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후의 23세손인 아찬(阿飡) 허기(許奇)가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 때 안록산의 난을 맞아 당 현종(玄宗)을 호위한 공으로 황제(皇帝)의 성(姓)인 이씨(李氏)를 사성(賜姓) 받았다.
시조는 허기의 10세손인 이허겸(李許謙)으로 고려 현종 때에 ‘상서좌복야 상주국 소성현 개국후(尙書左僕射 上柱國邵城縣開國侯)’에 제수되어 식읍(食邑) 1,500호(戶)를 하사받았다. 이허겸의 딸은 김은부와 혼인하면서 덕종·정종·문종 등 세 왕의 외증조모가 되었다.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은 뛰어난 인품과 탁월한 능력으로 네왕을 섬기며 조정을 이끌었으며, 문종의 충신으로 추성좌세보사공신 문하시중 개부의 동삼사 수태사 감수국사 상주국 경원군 개국공(推誠佐世保社功臣 門下侍中 開府儀 同三司 守太師 監修國史 上柱國 慶源郡 開國公)에 올랐다. 그의 딸 셋은 문종의 비가 되었다. 특히 인예태후는 순종·선종·숙종을 낳아 인종에 이르기까지 왕들 모두가 인예태후의 혈통이었다.
인천 이씨는 고려 왕실의 외척으로서 10명의 왕비와 18명의 재상을 배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본관
인천(仁川)은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매소홀현이었는데 경덕왕때 소성으로 개칭, 율진군(시흥군)의 영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3년(태종 13)에 인천군이 되었으며 1949년 인천시로 개칭되고 1981년 7월 1일 직할시로 승격, 경기도에서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