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
![]() 아파르트헤이트(아프리칸스어: Apartheid)는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카너 주도의 극우 국민당 정권에 의하여 1948년에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분리 즉,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을 말한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벌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 정부, 흑인 대표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넬슨 만델라 간의 협상 끝에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했고, 민주적 선거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만델라가 1994년 4월 27일에 완전 폐지를 선언하였다.[1][2] 개요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비(非)백인에 대한 분리와 차별정책을 말한다. 1960년 독립 이래 소수파인 보어인과 영국계 백인이 아프리카너(Africaner)에 대한 절대적 지배와 국민당(國民黨:집권 백인 정당)의 영구집권 기도 과정에서 이론화·조직화·제도화되었다. 유색인에 대해서는 정치적 권리는 물론 거주·영업·교육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제약을 가하고 있는데, 1976년 아프리칸스어(Afrikaans:공용 네덜란드어) 교육 문제로 소웨토 행동위원회(SAC)가 중심이 된 인종차별반대 흑인운동이 발생했고, 1978년 아자니아 인민조직(AIAPO)이 이를 계승하였으나 백인정권의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소수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은 OAU를 중심으로 한 급진·사회주의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켜 양측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등, 이 지역 정세불안의 주요 원인이 되어 왔다. 1974년 국제연합에서의 총회 의결권 박탈을 시작으로 한 국제기구와 EC제국·미국 등 서방진영에서의 대남아공 금수(禁輸)·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백인정권은 강경입장을 고수하여 오고 있으며, 1983년 흑인 이외의 유색인에 대해서는 투표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 1984년 유색인종회의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제외된 흑인들의 파업·시위와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무장항쟁은 더욱 가속되었고, 백인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동시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비극적인 유혈참사 사태가 일어났다.[3]
아파르트헤이트 시스템아파르트헤이트 시스템은 남아공을 백인국가와 흑인국가로 완전 분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 아파르트헤이트와 국가내에서의 분리 및 차별을 가리키는 소 아파르트헤이트로 구분한다. 집권 국민당은 1980년대 들어 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까지 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집착했다. 대 아파르트헤이트 (홈랜드 시스템)![]() ![]() 소위 분리발전정책은 베르부어드 박사가 1958년에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분리발전의 초석으로서 홈랜드 시스템의 구축을 구상하게 된다. 베르부어드는 이 홈랜드들에 궁극적으로 독립을 부여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백인 남아공과 홈랜드의 산업시설과 반투투자법인이 홈랜드의 발전과 고용을 위해 추진되었다. 같이 보기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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