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
이시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프랑스어: Isidore Geoffroy Saint-Hilaire, 1805년 12월 16일~1861년 11월 10일)은 프랑스의 동물학자이자 정상 구조에서의 편차에 대한 권위자이다. 1854년에 그는 éthologie(동물행동학)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1] 생애![]() 1805년 파리에서 박물학자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수학에 재능을 보였지만 결국 박물학과 의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1824년에는 아버지의 보조 자연학자로 활동했다. 1829년에 아버지를 위해 조류학 강의의 두 번째 부분을 맡아 강의했으며 그 후 3년 동안 아테네(Athénée)에서 동물학을, 에콜 프라티크(École pratique)에서 기형학을 가르쳤다.[2][3] 그는 1833년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837년에는 파리 과학부에서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그 다음해에 그는 보르도로 파견되어 그곳에서도 비슷한 교수진을 조직했다. 그 후 그는 1840년 파리 아카데미 감사원장, 1841년 아버지의 은퇴 후 박물관 교수, 1844년 대학 감사원장, 1845년 대중 교육을 위한 왕립 위원회 위원을 잇따라 맡았으며 1850년에는 앙리 마리 뒤크로테이 드 블랑빌이 사망하면서 과학부 동물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854년에는 Société zoologique d'acclimatation(동물 순응 협회)를 설립했으며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2][4] 그는 배꼽영양아(omphalosites), 복장틈새증(celosomya), 자웅동체(hermaphroditism) 등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teratologie(기형학)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6] 생틸레르는 1832년부터 1837년까지 그의 대표 기형학 작업물인 Histoire générale et particulière des anomalies de l'organisation chez l'homme et les animaux를 출판했다.[7] 1861년 파리의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남아메리카 고유종 거북인 프리놉스 힐라리(Phrynops hilarii)의 학명은 이시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대표 연구
또한 생틸레르는 동물학, 비교해부학 및 고생물학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집필했다.[2]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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