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으타질라파
무타질라파(아랍어: المعتزلة al-muʿtazila[*])는 바스라와 바그다드에서 번성한 이슬람의 사변 신학파로, 8세기 우마이야조에서 시작되어 9세기 무렵 압바스조 치하에서 칼리프 알마으문 치하에서 절정기를 맞았다. 특히 9세기 무으타질라 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을 이슬람 신학과 융합하여 독자적이고 정교한 신학 체계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이슬람 신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추후 이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되었고, 절충적인 아슈아리파 등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대표적인 무으타질라파의 이론가로 바스라의 아부 알후다일(아불 후다일), 낫잠, 바그다드의 비슈르 이븐 무으타미르 등이 있다.[1] 무으타질라파는 그리스적 유산인 합리성과 이성(아끌)을 중시하였으며, 이를 신학 학설 수립에 도입하여 논리적인 체계를 세운 것은 이들이 처음이었다. 이들은 이성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의문이 생기며, 그러한 의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무으타질라 신학이 수립된 이후 이처럼 합리적인 논리 체계를 갖춘 사변 신학을 비로소 '칼람', 칼람을 연구하고 논거를 통해 교의의 타당함을 옹호하는 사변 신학자를 '무타칼림'('대화하는 이'라는 뜻, 복수는 '무타칼리문')이라 부르게 되었다.[2][1] 정치적 관점에서는 무으타질라파는 여러 대립되는 입장을 융합하여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이로써 극단적 대립을 완화하고 정치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였다.[3] 기원사료에 의하면 무으타질라파는 8세기 중엽 생겨났다고 한다. 그 기원은 대죄를 범한 무슬림의 문제에서 답하는 과정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여 갈라져 나온 분파였다. 당시 이 문제에서는 여러 입장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대죄를 범한 이는 무슬림이 아니라는 카와리즈파의 입장과, 대죄를 범한 이도 무슬림이라는 무르지아파의 입장이 대표적인 극단이었으며 하산 알바스리 등의 비교적 절충적인 입장도 있었다. 어느 날 하산 알바스리의 제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하산 알바스리의 설명을 요구하였는데, 하산 알바스리는 먼저 곁에 앉은 제자 와실 이븐 아타에게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와실 이븐 아타는 대죄를 범한 이는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중간적 위치에 있다'는 대답을 하며 물러났다. 이를 두고 하산 알바스리는 '그가 물러났다(이으타잘라)'고 평했는데, 여기서 '무으타질라(스스로 물러난 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4] 핵심 주장무으타질라파는 발전해 나가면서 수십 갈래의 분파가 생겼으나, 기본적으로 무으타질라에 속한다고 하기 위한 핵심적인 교리는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되었다.[5]
이에 대해 간략히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5]
같이 보기각주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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