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제롬 타란티노(영어: Quentin Jerome Tarantino 퀜틴 제롬 태런티노[*], 1963년3월 27일 ~ )는 미국의 영화 감독, 작가, 프로듀서, 배우이다.
생애
쿠엔틴 타란티노는 1963년 미국테네시주녹스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 타란티노는 일찍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탈고한 첫 영화 각본은 《트루 로맨스》(True Romance)이다. 본래 타란티노는 이 각본을 가지고 스스로 직접 영화를 만들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20대였던 그는 캘리포니아주, LA 군, 맨해튼 비치에 있는 비디오테이프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주말마다 16mm 필름으로 영화 촬영을 했는데, 3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겨우 완성을 했지만 찍은 필름들을 다 모아 놓고 보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더욱이 후반 작업, 편집 단계에서 화재로 인해 필름이 손실되기도 하였다. 그땐 영화 제목이 《나의 친한 친구의 생일》(My Best Friend's Birthday)이었다.[1]
실패를 겪은 후에는 코언 형제의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을 본보기로 삼고, 수준 높은 영화로 제작하고 싶어 각본을 다시 손질하고 투자도 받아 메이저 영화로 만들기 위해 5년 정도 고생을 했지만 끝내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시나리오 작가로라도 데뷔하고 싶어 이 각본을 팔려고 다시 온갖 영화사를 돌아다녔다. 다행히 《트루 로맨스》 각본은 판매가 되었으나 제작이 늦어졌고, 그 사이 타란티노는 자신이 쓴 또 다른 각본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을 본인이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로 완성하였다. 감독 데뷔작인 저예산 독립 영화 《저수지의 개들》은 큰 성공을 거뒀고, 차기작으로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에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가 존경하는 감독인 토니 스콧에 의해 영화가 완성되었고, 극장가에도 개봉하였다.[1][2]
《저수지의 개들》은 일본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았고, 《펄프 픽션》은 프랑스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두 편의 대성공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된 후 타란티노는 더욱 활발한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그의 각본으로 영화 《내츄럴 본 킬러》(Natural Born Killers)를 만들기도 했다. 1997년 세 번째 연출작 《재키 브라운》(Jackie Brown)을 만든 뒤로 한동안 공백 기간을 가졌다가 6년 만에 《킬 빌》(Kill Bill)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는 다섯 번째 연출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와 여섯 번째 연출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ards)를 만들었다.[3][4]
2007년 스크림 시상식에서의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쿠엔틴 타란티노. (간단한 애칭으로 RR & QT)
타란티노는 이야기의 비선형 구성을 자주 구사한다. 그가 감독한 거의 모든 영화에선 시간대로,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경우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시간 배열과,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엮어 놓는 다중 플롯 등을 기본 뼈대로 주로 사용하였다.[10]
그의 영화에는 대사량이 무척 많기로 유명하다. 특별히 사건의 핵심이 되는 대사 외에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조롱 등의 대화가 넘쳐날 정도로 많은 것이 타란티노의 전매 특허이다. 수다가 곧 영화의 핵심이라 할 정도이다.[11]
영화 음악으로는 별도의 음악 감독과 함께 작업하여 순수 창작곡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타란티노 본인이 직접 고전 팝 음악을 선곡하여 영화 속에 삽입하는 식으로 영화 음악을 작업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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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normally use original score. I don’t trust any composer to do it… The music is so important. The idea of paying a guy and showing him your movie at the end and then he comes over it; I would never give anybody that kind of responsibility… I have one of the best soundtrack collections… That’s how I write it, that’s how I design it; I go into my soundtrack collection and I start visualizing the sequences… I cut out the composers. I work with the best composers, Ennio Morricone, Lalo Schifrin, John Berry…but I don’t deal with them.
저는 보통 순수 창작곡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작곡가를 믿지 않습니다. 음악은 매우 중요합니다 .... (생략)
B급 영화의 요소들을 선호하며, 이것을 주류 영화로 재창조하는 데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B급 영화 중 기괴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과장된 성적 표현 등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버무리는 데에 능숙하다. 고전 필름 누아르, 스파게티 웨스턴 등의 장르 역시도 타란티노의 탁월한 현대적 재창조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커다란 파급 효과를 나타냈으며, 19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이와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이 리치 (Guy Ritchie), 에드거 라이트 (Edgar Wright), 그리고 류승완 등 "제2의 타란티노"란 수식어가 붙은 신예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다.[14][15][16][17][18][19][20][21][22][23][24][25][26]
동양 문화 중 일본의 사무라이, 중국의 무협 등을 동경하며 그것을 서구적으로 재창조하기도 했다.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한 영화는 《킬 빌》이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오마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는 1960년대 홍콩쇼 브라더스 영화들과 70년대의 이소룡 영화, 그리고 고전 사무라이 영화들을 광적으로 좋아하기로 유명하다.[27][28]
그에 대한 평가는 자국인 미국보다 프랑스 등의 유럽에서 더 좋은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화상인 아카데미 상과 골든 글러브 상에선 상복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대신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펄프 픽션》을 통해 황금 종려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꾸준히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거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