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오티 가리발디

리치오티 가리발디(Ricciotti Garibaldi, 1847년 2월 24일 ~ 1924년 7월 17일)는 이탈리아의 군인이자 주세페 가리발디아니타 가리발디의 넷째 아들이다.

생애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으며, 반디에라 형제나폴리 왕국에 대한 실패한 원정 중 처형된 니콜라 리초티([[:it:{{{3}}}|이탈리아어판]])를 기려 이름이 지어졌다. 그는 젊은 시절 대부분을 니스, 카프레라, 영국에서 보냈다.

1866년, 그는 아버지와 함께 베체카 전투 (1866년)와 멘타나 전투 (1867년)에 참전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 아버지가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한 원정대에 참여했을 때, 그는 보주 아르메에서 싸웠으며, 그 과정에서 샤티용을 점령하고 푸이쉬르뱅장에서 디종 전투 중에 전쟁 중 유일하게 프로이센 깃발을 획득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시장 기업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그는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이탈리아 의회의 대의원이었다. 1897년 튀르크-그리스 전쟁에서 그는 다른 가리발디인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맞서 그리스군과 함께 싸웠다. 1900년 보어 전쟁 중, 그는 영국 정부에 자신의 검을 제공했다고 보고되었지만, 그의 제안은 거절되었다.[1]

여섯 명의 아들 중 페피노 (주세페 2세, 1879–1950)와 에치오 가리발디([[:it:{{{3}}}|이탈리아어판]])를 포함한 다섯 명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 중 두 명은 아르곤 공세에서 전사했다: 브루노 (1889-1914)와 코스탄테 (1892-1915). 그에게는 또한 1962년에 사망한 딸 아니타가 있었다.

리초티 가리발디는 1924년 리오프레도에서 사망했다.

가계도

주세페 가리발디아나 마리아 데 제주스 리베이루 다 실바
도메니코 메노티 가리발디로사 "로시타" 가리발디테레사 "테레시타" 가리발디리초티 가리발디해리엇 콘스턴스 홉크래프트
페피노 가리발디코스탄테 가리발디아니타 이탈리아 가리발디에치오 가리발디브루노 가리발디리초티 가리발디 주니어메노티 가리발디 주니어산테 가리발디

각주

  1. “Official Despatches”. 《The Manchester Guardian》. 1900년 1월 27일. 7면.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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