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 (90년 집정관)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Lucius Cornelius Pusio Annius Messala)는 로마의 원로원 의원으로 90년 1월 13일부터 2월 말까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보좌 집정관직을 대체했다.[1] 그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라는 짧은 이름의 형태로도 알려져 있다.[2] 플로티우스 페가수스를 동료 집정관으로 둔 동명의 보좌 집정관이 베스파시아누스 집권기에 확인이 되었다.[3] 90년의 집정관의 존재가 증명이 되었을 때까지, 후대의 푸시오를 언급한 비문들은 이전의 푸시오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대표적으로 티부르에서 발견된 것이다.[4]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은 아니며, 그럼에도 동일한 이름은 후대의 인물이 이전의 푸시오의 아들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렙티스 마그나에서 나온 한 비문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의 존재를 레가투스 혹은 아프리카 속주인 프로콘술로서 나타내는데,[5] 이 점은 이전의 푸시오가 안니우스 메살라를 입양하였고 후대의 푸시오가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라는 이름으로 이끌어냈다.[6] 같은 시기,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가 83년에 보좌 집정관이라 확인되었으며, 그는 아프리카의 비문에서 언급된 인물일 것이다. 로널드 사임 등의 학자들이 제안한 또 다른 이론에선 '안니우스 메살라'라는 부분이 이전의 푸시오 가문의 어머니 쪽에서 온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7] 사임은 또한 가데스에서 나온 두 명이 친척일 가능성에 대한 증거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노예가 만든 비문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를 언급하는 동시에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L.f. 푸시오를 언급한다.[7] 아내 혹은 딸로 추정되는 코르넬리아 사비나가 만든, 티부르에서 출토된 비문은 90년에 재직 중인 두 집정관의 내용을 언급하는데, 푸시오는 축제와 경기 대회 (루디) 등에서 연회와 만찬을 주관하던, 로마에서 가장 저명한 사제단 4개 중 하나인 '셈템비리 에풀로눔'의 일원이며, 또한 103/104년 기간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속주의 총독이라는 것이다.[8]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는 '테스타멘눔 다수미'라는 다른 비문에서 언급되는데, 그가 108년 여름에 여전히 살아있었음을 나타낸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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