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간
아베 간(일본어: 외무대신을 역임한 정치가 아베 신타로의 부친이며,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친조부가 된다. 경력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県) 오쓰 군(大津郡) 헤키 촌(日置村) 구라오다(蔵小田)[2])에서 아베 도라노스케(安倍彪助) ・ 다메(タメ)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세 무렵에 이르기까지 양친이 차례대로 사망하고 큰어머니 유시(ヨシ)에게 길러졌다.[3] 아버지 ・ 도라노스케는 군내에서 명문으로써 알려져 있던 무쿠노키(椋木) 가문으로부터 서양자(婿養子)로 들어왔고 어머니 ・ 다메는 아베(安倍) 가문의 중흥조(中興祖)까지 일컬어지는 아베 신타로(安倍慎太郎)의 여동생이었다.[4] 가나자와(金沢)의 구제(旧制) 제4고등학교(第四高等学校)를 거쳐서 1921년(다이쇼 10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国大学) 법학부(法学部) 정치학과(政治学科)를 졸업하였다.[5]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도쿄에서 자전거 제조회사를 경영하였는데, 1923년(다이쇼 12년) 간토대지진으로 공장이 파괴되고 회사는 도산하였다.[6] 도쿄로 옮긴 뒤에 혼도 시즈코(本堂静子)라는 여성과 결혼하고 장남 신타로(晋太郎)를 얻었으나, 그 직후에 이혼하고 홀로 살았다.[5] 이후 「금권부패(金権腐敗) 타파」를 외치며 1928년(쇼와 3년) 총선거에서 입헌정우회(立憲政友会) 공인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33년(쇼와 8년) 헤키 촌 촌장으로 취임하였다.[1][5] 그 뒤 야마구치 현 현의회의 의원을 겸임하였고[1] 1937년(쇼와 12년)의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였고 중의원(衆議院)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5]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아베 간은 비전(非戦) ・ 평화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1938년(쇼와 13년) 제1차 고노에 성명(近衛声明)에 반대,[7] 1942년(쇼와 17년) 익찬선거에 즈음하여서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군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하여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의 추천을 받지 못하고 출마에도 불리한 입장이 되어 최하위였음에도 2기 연속으로 당선되었다.[7] 의원 재직 중에는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와 공동으로 국정연구회(国政研究会)를 창설하고 시오노 스에히코(塩野季彦)를 중심으로 하는 목요회(木曜会)에 참가하여 도조 내각 퇴진을 요구하거나, 전쟁 반대, 전쟁 종결 등을 주장하였다.[5] 패전 뒤 일본진보당(日本進歩党)에 가입하여 1946년 4월에 총선거 출마 직전에 심장마비로 급서하였다.[5][7] 인물상
가계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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