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대대
콜롬비아 대대는 6.25 전쟁 당시 유엔사령부 휘하에서 싸운 콜롬비아의 파병부대이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복무한 콜롬비아의 부대이다. 주로 미국 제7보병사단과 제2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1][2] 1951년부터 1954년까지 활동했다. 배경1950년 라우레아노 고메즈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미국-콜롬비아 관계는 새로 갱신되었다. 고메스는 동맹으로서 직접 관여하는 대가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있었던 콜롬비아의 전임 대통령들의 반미 및 친독 감정과 연관된 대미 정책들을 완전히 폐기하기를 원했다.[3] 특히 한국전쟁에 대해서 중남미 국가들 중 유일하게 파병을 결정한 것도 당시 고메즈 정권의 반공 및 친미적인 입장과 관련이 있었다.[4] 고메즈는 유엔 안보 헌장의 중요성과 집단 안보의 개념을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메즈는 콜롬비아군에 유엔을 대표하여 언제든지 파병할 수 있는 원정군을 꾸릴 것을 요구했다. 대대의 전체 병력은 게릴라가 능한 용병들도 포함된 5,100명의 병사들과 순양함 ARC Almirante Padilla, ARC Capitán Tono, 그리고 ARC Almirante Brión에 탑승한 300명의 승조원들이 있었다.[5] 6.25 전쟁 발발과 파병1950년 6월 25일 새벽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콜롬비아 대대는 1951년 6월 15일 부산항으로 출항했다. 대대장은 중령 제이미 폴라니야 푸요였다.[1] 이들은 1951년 8월 흑운토령 전투를 시작으로 불모고지 전투, 삼각고지 전투, 금성 진격전에 참여해 승리를 거두었다.[6][7] 특히 불모고지 전투는 콜롬비아 대대에게 유명한데, 전투 동안 대대 파병된 병력 중에서 20%나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8] 콜롬비아 대대는 6.25 전쟁 기간 동안 163명이 전사했고, 44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60명이 실종되고 30명이 포로로 붙잡혔다.[2][9][10] 콜롬비아는 이러한 공로로 인하여 오늘날까지 유엔군사령부의 회원국으로서 활동 중에 있다. 콜롬비아 대대는 전쟁 직후의 참전 경험을 살려서 미국의 레인저를 표방하여 란세로를 창설하게 된다. 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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