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황 정통제가 오이라트에게 포로로 잡힌 뒤 황태후의 명령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1452년 숙부 경태제에 의해 황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기왕(沂王)이 되었다. 1457년 다시 황태자가 되고, 이름을 고쳤다. 1464년 정통제가 죽은 뒤 황위를 이었다. 다음 해 1465년성화로 연호를 바꾸었다. 재위 중에 우겸(于謙)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경태제의 제호(帝號)를 회복했다.
그러나 실정을 많이 저질렀다. 처음으로 황장(皇莊)을 두었다. 권호(權豪)들이 한전(閑田)을 요구하자 전지(田地)를 빼앗아 장전(莊田)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 자신보다 17살 많은 만귀비를 총애했는데, 낳은 아들이 얼마 뒤 죽자 온갖 패악을 다 저질렀다. 내비(內批)에게 관직을 주는 제도를 실시했다. 방술을 지나치게 믿었고, 방사(方士)와 승도(僧道)는 내비로 고관이 되었다.
그러나 환관 왕직(汪直)을 기용해 서창(西廠)을 설치해 무고한 충량(忠良)들을 죽였다. 왕직이 축출된 뒤에도 또 환관 상명(尙銘)을 불러 동창(東廠)을 맡기면서 매관매직을 거침없이 자행했다. 하투에 들어와 살던 달단 부락들이 더욱 거세게 공격해 들어왔고, 형양의 유민들과 광서의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기세가 날로 드세져 갔다. 성화23년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