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단독으로는 “보도”라고 볼 수 없으므로,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7조의 5에 정의된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에 해당하지 않으며, 제4조의 6에 정의된 ‘사진저작물’에 해당합니다. 또한 해당 사진은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이므로 제2조의 31에서 정의된 ‘업무상저작물’에 해당하며, 제41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발표일인 1966년 9월 22일부터 50년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따라서, 해당 사진은 위키백과에서 사용될 수 없으며, 저작권 침해로 삭제 신청합니다. - IRTC1015 (토론) 2010년 5월 22일 (토) 00:09 (KST)답변
당사자 문서에 넣는것이 당연한거지 뭐가 부족하다는 말씀인지요?--떠돌이 (토론) 2010년 5월 23일(일) 20:40 (KST)
이 내용은 김용옥이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족이 아니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사과하는 내용인데, 이 논의에 가장 관계 있는 사람은 김두한입니다. 김용옥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까지 내용에 추가시키자면, 김용옥이 어느 날 어떤 곳에 참가하고 왔다는 세세한 내용까지 적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5월 23일 (일) 20:43 (KST)답변
그러니까 자꾸 되돌리지 마시고 토론을 하자고 지금 여기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 아닙니까? 어떤 문서를 분류할 때는 대상의 주요 특징만을 담은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류가 늘면 늘수록 관련성이 낮거나 쓸데없는 분류는 점점 더 증가하고, 이런 분류는 문서를 정리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더위먹은민츠(발자취) 2010년 5월 26일 (수) 12:41 (KST)답변
그건 되돌리기가 아니죠. 아니 어쨌든 지금 되돌리기 문제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김구, 김영삼, 노무현 문서 등등에 붙어 있는 열몇 개의 분류가 전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분류는 사람의 인생을 기술하기 위한 문서 내용이 아니라, 단순히 문서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는 기술적 장치일 뿐입니다.--더위먹은민츠(발자취) 2010년 5월 26일 (수) 12:49 (KST)답변
(앞으로 당김) 위키백과에는 대단히 많은 분류들이 있지요. 개중에는 인물 문서에 붙이는 분류도 있고, 사건에 붙이는 분류도 있고, ... 뭐 가지가지입니다. 이번의 편집은 인물 문서에 붙어 있기에는 부적절한 분류를 빼고, 적절히 정리하는 것인데, 귀하께서는 무슨 근거로 그 많고많은 분류들이 다 붙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람다람쥐 (토론) 2010년 5월 26일 (수) 12:54 (KST)답변
중요한게 아니라뇨. 지금 님이 되돌리기로 시끄럽게 된건데. 그건 님의 개인견해구요. 개인견해로 활동하지마십시오. 그리고 김구 노무현 김영삼 문서는 오래전부터 저렇게 되어있는걸고 제기하시려면 해당 문서들에 가서 하시면 되는것이고 본사용자는 해당문서들에 편집도 안한 연관도 없는 사용자 토론에서 시간 용량낭비하지마세요.--떠돌이 (토론) 2010년 5월 26일 (수) 12:55 (KST)답변
기여가 없다고 그 문서에는 전혀 기여하면 안되는 건 아니죠. 객관적 자료라면 이미 문서에 다 나와 있다고 봅니다. 김두한이 한국 전쟁에 참여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군인으로써 살았다고 볼만한 근거가 문서에 전혀 없습니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더위먹은민츠(발자취) 2010년 5월 26일 (수) 13:00 (KST)답변
정식 군대 창설 전이었으면 공식적으로는 군인이 아닐뿐더러, 그걸 군인 경력으로 친다고 해도 김두한의 그 긴 인생 중에 길어야 겨우 8년입니다. 그 이후 거의 20년간 김두한은 군하고는 별 연관 없이 정치가로써의 인생을 살았고, 해방 이전에도 군하고는 별 연관이 없었군요. 사회운동과 노동운동도 저는 가십거리로 넘어가려고 집어넣은 게 아닙니다. 대체 문서 어디에 김두한이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했다고 쓰여져 있는지 저는 못 찾겠네요. --더위먹은민츠(발자취) 2010년 5월 26일 (수) 13:08 (KST)답변
