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페르디난도가 공작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1615년에 추기경직을 받았으나, 붉은색 모자를 받으러 로마로 가지를 못 했는데[3] 다음 해에 친척이었던 노벨라라 백작알폰소 곤차가의 딸이던 이사벨라 곤차가와 혼인하게 된 것이었고, 교황은 그의 추기경직을 회수했다.
그와 이사벨라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으며, 가문의 유일한 직계 남자였던 그는 새로운 아내를 들이려 했으나, 교황이 이혼을 허가하지 않았다.[4] 그러자 이사벨라는 마녀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로 밝혀졌고, 이후애 그녀를 살해하려 한 죄로 세 명이 처형됐다.[4]
빈첸초는 금전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해서 그림과 귀중품 몇 점을 팔아넘기도 했으며, 특히 영국의 찰스 1세에게 매각하였다.[4]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자녀가 없던 빈첸초는 조카 마리아 (전임 공작 프란체스코 4세의 딸)를 느베르의 샤를의 아들 곤차가느베르의 카를로와의 혼인을 주선하며 그의 영지에 대한 상속 준비를 하였다. 샤를은 그의 아버지의 친척이었다. 빈첸초는 마리아와 카를로가 혼인하는 날 사망했다.[4]
가족
빈첸초 2세 곤차가는 아내가 낳은 적자는 없었으나, 아들 네 명을 친자로 인정하였다.[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