칭)의 형상을 포함하는 널리 알려진 이집트 저부조 조각 작품이다. 그 예배당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후기에 개설되었고, 그곳의 주랑 현관은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서 증축되었다. 그것이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으로 하여금 그 부조의 연대를 그레코-로만 시대로 정하게 했지만, 그와 동시대의 학자들의 대부분은 신왕국의 것으로 보았다. 그 부조에서 보여지는 항성과 행성의 위치에 기인하여, 오늘날 그 부조의 연대는 기원전 50년으로 인정된다. 존 H. 로저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의 하늘에 대한 완전한 지도"라고 특징지은[1] 그 부조는 후일의 천문학체계가 기반했던 근거를 표현한다고 추측되어오고 있다.[2] 현재 그것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황도대는 각각 12일씩의 36 데칸(십분각)과 행성으로 구성된 황도대적 띠의 12 별자리를 평면 도법으로 보여주는 별자리판 또는 항성 지도이다. 그 데칸은 일등성의 무리이다. 그것들은 약 30일의 음력 주기와 항성 소티스(시리우스)의 태양과 함께 출몰에 기초하는 고대 이집트의 달력에 사용되었다. 그 황도대의 환상형의 표현에 있어서 고대 이집트의 미술에만 있는 독창성이 있다.[출처 필요] 더 전형적인 것은 같은 신전의 주랑 현관을 장식하는 직각의 황도대들이다. 천체의 원은 여성의 형상을 한 하늘의 네 기둥과 그 사이에 매의 머리를 한 요정들이 떠받치고 있는 원판으로 표현된다. 첫 번째 원에 있는 36 명의 요정은 이집트 달력의 360일을 상징한다. 안쪽에 있는 원 하나는 황도대의 별자리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들 중 일부는 (고대 그리스와 더 나중의 아랍-서양식 발전의 규약과 비교할 때는 대부분 짝이 안 맞는 방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양자리와 황소자리, 전갈자리 그리고 염소자리인) 그것들과 유사한 상응물과 같은 그레코-로만식 도상적 형태로 표현되었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더 이집트적인 형태를 나타낸다.: 물병자리는 물을 분출하는 두 개의 항아리를 들고 있는 범람의 신 하피를 표현한다.[출처 필요] 로저스는 "셀레우코스 황도대"의 잔존하는 세 개의 평판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코노그래피의 유사성과 "경계석" 쿠두루의 묘사와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요컨데, 로저스는 덴데라 황도대를 "메소포타미아 황도대의 완전한 복제품"으로 보았다.[3] 역사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동안에, 비방 드농은 더 널리 알려진 원형 황도대와 직각형의 황도대들을 그렸다. 나폴레옹의 원정 후, 1982년에 드농은 《위아래의 이집트 여행(Voyage dans la Basse et la Haute Egypte)》에서 신전 천장의 판화들을 출판했다.[4] 그것들은 그 황도대가 표현하는 시대가 수만년에서 수천년 또는 수백년까지의 범위를 정하는 것과 그 황도대가 별자리판인지 점성술 차트인지에 대한 논쟁을 유발했다.[5] 그 원정대의 일원인 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는 그 부조를 프랑스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1820년에 고대유물 상인 세바스티앙루이 솔니에르는 숙련 석공 장 바티스트 르로랑에게 의뢰하여 그 작업을 위해 고안된 톱과 잭가위, 가위 등으로 원형황도대를 도려내게 했다. 1821년에 그 황도대 천장은 복고왕정의 프랑스로 옮겨졌고, 루이 18세에 의해 현재의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가리키는 당시의 왕립 도서관에 설치되었다. 황도대를 둘러싼 논쟁은 "덴데라 사건(Dendera Affair)"이라 불리며, (그 연대를 기원전 2500년으로 판단한) 조제프 푸리에[6]와 토머스 영,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그리고 장바티스트 비오와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다.[7] 요한 카를 부르크하르트와 장바티스트 코라뵈프는 황도대에 대한 분석 후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분점의 세차운동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판정했다. 샹폴리옹은 덴데라의 신전 천장에 있는 티베리우스와 클라우디우스, 네로 그리고 도미티아누스의 이름을 판독했고, 그 황도대를 이집트 전역에 대한 로마의 통치 시대의 것으로 정했다.[8] 조르주 퀴비에 남작은 그 연대를 123년부터 147년까지로 보았다.[9] 1820년대에 그가 그것에 대해 이해한 것으로써 그 연대를 정하는 문제에 대한 그의 검토는 그 연대에 관한 추론의 개요가 된다. 위트레흐트 대학교에 있는 컴퓨터 지원에 의한 이집트학 연구 센터의 실비 코비아와 에릭 우보그는 매 천년마다 한번씩 일어나는 배치인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었던 다섯 행성을 나타내는 배치에 대한 실험과 두 번의 일식에 대한 확인을 통하여, 그것의 연대를 기원전 50년으로 보았다.[10]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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