해방기에 무력단체로 김두한의 별동대가 좌우 가장 강한 단체이었습니다. 군인 기준이 10년 20년이상이어야 군인이라는 말은 님에게 처음 보는군요. 공식적이라..? 그럼 미군정의해 건국준비위원회 등 모든 단체들이 해산되었는데 이 단체들이 불법이고 [장준하]] 또한 군인이 아니라는 말로 들리는군요.--떠돌이 (토론) 2010년 5월 26일 (수) 13:20 (KST)답변
되돌리기는 몇 다른 사용자분이 하신거구요. 아무튼 토론:김두한문서에 내용은 오래전 내용들이고 해당 토론에 내용들 문서에 포함된 내용 하나도없습니다. 중요내용도 아니고 가십거리내용뿐이고요. 그리고 보존문서는 원래 토론 내용들 보존하는 문서이구요. 마우스 클릭하면 되는겁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5월 26일 (수) 17:42 (KST)답변
토론 주제의 중요성 판단은 보관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십거리라고 판단하시는 것도 주관적이지요. 다른 토론문서들이 보관되는 상황과 비교하여 지금 보관하는 것은 상궤에 벗어납니다. 되돌리기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케골2010년 5월 26일 (수) 17:45 (KST)답변
의견 요청은 문서의 일부분이 아니고 의견을 요청하는 방법입니다. 토론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제가 쓴 토론의 일부는 되돌리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케골2010년 5월 26일 (수) 20:37 (KST)답변
마지막으로 토론한 날짜가 2008년이고 그 토론 내용 자체도 완전 종결상태입니다. 종결상태이고 날짜도 오래된 토론내용들은 방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보존문서가 처음이면 몰라도 이미 4개의 보존문서가 있는 상태이고요.--떠돌이 (토론) 2010년 5월 26일 (수) 20:41 (KST)답변
아니요. 그 문제가 아니라 의견요청 틀에 대한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되돌리지 말아주세요. 토론의 의사 표현은 되돌리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보존에 동의를 하시든지 아니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케골2010년 5월 26일 (수) 21:53 (KST)답변
위키편집에서 가장 모호한 말이 '저작권'이라는 생각입니다. 개인의 생각으로 편집하면 '독자연구'가 되고 출처를 밝히면서 인용하면 '저작권 위배'가 됩니다. 위키는 이러한 저작권을 포기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인용, 편집할 수 있도록 모든 권리를 포기함을 천명하였습니다. 특정판 삭제와 되돌리기가 능사가 아닙니다. 무단복제 무단전제가 아닌 참조인용으로 저작권이 침해되었다면 이 문서가 올바른 편집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이것이 위키편집의 성격에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키편집자들은 거의 아마츄어로 분류될 수 있는 학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기에 이런 요청과 제안을 드립니다. 이문서는 나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Lexus (토론) 2010년 5월 27일 (목) 19:31 (KST)답변
우선 처음 뵙겠습니다 ^^ 위키 시스템에서는 단순히 텍스트를 지우고 저장하더라도 문서 역사에는 남아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 등 배포가 원천 차단되어야 하는 기여를 삭제하려면 {{특정판 삭제 신청}} 시스템을 사용하셔서 관리자에게 정식으로 요청하셔야 합니다. 사용법은 해당 틀 문서에 잘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Dus|Adrenalin (토론) 2010년 5월 28일 (금) 10:06 (KST)답변
픽션이라 칩시다, 그럼. 문제는 김두한이 나오기는 나왔다는 것입니다. 드라마가 그 시대에 찍은 다큐멘터리가 아닐진대, 약간의 성격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 심하지 않나요? -- 행유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07:36 (KST)답변
지금 님이 말하시는거 보면 자사에서 공표하면 정통이고 안하면 퓨전이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는데요.ㆀ 팩션이든 허구이든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이고요. mbc뿐만 아니라 어느 방송사든 다 공표하고 합니다.
