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 편씨
절강 편씨(浙江片氏)는 절강성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1] 시조는 편갈송(片碣頌)이며, 그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중군으로 조선에 동래 하였다. 역사시조는 편갈송(片碣頌)이며, 그의 자(字)는 경수(景修), 호(號)는 모헌(慕軒)이다. 중국 당나라 황족 외척의 후손이라고 한다.[2] 명나라 신종 조에 어양총절사[3]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 동정명군총병사[4], 정유재란 당시, 제독군문섭병부상서중군제독으로 큰 공을 세웠다. 전란이 끝난 후 간신 정응태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경주시 금오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편풍세, 편풍원, 편산보 3형제가 금오산으로 가서 아버지를 봉양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세상을 등진 후였다. 아버지를 안장한 후 편풍세와 편풍원은 전라도 나주시로, 편산보는 전라도 만경읍으로 가서 세거하였다. 편갈송의 선조는 절강 사람으로 고조 할아버지 편지는 명나라에서 태자태사를 역임했으며 원래는 당나라 황실의 이씨의 종친이었으나 임금에 대한 충정을 인정받아 일편단심의 편자를 성으로 하사 받았으며 증조 할아버지 편일은 절강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주자의 청년 시절부터 10년간 스승인 이통(이연평) 또한 선조이다. 이통은 주희(주자)의 7년간의 대화와 서신을 기록한 연평답문 등을 남겼으며, 주자는 이통을 배향하였다, 이통은 나중에 공자묘에 배향된다. 주자는 "연평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 처참한 심정이 되었고, 나의 깨달음을 연평(이통) 선생에게 묻지 못함이 한이 된다."라고 하였다. 시조 편갈송은 울산 서생포 창표당에 배향되었으며, 200여 년이 지나 공적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전라도 유림의 계청으로 나주에 감명사를 세워 공을 기렸다. 편갈송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평양성과 전주성을 되찾고, 남원과 해남군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과 경주를 수복하고 울산 서생포왜성을 탈환하였다. 충청도 직산면 소사평에 세워진 〈흠차 병부상서 총독 제독군문 편갈송 승첩비〉와 《문소만록》에는 편갈송의 직산전투 승리가 기록되어 있다. 소사평 전투에서 여섯 번 연속으로 승리한 어양부대가 편갈송의 군대이다. 조선에 있던 조명 연합군의 승첩비는 일제가 모조리 뽑아 버렸다. 편갈송은 동정명군총병사로 이만오천여 병력의 절강군을 이끌고 참전한다. 마지막까지 조선에서 왜적과 싸우고 돌아가지 못한 명장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정승첩비문[5] 중군 제독 편갈송 휘하의 중군 수군 이천상 양천윤 노득 복일승 진잠 등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 친필 간찰을 보면 명나라 수군들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중에 온 진린에 대한 평가와는 상반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공을 세워 선조의 친서를 받고 조선에 머물며 쓴 편갈송의 시는 다음과 같다.
역대 인물의 사적을 모아놓은 책인 《금고실기》 1905년(광무 9)규장각본의 충훈에 편갈송이 실려있고[6], 철종 때 편갈송의 업적을 집대성한 《동원기략》이 있다. 도쿠토미 소호가 임진왜란을 연구하려고 참고했던 조선의 책 목록에 동원기략이 존재한다.[7] 본관절강은 중국 동남부 동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자강 하류의 남부를 점하고 있다. 전당강에 의하여 동서로 나누어지고 항주를 성도로 하고 있다. '성씨의 발생사 및 씨족별 인물사'의 저자인 족보학자 편홍기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성씨 250개 중 130개가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8] 인물
족보인구편(片)씨의 인구 분포를 보면, 경상북도 김천시·성주군·문경시 등지에는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이주해 온 종파의 6세 후손 약 160세대, 서울특별시에는 90년 전 황해도 연안군에서 이주해 온 13세의 후손, 충청남도 서산시·공주시·홍성군·당진시 등지에는 5세의 후손, 전라남도 나주시·무안군·함평군·영광군 등지에는 2 ·3 ·4세의 후손 약 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북한에는 황해도 평산 ·신계 ·송화, 평남 평양 ·안주 ·영변 등지에 몇 가구씩 산재해 있었다. 편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경주, 금강, 김천, 나주, 남양, 대전, 만경, 밀양, 보은, 석강, 세종, 수원, 순천, 신광, 안성, 양주, 언양, 영해, 의령, 이천, 인천, 장성, 전주, 절강, 정선, 창원, 통진, 평해, 해주, 홍주 등 총 29개 본관에 인구는 14,675명이었다. 이 중 절강 편씨는 10,678명이다. 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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