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1731년)
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공녀(독일어: Maria Josepha von Sachsen, 프랑스어: Marie-Josèphe de Saxe 마리조제프 드 삭스[*], 1731년 11월 4일 - 1767년 3월 13일)은 프랑스 루이 15세의 아들이자 황태자였던 도팽 루이 페르디낭의 두 번째 아내이다. 루이 페르디낭과의 사이에서 9남 4녀를 얻었으며, 이중 살아남은 세 아들은 각각 루이 16세, 루이 18세, 샤를 10세로 모두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다. 생애1731년 작센의 드레스덴 성에서 15명의 남매 중 8번째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 국왕인 아우구스트 3세이며, 어머니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1세의 제1황녀였던 마리아 요제파이다. 1747년 2월 9일 15세 때 2살 연상의 프랑스 황태자인 도팽 루이 페르디낭과 혼인하였다. 당시 첫 번째 아내인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를 잃은 루이 페르디낭은 후계자를 낳을 두 번째 아내를 시급히 구할 필요가 있었는데, 사실 도팽의 아내로 처음 프랑스 왕실에서 고려한 인물은 죽은 마리아 테레사의 동생이자 역시 스페인의 왕녀인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onia)였다고 한다. 그러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과 모리스 드 삭스[1]의 설득을 받은 루이 15세는 작센 왕가와의 혼인 동맹이 정치적으로 프랑스에 더 이득일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고 곧 엘리노어, 마리아 루이사, 마리아 요제파 세 명의 작센 공녀 중 마리아 요제파를 새 며느리로 간택하였다. 이 혼인의 유일한 걸림돌은 마리아 요제파의 할아버지 아우구스트 2세가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의 친정 아버지이자 도팽 루이 페르디낭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를 폐위하고 폴란드 왕위에 올랐던 탓에 마리 레슈친스카가 혼인을 결사반대하였다는 점이었는데, 루이 15세는 이를 무시하였다. 또한 혼인의 배경에는 독일계의 왕녀들이 다산(多産)하는 경향이 있어 대를 이을 직계 남성 왕족이 많지 않았던 프랑스 왕실에 많은 후손을 낳아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하였다고 한다. 혼인 후 적대적인 시어머니와 아직 첫 번째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남편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능란한 처신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혼인에 결정적인 힘을 쏟았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과의 사이도 좋아 시아버지 루이 15세의 총애 또한 얻었다. 남편 도팽 루이 페르디낭과의 사이에서는 9남 4녀의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루이 페르디낭이 1765년 사망하자 2년 뒤인 1767년 사망하였다. 일화
자녀
각주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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