그리고 님의 의견에 따라, 의빈 성씨에서 한지민을 지울까요? 실록에서는 드라마 이산처럼 도화서에 근무했다는 기록이 없으니까. -- 행유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07:51 (KST) 님께서 비약한 논리로 요점을 벗어나신거에요.ㆀ--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08:28 (KST)답변
안녕하세요, 떠돌이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귀하께서 김두한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한쪽 시각에 편중된 서술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전의 편집 내용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다시 한 번 편집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위키백과 도움말을 참고하시거나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시면 됩니다. 연습이나 실험은 연습장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곳에 토론란을 개설했습니다. 참여해주세요. 그리고 행유님과의 되돌리기 반복을 오래하신만큼, 되돌리기의 반복은 자제해주세요.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아 건설적인 방향으로 합의를 내어 좋은 문서의 방향을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19 (KST)답변
되돌리기를 더이상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행유님과의 되돌리기 분쟁을 계속 하신마당에 또다른 제3자인 저와 되돌리기 분쟁을 하실 요령이시지 않길 바랍니다. 백:3RR룰이 한국어 위키백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되돌리기의 반복은 경우에 따라 금지하거나 차단하고 있습니다. 토론이 먼저입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21 (KST)답변
"‘구마적’은 청년 김두한이 주먹왕이 되기 전까지 김두한을 수하에 데리고 있으면서 그를 키워 주는 ‘보스’. 출처 : 동아일보. 2002. 7. 28." 설명 보시고요. 그리고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등록되어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6일 (일) 10:02 (KST)답변
사전에 "현석이는 우리 학교 주먹왕이다"라고 예문이 실려 있으면 주먹왕 동음이의어 문서 만들어서 김두한 넣고 현석이 넣고 그래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현석이 문서 만들어 드릴까요? -- 행유 (토론) 2010년 6월 6일 (일) 10:04 (KST)답변
그리고 언론, 출판, 여론 등 관련해서도 구글,네이버 (또는 네이버 옛날뉴스), 네이트, 다음 등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주먹왕 김두한 정보가 훨씬 많고. 또 [7] 예시문에서도 주먹왕 김두한은 2002년 7월 28일이고 주먹왕을 꿈꾸는 스모 영웅 아케보노는 2004년 7월 15일이고. 타 언론에 (네이버 옛날뉴스 포함)에서도 주먹왕 김두한이 훨씬 더 더많은 정보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6일 (일) 11:34 (KST)답변
반갑습니다, 떠돌이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편집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의 편집에 관한 편집 요약을 적으면 그 편집이 문서 훼손 행위 등이 아님과 편집의 목적을 알릴 수 있어 다른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편집 요약은 자신의 편집의 목적 등을 간결히 적을 수 있게 마련된 공간이며, 거기에 적은 내용은 최근 바뀜, 문서 역사, 주시문서 목록 등에 노출됩니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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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님, 지금 당장 편집을 멈춰 주십시오. 떠돌이님께서 김구 문서에서 편집하신 내용은 위키백과:문서 훼손 정책에서 하지 말 것을 언급하는 훼손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과 맞지 않아, 편집하시기 전으로 되돌렸습니다.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지키는 기본적인 사항은 정책과 지침 문서를 참고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되돌려지기 전에 하셨던 편집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용자와 먼저 토론을 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자신이 관련 정책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아래나 해당 문서의 토론란에 본인이 왜 그러한 편집을 하셨는지 의견을 먼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내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집이 반복되는 경우, 위키백과:차단 정책에 따라 위키백과의 관리자가 사용자 분을 차단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Tarantius (토론) 2010년 6월 15일 (화) 22:35 (KST)답변
떠돌이님, 지금 당장 편집을 멈춰 주십시오. 떠돌이님께서 사용자토론:떠돌이 문서에서 편집하신 내용은 위키백과:문서 훼손 정책에서 하지 말 것을 언급하는 훼손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과 맞지 않아, 편집하시기 전으로 되돌렸습니다.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지키는 기본적인 사항은 정책과 지침 문서를 참고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되돌려지기 전에 하셨던 편집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용자와 먼저 토론을 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자신이 관련 정책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아래나 해당 문서의 토론란에 본인이 왜 그러한 편집을 하셨는지 의견을 먼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내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집이 반복되는 경우, 위키백과:차단 정책에 따라 위키백과의 관리자가 사용자 분을 차단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Tarantius (토론) 2010년 6월 15일 (화) 22:41 (KST)답변
{{편집 충돌}}은 님이 작성하시다가 다른 사용자와 편집 충돌이 발생할 경우 사용하는 틀입니다. 편집 충돌 틀의 제시를 통해 님의 의견이 편집충돌전에 생각한 의견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용자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편집충돌)같이 불편하게 이렇게 쓰지 마시고, 틀을 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밥먹어쏭(우리 함께해요!) "First in my diary"2010년 6월 15일 (화) 23:15 (KST)답변
김구선생 문서에서 김구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ref>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ref> [[이범석 (1900년)|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ref>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ref> 부분을 삭제하려 하시는가 본데[8]
김구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 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을 사용자: Tarantius님의 되돌리기 분쟁과정에서 삭제가 되었고 곧바로 다시 수정하였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0:07 (KST)답변
11월 23일 김구는 바쁜 와중에도 조선일보의 복간을 축하하는 축하 휘호를 작성하여 헌정하였다.조선복간축사[24]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해방공간 지도자들, 이념 떠나 '복간 축하' 메시지] 조선일보 2010.02.08일자 복간축하 휘호의 내용은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으로 '뜻이 있으면 끝내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조선복간축사1 이 부분은 되돌리기 과정에서 삭제가 되었고 곧바로 다시 수정된 부분입니다.
