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기갑사단 (독일 국방군)![]() ![]() ![]() 제7기갑사단(7 Panzer Division)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침공전에서 에르빈 롬멜 장군의 지휘 하에 유령사단이라 불리며 활약한 기갑사단으로 폴란드 침공 당시 2경기계화사단을 개편한 사단이다. 부대 역사폴란드 전역폴란드 침공 당시 제7기갑사단은 2 경기갑사단 체제였다. 당시 사단의 전차 전력은 다음과 같다.[1] 롬멜과 프랑스 침공폴란드 침공 종료 후 히틀러는 롬멜이 전차전 지휘 경험이 없음에도 롬멜에게 기갑사단을 맡겼다. 사실 롬멜은 제1차 세계 대전 종료 후에 아직도 읽히고 있는 보병전술 교리서를 쓸 정도로 보병전술의 전문가였지 전차부대 경험은 없는 인물이었다. 1940년 2월 15일 부대의 지휘를 인수한 롬멜은 헤르만 호트 장군이 지휘하는 15 기갑군단에 배치되었다. 이 군단은 프랑스 침공의 주력부대 중 하나였다. 진격을 개시한 이래 쾌속 진격을 계속한 제7기갑사단은 적군에 의해 유령사단(독일어: Gespenster-Division)이라 불리었다. 롬멜은 리델 하트에 의해 전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비교적 상세히 적었다. 롬멜의 쾌속 진격은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에 모두 신출귀몰한 것이어서 제7기갑사단에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붙이게 하였다. 이런 제7기갑사단이었지만 아라스 전투(Arras)에서는 영국군의 마틸다 보병전차에게 고전을 면치못했는데 마틸다 전차의 장갑이 워낙 두꺼워 제7기갑사단 소속의 3호 전차로는 이빨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영국군 전차는 독일군의 만능 화포라 불린 88mm 대공포를 끌고 와서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아라스 전투는 1940년 프랑스 전투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전차전이었다. 1940년 프랑스에서 제7기갑사단의 대략적인 행적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전역 이후프랑스전 종료 후 제7기갑사단은 다른 독일군 부대처럼 바르바로사 작전에 투입되었다. 1942년, 휴식과 보충을 위해 프랑스로 이동했고, 이후 다시 동부 전선에 투입되어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6 군 구출작전에 참가했으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는 계속 소련군에 밀려 후퇴를 거듭했고, 1944년 쿠어란트으로 밀렸고, 마침내 1945년 동프로이센에서 포위망에 갇혔다. 그러나 일부 병력은 포위망을 탈출하여 서부 독일로 도망가 미군에게 항복했다. 역대 지휘관
부대 편제1940년 및 1943년 편제는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사단 예하 기계화보병 부대에서 여단편제가 사라지고, 저격병(Schützen)이란 표현이 모두 기갑척탄병(Panzergrenadier)으로 바뀐 점이 다르다.
기사십자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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