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거주했다. 1769년 스페인 탐험대가 샌퍼낸도 밸리를 처음 방문했고, 1797년 선교사들이 샌개브리엘 선교원을 세웠다. 선교사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오렌지와 포도를 들여와 재배하였는데, 이것은 로스앤젤레스 농업의 근간이 되었다.[1]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한 후 선교원 땅은 민간에 매각되어 소 목장과 밀 농장, 과수원으로 사용됐다. 물은 부족하고, 비가 오면 쉽게 홍수가 났기 때문에 농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작은 마을들만 흩어져 있었다.
샌퍼낸도 밸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철도 개통과 1913년 로스앤젤레스 관개수로 건설이었다. 새 관개수로는 조례상 로스앤젤레스 시 내에서만 쓰일 수 있었기 때문에 관개수로 사용을 위해 대부분 지역이 LA 소속으로 들어갔다. 물 문제를 해결하자 밸리는 곧 미국에서 가장 비옥한 농지로 탈바꿈했다. 부유층은 수로 건설 발표 전부터 땅을 몰래 사들이기 시작, 큰 이익을 보았다.[2]
2차 대전 후 밸리는 빠르게 농지에서 교외 주거, 산업 지역으로 변모했다. 백인 위주 지역이였으나 21세기에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거주한다. 밸리는 캘리포니아 내 타 지역처럼 물 부족과 산불, 노숙자, 높은 생활비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
샌퍼낸도밸리는 베드타운을 넘어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 워너 브라더스, CBS, NBC, 넷플릭스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미디어 기업들이 밸리에 있다. 특히 버뱅크는 1,000 개 이상의 미디어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고 "세계 미디어의 수도"라 불린다.[3]항공우주산업도 발달했다. 록히드의 본사와 생산 공장, 스컹크 웍스로 유명한 연구 시설 모두 밸리에 있었다. 냉전 종식 후 록히드를 포함한 일부 기업들이 이전해 나갔지만, 밸리는 여전히 중요한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이다. 노스롭그루먼과 프랫 & 휘트니가 대표적인 밸리의 기업들이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