본 내용은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0:13 (KST)답변
말씀하신 부분을 사용자:떠돌이님은 계속 삭제했고 사용자: Tarantius는 출처가 있으니까 되돌렸습니다.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이범석 (1900년)|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를 삭제를 하신 이유를 해명해 주십시오. -- 판델라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0:15 (KST)답변
그 부분은 사용자토론: Tarantius에서 수시로 반복적으로 계속 올렸던 부분입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항일무장투재상에서 "일설에는 김두한이 그의 주장과는 달리 해방 후에야 이범석 쪽에서 알려줘서 자기 아버지가 김좌진 장군인 것을 알았는데, 그때 자기 아버지를 공산주의자가 죽였다고 듣고 열렬한 반공투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 <-- 어디에도 출처가 없고 정작 김두한 및 주위 자료에서는 그런자료도 나오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문제연구소에서는 종로구 상인들이 철시를 했다며 조선일보에 기사에 봤다고 하나, 그런기사 있지도않고 또 실제로도 기억이 잘안난다라는 말을 붙히기도합니다. 또한 김좌진을 아나키스트에 기울렸다고도 하지만, 이 또한 김좌진은 아나키스트가 아닙니다.
그리고 김두한 문서 되돌리기 하셨는데, 위연홍은 외조카가 아니고 국가보훈처에서도 세계일보에서 후손이다라고 기사화에 대해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바로잡습니다 란 곳에서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세한거 김좌진 문서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에 공작 부분과 의협적 민족적 부분 또한 제 견해가 아닌 자료에서 인용한 부분이고 실제로 한국독립당 내란음모는 제3공화국에서 공작한 사건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0:25 (KST)답변
문제가 된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하고 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라는 책에 나온 내용인듯 한데, 이 두 책을 직접 입수해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 판델라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0:30 (KST)답변
다른 사용자들과의 토론보다는 되돌리기에 집중하는 떠돌이님의 태도가 심히 우려됩니다. 한 명의 사용자도 아닌, 그동안 계속 여럿의 사용자와 되돌리기 분쟁이 계속 있으셨습니다. 위키백과는 협업을 요체로 합니다. 과거와 같이 계속 끊임없는 되돌리기를 하신다면, 차단 정책에 따라 차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마냥 강변하시지 마시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주세요.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되돌리기는 공감은 커녕 반감만 높여갑니다. 앞으로 되돌리기 분쟁을 하실 경우에 장기간 차단하겠습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01:29 (KST)답변
백범님 토론란에 이범석 김구 관련 의견올렸습니다. 아뇨, 100범님께서 본 사용자의 토론하고 100범님 토론, 김두한 토론, 김구토론 중복 의견을 올려주셔서 이왕이면 한곳에서 토론해야 더 토론 진행이 좋지않을까해서 의견말씀드린겁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12:59 (KST)답변
뭐가 물타기라뇨? 동일시간에 100범님에게 의견올렸는데 100범님은 의견이 없으셨고 계속 제기의견을 올리신것에 서로 오해가 발생하잖아요. 그러니 한곳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 진행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씀드렸지않았습니까. 아무튼, 토론의견은 김구 문서에 올렸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13:04 (KST)답변
본문 존재 확인
제시하신 자료를 모두 확인해봤읍니다.
김두한은 김구 선생으로부터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우익진영의 행동대원이 되었다.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
이범석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다" 하니까 그때부터 이를 북북 갈면서 우익이 됐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그 뒤받침자료 한번 찾아보세요. 본사용자도 혹시나 뭐 빠트린게 있나하고 계속 조사를 해보아도 그런 자료가 나오지않네요 본사용자의 자료찾기 한계인가봐요.
