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동(永登浦洞)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하북면에 속하였다. 1914년 시흥군 하북면 하방하곶리(下方下串里)와 중종리(重宗里)를 합쳐 북면 영등포리로 불렀고, 1917년 신설된 영등포면 영등포리가 되었다. 1931년 영등포읍 영등포리로 바뀌었고,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영등포정(永登浦町)이 되었다가 1946년 영등포동으로 개칭하였다.
연희면 여의도와 서강면 율도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가 되었다. 1936년 경성부에 여의도정으로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에 들면서 현재까지 영등포구와 함께 하였다.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가 놓여 있다. 조선시대에 여의도동은 한성부 연희방에 소속되었으며, 목마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현재 서쪽에는 국회의사당이 있으며, 동쪽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증권거래소, 한국방송공사 등이 위치하고 있어 한국의 정치, 금융, 언론 등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63빌딩, LG트윈타워, 서울국제금융센터, 파크원 같은 고층건물이 많다. 여의도공원이 있으며, 지하철 역으로는 여의도역과 여의나루역, 그리고 샛강역 이 있다. 매년 봄에 윤중로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상북면 도야미리(道也味里)로 불렸다. 1914년 시흥군 북면을 설치한 뒤 도야미리를 도림리로 바꾸어 북면에 소속시켰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도림정(道林町)이라 하였고, 1946년 도림동과 사옥동(絲屋洞, 현재의 문래동)으로 나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천군(陽川郡) 남산면(南山面) 양화리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楊東面) 양화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경성부의 확장으로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영등포출장소 양화정(楊花町)이 되었다가 1943년 6월 영등포구역소 양화정이 되었다. 1946년 10월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영등포구 양화동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상북면 도야미리(道也味里) 지역이었다. 1914년 시흥군 북면 도림리에 속하였고, 1936년 도림리 중 일부는 경성부에 편입되어 도림정이 되고 나머지는 시흥군 동면 도림리로 바뀌었다. 1949년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도림리가 신도림동으로 바뀌었고, 1980년 신도림동 일부는 구로구 신도림동으로, 나머지 신도림동은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속하게 되었다.
대림제2동
대림제3동
역사
1943년 6월 10일 출장소를 대체하여, 경기도 경성부 영등포구역소가 설치되었다.[2] 양화정에 영등포구역소가 있었다. (관할구역: 당산정·영등포정·여의도정·도림정·신길정·양화정·양평정·본동정·노량진정·상도정·흑석정·동작정)
1946년 서울시 영등포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때의 관할 구역은 당산동, 사옥동(현재의 문래동), 신길동, 양평동, 양화동, 영등포동, 도림동, 여의도동, 노량진동, 상도동, 본동, 흑석동, 동작동으로서 현재의 영등포구의 관할 구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구역소는 구청으로, 구장은 구청장으로, "정"은 "동"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8월 13일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구로리, 도림리, 번대방리가 편입되었다.[3] 이때 편입된 도림리는 "신도림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