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만수 (고려)
류만수(柳曼殊, ? ~ 1398년)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자는 득휴(得休)이다. 생애고려사 세가 및 류만수 열전, 고려사절요 연대기, 조선왕조실록 연대기 및 류만수 졸기에 의하면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임명되고, 1363년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여러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우왕 초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쳐들어오자 이성계, 임견미, 변안렬 등과 함께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78년 12월 동북면으로 파견되어 호구(戶口)를 점검 계산했으며 1383년(우왕 9)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겸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問使)에 임명되었다. 당시 해도부원수(海道副元帥) 정지 장군과 함께 남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崇仁門) 방어전에서 최영(崔瑩)에게 패퇴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절제사(節制使)가 되어 이방과(李芳果 ; 후일의 조선 2대 정종 임금)와 함께 해주(海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弓矢)를 하사받았다. 이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 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더하여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면서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 편에 섰다고 하여 이방원에게 살해당했다. 가족 관계
류만수가 등장한 작품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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