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는 종로구 상인들이 철시를 했다며 조선일보에 기사화했다고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인물로보는 친일파란 책에서 공표하였고 또한, 김좌진이 아나키스트에 기울렸다고 공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뒤받침하는 자료가 없고 오히려 종로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영업해온 양복집 이경주이나 외 자료에서는 상반된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13:08 (KST)답변
직접적 또는 뒷받침되는 자료가 없는 카더라가 진실이라는 말이라는건가요? 그리고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비의책 15)도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출판한 책입니다. 백범어록에 있지도 않은 내용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략) 요즘 우리 역사에서 잘못 알려져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일제시대 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조선일보에서 보았는데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김두한 때문에 종로시장이 철시(撤市)한 기사가 나옵니다. (중략) 김구 선생이라면 우익 민족주의자였죠. 일제 치하 전체를 반공투쟁으로 일관했던 분인데요, 그렇게 반공투쟁에 철저했던 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김구 선생을 좌익으로 몰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김구 선생이 민족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김구 선생이 김두한을 불러서 호부에 견자라고 노골적으로 충고하는 것이 백범어록에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호랑이 아버지에 개새끼라고 비판받았던 김두한은 미군정하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감옥에서 갇혀 있었는데 미군정에서 집행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승만 정권으로 넘겼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를 사면해서 데려왔습니다. (후략)"[1]
종로구에서 3대 걸쳐 가장 오랫동안 양복집을 운영한 이경주는 "김두한 씨도 우리 가게 단골이었지요. 다른 곳 불량배나 일본 주먹패로부터 종로의 한국 상인들을 보호했다고 들었어요. 20여년간 우리 가게에서 양복을 해 입었다고 하더군요.”길을 가다가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거나 돈이 궁해 사무실을 찾은 사람들에게 양복, 외투 등을 선뜻 벗어주곤 했다는 것은 김두한의 유명한 일화. 한인 고학생들이 학비를 부탁하러 찾아오면 “전당포에서 돈과 바꾸어 써라”며 입은 옷을 바로 벗어주었다. 때문에 그는 평생 늘 두 벌의 양복을 번갈아 가며 입었다고 한다. 종로구에서 이발사를 운영한 이상희는 야인시대를 보며 실제와 드라마가 똑같다고 느낀 점은 시장 상인들이 김두한을 대하는 태도. 김두한은 상인들로부터의 존경과 지지가 대단했으며, 종로 거리를 걸을 때는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2][3][4] 또한 백범어록은 물론 백범일지에도 그런 내용은 없으며 백범일지에 변절한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에 대해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게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치 않았다.”(‘백범일지’ 619항/ 너머북스 펴냄) 라는 내용이 있다.[5] 안중근 의거 100주년(2009년)을 맞아 국내 학계, 언론이 다각도로 재조명했지만 안준생의 친일행적은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연합뉴스가 ‘안중근 의거 100년 살아남은 자의 슬픔’(2009년 11월 1일자)이라는 제목으로 “안준생의 친일행적은 적어도 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국내 어느 연구자도 이런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만큼 안 의사가 갖는 영웅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6] 실제로 안준생의 관련은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란 책이 출판된 2009년 9월과 10월 그리고 본격적 출판이 된 11월 때 진보 보수 언론에서 기사화하였다.[7]
그리고 1947년 대한민청 사건으로 재판과정에서 1948년3월 21일김구가 말한 부분입니다. "근일에 김두한 군의 사건을 보아도 우리가 얻는 바 교훈이 많다. 김 군이 자기범행에 대해서 법적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범행이 애국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또 그가 위대한 애국자 김좌진 장군의 영사(令嗣)라는 점에서 보면, 그에 대한 구명운동이 그토록 열렬하지 못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하였다.[8]
--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13:12 (KST)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비의책 15)”. 역사문제연구소. 168면.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작성일자= (도움말)
당연히 이 책에 출판한 날짜가 1995년인데 대한 반론을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시나요? 역사문제연구소가 주장하는 내용 또한 카더라형식이고 또, 역사문제연구소는 더 저명한 백범어록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있다고 공표까지 했는데 이 내용도 사실이라는 말인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00 (KST)답변
그리고 노변야화3 이 자료는 "장택상 외무장관하고 이범석 국무총리께서 이렇게 보니까 내꺼가 사형장에 있단 말이예요. "아니, 각하. 이거 백야(김좌진 호) 아들인데 각하가 명령을 해서 공산당이랑 싸운건데 이거 왜 여기다 껴 놓으셨습니까?" 그러니까 각하가 아래사람한테 "어? 이거 왜 여기다 껴놨어?" 물으니까 "검사 맡았는데..어떻게 해서 잘못 껴 들어갔나 봅니다." 그러죠. "이 사람 정신이 있나. 소환장 다시 작성해라." 그래서 거기서 다시 작성해서 이박사께서 `대사령이다`해서 대통령 사면에 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 여기 와 있나? 나오거든 나한테 들여보내라" 그래요. " --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05 (KST)답변
무슨 말하시는거죠? 님이 역사문제연구소 말하는 김두한이 김구와 이범석에게 들었다는 것이 맞다고 하시면서 백범어록에 없으면 만난 적 없다는 말이라뇨??
