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후자 알프레트
리히텐슈타인의 알프레트 알로이스 에두아르트 후자(Prinz Alfred Aloys Eduard von und zu Liechtenstein, 1842년 7월 11일 ~ 1907년 10월 8일)는 리히텐슈타인의 후자이다. 생애1842년 7월 11일 프라하에서 리히텐슈타인 후자 프란츠 데 파울라와 에와 유제피나 줄리아 포토츠카 여백작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2년 아내, 자녀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하고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는 차남 알로이스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여대공의 결혼이 귀천상혼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알로이스와 그의 가족들의 오스트리아 시민권 포기 및 리히텐슈타인 시민권 취득을 결혼 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903년 4월 20일 차남 알로이스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여대공과 결혼했다. 1907년 10월 8일 프라우엔탈 성에서 사망했다. 사촌들인 요한 2세와 프란츠 1세가 자녀가 없어서 리히텐슈타인의 후위는 알프레트와 그의 아들들에게로 넘어갈 예정이였으며, 사망 당시 리히텐슈타인 후위 계승 서열 2위였다. 1938년 7월 25일 사촌 프란츠 1세가 사망하면서 리히텐슈타인의 후위가 알프레트의 장손인 프란츠 요제프 2세에게로 넘어가면서 현 리히텐슈타인 후작가의 직계는 알프레트의 후손이다. 자녀1865년 4월 26일 큰아버지 알로이스 2세의 7녀이자 친사촌인 리히텐슈타인 후녀 헨리에테와 결혼해서 슬하에 7남 3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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