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암
처용암(處容岩)은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외황강 하구에 떠있는 바위섬이다.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처용암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개운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가서 동침하였다. 이 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해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 혹은 아리비아 상인 등의 학설이 있다. 유래처용암에는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과 처용의 만남에 관한 설화가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삼국유사》의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제11권 헌강왕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외 자료의 기록이 외에 《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 고적 월명항〉과 〈울산군 고적〉, 《세종실록 지리지》의 〈울산군 처용암조〉, 《경상도 지리지》의 〈영이지적(靈異之跡)〉에 처용암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있다.[1] 교통울산광역시 시내버스 266번이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처용암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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