(전략) 요즘 우리 역사에서 잘못 알려져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일제시대 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조선일보에서 보았는데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김두한 때문에 종로시장이 철시(撤市)한 기사가 나옵니다. (중략) 김구 선생이라면 우익 민족주의자였죠. 일제 치하 전체를 반공투쟁으로 일관했던 분인데요, 그렇게 반공투쟁에 철저했던 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김구 선생을 좌익으로 몰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김구 선생이 민족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김구 선생이 김두한을 불러서 호부에 견자라고 노골적으로 충고하는 것이 백범어록에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호랑이 아버지에 개새끼라고 비판받았던 김두한은 미군정하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감옥에서 갇혀 있었는데 미군정에서 집행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승만 정권으로 넘겼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를 사면해서 데려왔습니다. (후략)"[1]
카더라식의 공표가 아니라 일설이 아닙니까? 김두한이 김구나 이범석에게 그런말을 들은 적이 없다 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할만한 것이 있읍니까? 카더라라는 것은 사용자:떠돌이님의 판단이 아닙니까? 김두한이 김구나 이범석을 만나 김좌진 관련 설을 들은 것이 카더라 설이고 전혀 근거가 없다, 거짓이다 라는 근거가 있읍니까? -- 100범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36 (KST)답변
김두한을 비롯해 주위 자료에서는 장덕수와 이규갑 등에게 알게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1995년에 카더라형식으로 공표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그것도 뒤받침 자료를 계속 의견을 올리는데도 불구하고 의견을 무시하고 계속 토론을 회피하는 듯한 반복적으로 의견으로 올리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역사문제연구소는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이란 책을 통해
(전략) 요즘 우리 역사에서 잘못 알려져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일제시대 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조선일보에서 보았는데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김두한 때문에 종로시장이 철시(撤市)한 기사가 나옵니다. (중략) 김구 선생이라면 우익 민족주의자였죠. 일제 치하 전체를 반공투쟁으로 일관했던 분인데요, 그렇게 반공투쟁에 철저했던 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김구 선생을 좌익으로 몰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김구 선생이 민족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김구 선생이 김두한을 불러서 호부에 견자라고 노골적으로 충고하는 것이 백범어록에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호랑이 아버지에 개새끼라고 비판받았던 김두한은 미군정하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감옥에서 갇혀 있었는데 미군정에서 집행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승만 정권으로 넘겼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를 사면해서 데려왔습니다. (후략)"[2]
에서는 입에 침도 안바르고 허위공표를 하고있습니다. 조선일보에 철시했다는 기사 어디에도 없고요. 그리고 백범어록에서도 위 구절에 관한 내용은 전혀없습니다. 정당한 출처라면 그 정당하다는 출처를제시해주세요. 한번 보고싶네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42 (KST)답변
본 사용자가 언제 백범어록에 없으면 아니라고 말했나요? 왜 본론을 바꾸려고 그러시는거죠? 역사문제연구소에서는
"해방 후에야 이범석 쪽에서 알려줘서 자기 아버지가 김좌진 장군인 것을 알았는데, 그때 자기 아버지를 공산주의자가 죽였다고 듣고 열렬한 반공투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에서는
그는 해방직후 좌익진영의 돌격대 역할을 맡았으나 김구 선생으로부터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우익진영의 행동대원이 되었다.
이 인용문이 각각 원본에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 사실이라는 말하는 것이 100범님이시고요. 저는 백범어록에 나오지않는다고 만나지않았다거나, 아니라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링크만 있다면 그게 정당한 출처라는 것이 100범님의 의견이신가요? 본 내용이 사실이어야 그것이 출처지 링크가 있다고 출처라뇨? 김두한과 김구(김구가 김좌진에 대해 나이차가 있어도 김좌진을 존경하는 추도사 등 하기도 했습니다.)는 서로 가깝게 지냈고요. 김구의 차남 김신과도 친한사이로 김두한의 사회장때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구에게 최로로 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된거 아닙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53 (KST)답변
김구 선생으로부터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는 내용인데 어느 부분에 김두한이 김구에게 최초로 김좌진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을 들었다 라고 나와있읍니까? 김두한이 김구에게 들었다 는 것이 어떻게 김두한이 김구에게 최초로 들었다 로 둔갑합니까? -- 100범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56 (KST)답변
"김구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 이 자료가 사실이라는 자료에 대해 의견바랍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1:11 (KST)답변
" 김구 선생으로부터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는 내용인데 어느 부분에 김두한이 김구에게 최초로 김좌진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을 들었다 라고 나와있읍니까 " 김두한이 김좌진의 죽음을 사실을 전해들었다. 이 내용이 김구의 말을듣고 반공이 되었다는 공표인데, 뭐가 최초로 들은것이 둔갑이라뇨?--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1:15 (KST)답변
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에 이어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은 2002년에 이런 글을 남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종로상인들이 김두한패의 횡포에 항의해 철시(스트라이크)를 벌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출처 -> 특별기고) 그리고 1999년 mbc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에서는 내레이션에서 부하들은 서울에 갓 올라온 시민을 등쳐먹는다거나 자주 입에올랐다며 자료를 보여주지만, 바로 이후의 반도의용정신대 관련 당시 보도 자료와 상반적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방송분은 어느 포털사이트 동영상에서 확인이 가능하기도 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1:36 (KST)답변
그리고 현재 김두한 문서 버전판에 위연홍.구마적..김춘삼 등 고희경은 동명이인입니다. 위연홍은 김좌진문서 참고하시고요. 김춘삼은 아무 연관성이 없습니다. 김두한은 교동보통학교 2학년 중퇴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1:52 (KST)답변
100범 님께서 토론에 의견은 "김구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 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 이부분을 주장하시는데, 왜 문서는 전체 지워버리고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기 하시는건가요?
