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 다리
로토 다리(이탈리아어: Ponte Rotto)는 과거 아이밀리우스 다리(라틴어: Pons Aemilius, 이탈리아어: Ponte Emilio)라고 불린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옛 로마 시대의 다리이다. 처음에는 목재로 지어졌지만, 기원전 2세기경에 석재다리로 다시 지었다. 트라스테베레와 보아리움 광장 사이에 테베레강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고, 중류 지역에 있는 아치 한 개가 오늘날에 남아있는 다리의 전부이며, 이렇게 불안전한 모습에서 이름을 따 로토 다리(Ponte Rotto, 부서진 다리) 라고 부른다. 역사고전 시대다리의 가장 오래된 교각은 아마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아우렐리아 가도가 건설되던 때에 놓였을 것이다.[1] 티투스 리비우스는 기원전 192년에 이 다리와 똑같은 위치에 다리가 존재했었다고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석제 다리는 기원전 179년에 감찰관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가 건설에 착수했으며, 기원전 151년까지 완공을 하지 못했었다.[2] 교각 부분은 이 시기의 초창기에 지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치는 기원전 142년에 지어졌다.[3] 이렇게 로토 다리는 수백년간 있었다가, 아우구스투스 보수와 재건을 했었고,[4] 이후에는 서기 2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시기에도 보수가 이뤄졌다. 중세 시대![]() 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나서, 로토 다리는 모든 건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홍수들로 인해 손상을 입었다. 최초의 심각한 피해는 1230년에 입었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재건하였다.[2] 그후 로토 다리는 1557년에 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다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시기에 재건되었으며, 그레고리오 13세가 다리에 남긴 보수에 관한 라틴어 비문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5] 마지막으로 1575년과 1598년에 발생한 홍수가 다리의 동쪽 지역을 날려버려, 결론적으로 수 세기 동안 다리로서의 기능은 버려졌다.[2][6] 그후로 많은 시간 동안 낚시터로서 사용되었다[7] 1853년에 교황 비오 9세가 다리의 남은 부분을 철제로 육지와 연결하였지만, 무거운 금속이 석제 다리의 구조적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말았다[2][7] 남아있는 절반은 1887년에 팔라티노 다리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너트렸다[6] 각주
참고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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