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로스 하이만(영어: Jeffry Ross Hyman, 1951년 5월 19일 ~ 2001년 4월 15일)은 미국의 음악가, 가수, 작곡가이자 펑크 록 밴드 라몬즈의 리드 보컬리스트로, 예명으로 조이 라몬(영어: Joey Ramone)을 사용한다. 조이 라몬의 이미지, 목소리, 라몬즈의 프론트맨으로 있던 기간이 반문화의 아이콘이 되게 하였다.[1]
어린 시절
제프리 로스 하이만은 1951년 5월 19일 미국 뉴욕주 뉴욕의 퀸스에서 유대인 가족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샬롯(혼전 성 맨델)과 노엘 하이만이다.[2] 태어났을 때 기생 쌍둥이가 있었으며, 쌍둥이는 수술로 제거하였다.[3] 이후 퀸스의 포리스트힐스에서 거주하였으며,[4] 하이만과 미래의 라몬스 멤버들은 모두 포리스트힐스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동생인 미키 리와 함께 자랐다. 행복하게 자랐지만, 하이만은 18세에 강박장애를 진단받았으며, 따돌림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첫 번째 아버지인 노엘 하이만과 이혼하였으며,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휴가 중 교통사고로 과부가 되었다.
하이만은 비틀즈, 더 후, 데이비드 보위, 스투지스의 팬이었으며, 특히 올디스와 필 스펙터가 제작한 걸그룹을 좋아하였다. 우상은 생일을 함께 보냈던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였다. 하이만은 13살부터 10년 동안 드럼을 연주하였으며, 17세부터는 통기타를 연주하였다.
스나이퍼
1972년, 하이만은 글램 펑크 밴드 스나이퍼에 들어가였다. 스나이퍼는 머서 아트 센터, 맥스 캔자스 시티, 코벤트리 등의 곳에서 뉴욕 돌스, 수어사이드, 퀸 엘리자베스 III 등과 함께 공연을 하였다.[5] 당시에는 제프 스타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6] 하이만은 1974년 초까지 스나이퍼에 머물러 있었으며, 이후 앨란 터너가 자리를 대체하였다.
라몬스
1974년, 제프리 하이맨은 펑크 록 밴드 라몬즈를 친구 존 커밍스와 더글러스 콜빈과 결성하였다. 콜빈은 벌써 "디 디 라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활동명을 "라몬"을 성으로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라몬의 의미는 1960년에서 1961년까지 실버 비틀즈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비틀즈에서 폴 매카트니가 공연명을 폴 라몬(Paul Ramon)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죽음
조이 라몬은 림프종으로 7년간 싸우다가 향년 49세의 나이로 2001년 4월 15일에 사망하였다.[7] 사망할 당시에는 U2의 곡 〈In a Little While〉을 들었다.[8] U2의 리드 가수 보노는 2014년에 진행된 라디오 538과의 인터뷰에서, 조이 라몬의 가족이 자신에게 조이가 사망하기 직전에 들었던 곡이 〈In a Little While〉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9][10]
조이의 첫 솔로 음반인 《Don't Worry About Me》는 2002년 사후로 발매되었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