이 인용문이 사실이라는 정당한 출처에 대한 자료를 알려주시고 이 것이 사실이라면 본 사용자는 스스로 이인용문을 사전에 편집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김두한을 비롯해서 주위 자료에서는 이규갑장덕수 등에게 전해듣게되었다고 하고 이범석은 회고록에 미군정의해 사형을 받았을때 정부수립하고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됐을때 이범석과 장택상이 사형수 명단들은 발견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있는데, 어디가 이범석이 김좌진의 죽음을 전해주었다는 건지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8:22 (KST)답변
김두한이 이범석과 김구에게 김좌진의 죽음에 대해서 들었다는 자료를 제시해주세요. 전 역사문제연구소에 대한 링크 바로 님의 이 의견위에 13시 12분에 의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의견을 무시하시는 건지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23:38 (KST)답변
본사용자나 다른 분들이 지적한 것은 왜 사용자:떠돌이님은 출처가 있는 부분을 함부로 지우시느냐는 것입니다. 그 문서 어디에도 김구나 이범석이 김두한하고 대화한적 없다 라고 명시한 부분은 없읍니다. 다른데로 말씀 돌리시지 마십시오. -- 100범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23:49 (KST)답변
(100범 님 토론란에 의견 남기신 부분도 이곳에 가져올게요.) 2010 년 6월 16일 (수) 23:48 현재 판 그런데, 떠돌이 토론 본 사용자 토론에 13시 12분에 의견은 왜 계속 무시하시고 전 100범님이 처음 의견제시하실때 한번도 되돌리기 한적없고요. 13시 11분 이후 어떤 의견도 없으시고 기다리다 사진 자료 하나 업로드하고 같이 편집한거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일이 있다면 일이 있다는 등 의견을 남기셔야지 상대방 토론자를 무시하는 건가요?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이야기는 없으시고 13시 12분에 본 사용자의 의견에 대한 또한 의견이 없으시고 계속 삭제 왜하냐 삭제하지마라는 등 마침 되돌리기를 한거처럼 몰아부치시는 무슨 의미이신가요? 그것도 이범석, 김구 관련 말고도 김두한이 1학년 중퇴라는 등 내용물 확인은 왜 안하시는지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23:57 (KST)답변
본사용자가 언제 떠돌이 더러 사진업로드를 왜 했느냐고 물었읍니까? 김구, 이범석과 김두한의 만남 부분
왜 반복적으로 올리시죠? "김구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던 김두한에게 선친 김좌진 장군이 적색테러의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현대사를 바꾼 전쟁과 정치 : 전사를 통해 진단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김동주, 뿌리출판사, 2004) 67 페이지 이범석에게도 "너의 아버지를 죽인 자는 공산주의자"라는 소식을 접하였다.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역사문제연구소 지음, 역사비평사, 2006) 71페이지 " 이게 위에 의견이잖아요. 왜 토론에 대해 진행을 하지않고 반복적 의견만 올리시는 건 무슨 의미이신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08 (KST)답변
사용자:Tarantius 님의 되돌리기 분쟁이 된거지 제가 삭제 한것이 아닙니다. 축사를 했다는 부분은 되돌리기 과정에서 삭제가 된거고 이 부분은 곧바로 다시 복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내용이 본론이 아닐텐데요? 정당한 출처라는 뒤받침 자료를 계속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본 사용자의 의견을 무시하시는군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00:17 (KST)답변
김구, 김두한 문서에서 임의로 삭제하는 사용자:떠돌이님이 이범석과 김구가 전해주었다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책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먼저 입증해야 되지 않나요? 백범어록이나 다른 기사에 없으면 김두한은 그사람들을 만난적이 없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기록을 뺐거나 뭔가 비밀스러운 목적으로 비밀리에 만났을수도 있다고 추론할수도 있습니다. 백범어록이나 다른 기사에 기록에 없는 것이 곧 만난적 없다가 되지는 않습니다. -- 판델라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13:00 (KST)답변
바로 위에도 의견이 뻔히 보이실텐데, 왜 내용을 읽지않고 같은 말만 반복하시나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제가 미리보기 링크해드린거 확인은 하셨나요?(토론란에서도 복사해서 인용올리기도 했는데..) 위에 의견에 반론자료 확인하시죠.--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7일 (목) 13:03 (KST)답변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비의책 15)”. 역사문제연구소. 168면.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작성일자= (도움말)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비의책 15)”. 역사문제연구소. 168면.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작성일자= (도움말)
