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퓌신 대로 (모네)
카퓌신 대로(프랑스어: Boulevard des Capucines)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1873년~1874년 사이에 그린 두 점의 유화로, 파리의 유명한 카퓌신 대로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한 점은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본으로, 수직형으로 대로를 따라 오페라 광장을 향해 내려다보는 눈 내린 거리 풍경을 묘사한다.[1] 다른 한 점은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소장본으로, 수평형에 화창한 겨울날의 거리를 보여준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된다.[1] 모네는 카퓌신 대로 35번지에 위치한 펠릭스 나다르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2][3] 높은 시점과 느슨한 붓터치가 특징인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길거리의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전망에서 카퓌신 대로의 소란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4] 작품 속 몇가지 특징은 당대 사진과 일본 우키요에 판화와 유사점을 보이며, 모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배경산업화와 근대화가 일상 풍경에 미치는 영향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빈번한 관심사였다.[5]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일대 거리는 프랑스 제2제국 시기 조르주외젠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따라 새롭게 탈바꿈했다. 모네는 1867년부터 1878년까지 이러한 새로운 파리의 풍경, 유명한 카퓌신 대로 등을 화폭에 담았다.[1] 1874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화가·조각가·판화가 무명 협회가 주최한 제1회 인상주의 전시가 카퓌신 대로 35번지에 있던 유명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모네가 〈카퓌신 대로〉를 그린 바로 그 장소였다.[6][7] 이 전시에서는 모네 외에도 세잔, 드가, 모리조,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등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인상주의라는 명칭 역시 이 전시에서 비롯되었는데, 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두고 "인상적이다"라고 조롱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7] 같은 전시에 관한 평론에서 쥘앙투안 카스타냐리는 이러한 배경을 더 자세히 설명하며 "그들은 풍경이 아니라 풍경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인상주의자이다"라고 썼다.[3] 상세푸시킨 미술관 소장본![]() 러시아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소장본은 수평 구도로 되어 있으며, 겨울 오후의 화창한 풍경을 포착한 가운데 건물 그림자가 그림의 전경에 드리워진 모습이다.[1][8] 당시 모네는 하루의 다른 시간대에서 조명과 날씨 환경, 캔버스 방향 등 다양한 요소를 실험하였는데, 〈카퓌신 대로〉의 두 작품 역시 그러한 실험의 일환으로 그려졌다.[9]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된 것은 바로 이 푸시킨 미술관 소장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1] 첫 공개 당시 〈카퓌신 대로〉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특히 루이 르루아는 작품 속 보행자들을 흐릿하게 뭉개놓은 점에 상당한 혹평을 날렸는데, 1874년 4월 25일 〈르 샤리바리〉지에 기고한 '인상주의 전시'에서 "검은색 혀로 핥은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8] 반면 에르네스트 셰스노는 1874년 5월 7일자 〈파리-주르날〉에서 이 그림에 대해 호평하며, 모네가 "길거리의 비범한 생동감"을 그림에 담았다고 평했다.[3] 미술사학자 조엘 아이작슨은 후술할 수직 구도의 〈카퓌신 대로〉가 전시되었다면 그 색상과 표현이 더욱 차분했다는 점에서 평론가들이 동일하게 반응했을지는 모를 일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3]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본![]() 미국 캔자스시티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본은 수직 구도로 되어 있으며, 카퓌신 대로에서 오페라 광장을 바라보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을 묘사한다. 그림의 왼편에는 하우스만의 파리 재개발 계획으로 새롭게 단장된 다층 건물이 배경에 드리워져 있으며 파리의 유명 건축물인 그랑 오텔이 보인다.[1] 대로에는 산책하는 사람들, 마차, 상인, 쇼핑객들로 붐비는 모습이다.[1][10] 그림 전경부의 가로수의 축을 따라서는 노란색과 갈색의 물체가 눈에 띄는데 원통형 광고기둥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른편 전경에는 붉은 분홍색 풍선이 덩어리져 있는 모습이다.[1]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신사모를 쓴 인물들이 이웃한 발코니에 서서 길거리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4] 길거리 사람들의 패턴으로 미뤄보아 보도를 따라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 걸음을 표현하였으며, 이는 곧 거리 공연이 이제 막 끝나고 보행자들이 작은 무리로 흩어지는 순간을 모네가 포착하였음을 시사한다.[3] 분석![]() 이 작품에서 높은 시점의 원근법과 느슨한 붓 터치를 사용한 것은 모네가 1860년대 후반부터 선보인 기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11] 높은 시점은 수평선을 위로 올려 그림에서 하늘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인다. 또한, 높은 시점은 배경과 전경 간의 색조 대비와 색 채도를 최소화하며,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이 풍경이 자기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12] 보는 이의 입장에서 높은 시점에서 카퓌신 대로의 활기를 볼 수 있기에, 풍경을 들여다보면서도 그 움직임에서는 벗어나 있을 수 있다. 그림 속에서는 보행자와 마차 등 대로 위의 분주한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특히 느슨한 검은색 붓터치로 흐릿하게 그린 인물들을 통해 당시 프랑스 신흥계층이 입었던 검은 외투 (habits noirs)를 드러내고 있다.[4] 이러한 갑작스럽고 짧은 붓터치는 균일한 색의 얼룩으로 보행자의 모습을 형성하며, 명확한 구조적 실루엣 없이 붐비는 보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13] 명암 면에서는 모네가 훗날 "덮어씌우기, 전체에 똑같은 조명을 퍼뜨리기"라 설명한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균일한 조명을 채택하고 있다.[2] 1870년대 초부터 모네는 캔버스의 질감과 그로 인한 영향을 시험해보기 시작하였는데, 가는선의 능직형 캔버스에 알갱이지는 밑칠 물감을 얇게 칠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4] 넬슨앳킨스 소장본에서는 하나의 밑칠 표면에 물감을 칠하였음이 두드러지는데, 캔버스의 직조에 따라 튀어나온 부분에 물감이 묻어나고, 움푹 들어간 부분은 물감이 닿지 않고 있다.[4] 이는 캔버스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구분을 만들어내며, "아른거리는 효과를 줌으로써 겨울철 분위기는 물론 아래쪽 흐릿한 보행자들과 보는 이와의 거리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4] 영향![]() 당시 사진 기법과 그로 인한 제약이 모네의 그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초창기 카메라는 셔터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는 사진에서 흐릿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 속의 흐릿한 보행자들은 그 시절 카메라로 보통 속도로 걷는 사람들을 찍은 모습을 연상시킨다.[14] 당시 유명 사진가였던 아돌프 브롱 (Adolphe Braun)의 작품도 모네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브롱의 사진은 높은 시점에서 흐릿한 인물들을 긴 수평선 아래에 두고 찍었는데, 이는 나다르 스튜디오의 2층에서 바라본 모네의 대로 풍경과 유사하다.[2][6] 모네가 그린 대로의 흐릿한 보행자들은 브라운이 루브르 강변에서 찍은 〈파리의 파노라마〉 연작에서 아르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15]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우키요에 판화 역시 수평선이 높고 인물과 사물이 잘려 있는 등, 초창기 사진에서 드러나는 기법과 닮은 면이 많다.[2][12] 같이 보기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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