독자연구라는 것이 어느 부분이 독자라는 것인지요? 그리고 좋지 않으시다면서 내용 전체를 삭제하는 의도는 무엇인가요? 잘못 알려진 것에 있는 내용은 오랫동안 통설처럼 전해오고 있고 현재도 인터넷에서 계속 검색이 가능한 내용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7월 6일 (화) 14:08 (KST)답변
논점에서 자꾸 벗어나는 토론 때문에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적습니다.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과 야인시대에 어울릴 내용이 김두한에 들어가 있는 이유와는 상관이 없지 않나요? 분쟁 중인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로 구마적, 신마적, 최동열, 마루오카, 김영태, 박인애 등 실재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하였는데...(하략)
물론 이 뒤에 있는 약간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건 맞지만, 적어도 인용한 이 부분은 야인시대로 옮겨야 할 내용입니다.
또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백범일지에 변절한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에 대해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게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치 않았다.”(‘백범일지’ 619항/ 너머북스 펴냄) 라는 내용이 있다. (중략) 안중근 의거 100주년(2009년)을 맞아 국내 학계, 언론이 다각도로 재조명했지만 안준생의 친일행적은 다뤄지지 않았다. (중략) 실제로 안준생의 관련은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란 책이 출판된 2009년 9월과 10월 그리고 본격적 출판이 된 11월 때 진보 보수 언론에서 기사화하였다.
이 내용은 정말로 김두한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서 삭제했습니다.
다음 내용입니다.
김춘삼은 한국전쟁이 나자 입대하여 부상을 당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김춘삼에 대해 자료는 없으며... (하략)
다음으로, 중간중간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로 추정된다", 아니면 "...했는데, 사실은 ...해서 ...하다"고 하면서 출처가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백:독자의 요약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서는 출간된 내용을 새롭게 분석하거나 종합하여 출처에서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견해를 제시하는 내용을 담을 수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자료를 정리하는 활동은 허용하지만, 자료를 해석하는 활동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든 예들은 명확한 출처가 없거나 개인의 생각을 적은 글이기 때문에 지웠습니다.
다음으로, 삭제한 인용문들은 대개 주석에서 소개한 내용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주석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뿐더러, 지나치게 긴 가대기 관련 글은 특히 그러했습니다. 필요 있다면 정리할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길어 문맥을 흐트려 놓았기 때문에 일단 지웠습니다.
안중근과 안준생 관련 내용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김구가 김두한을 호부견자라고 백범어록에 나와있다는 부분으로 백범어록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며 백범일지에 안준생의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구절이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않는다 말하시는거는 백기완에 대한 일화를 말하신거 같으신데요. 그 내용은 평가 부분에 출처가 있습니다. 김춘삼에 대한 부분은 국방부에서 직접 답변받은 내용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7월 6일 (화) 14:36 (KST)답변
그 내용을 지운 적은 없습니다. 정확히 "또한 백범어록은 물론 백범일지에도 그런 내용은 없으며..."까지 남겨두고 "백범일지에 변절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에 대해..."부터 지웠습니다. 떠돌이님도 확인해주세요. -- 행유 (토론) 2010년 7월 6일 (화) 14:54 (KST)답변
김구가 김두한을 호통했다는 내용이 백범일지에 있다는 내용이 아니고요. 김구가 김두한을 호통을 했다는 내용이 백범어록에 수록되어있다고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공표하였는데 백범어록에는 이 내용이 없고 또 백범일지에는 안준생의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7월 6일 (화) 15:11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