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안토니우스 이사우리쿠스퀸투스 안토니우스 이사우리쿠스(Quintus Antonius Isauricus)는 하드리아누스 시기인 서기 130년대 기간 브리타니아에서 빅트릭스 제6군단을 지휘한 로마의 군단장이다. 그는 이후에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기인 140년 5월에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플라쿠스를 동료 집정관으로 한 보좌 집정관으로 복무한 것이 확인됐다.[1] 생애앤서니 벌리는 이사우리쿠스의 이름과 그의 가문으로 추정되는 것에 대해 몇 차례 발언을 했었다.[2] 벌리는 퀸투스 안토니누스 씨족이 로마 제국의 모든 영역에서 흔하지 않은 이들이었고, 원로원 의원 단 한 명만이 알려진 것이 전부였다고 언급했다. '이사우리쿠스'라는 '코크노멘'은 로마 공화정 말의 두 집정관인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기원전 79년의 집정관)와 그의 아들이자 기원전 48년과 41년 두 번에 걸쳐 집정관에 오른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리우리쿠스 등을 연상시키며 이들의 후손들은 서기 2세기까지 추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벌리는 안토니우스 이사우리쿠스가 이 공화정 시대 집정관들의 여식들을 통한 후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퀸투스 안토니누스 이사우리쿠스는 에보라쿰 (요크)의 한 금석문에서 언급된다.[3] 이 금석문은 그의 아내 소시아 윤키나에게 헌정된 것으로, 벌리는 그녀가 99년과 107년에 집정관을 지낸 퀸투스 소시우스 세네키오라는 또 다른 집정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2] '파스티 페리아룸 라티나룸'의 한 구절과 한 로마의 군사 증명서 등은 그의 집정관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1] 요크의 금석문![]() 이사우리쿠스를 언급한 금석문은 그의 아내 소시아 윤키나가 포르투나에게 봉헌한 제단이다. 1839년에 옛 요크역 터에서 발견되었고, 인근의 로마 욕장과 관련되어 있다. 포르투나 여신에 대한 봉헌은 보통 욕장과 관련한 것들이었다.[4] 크기 71 x 40 x 38 cm의 이 금석문은 석회석으로 만들어졌고, 글씨 일곱 줄이 새겨져 있다. 이 금석문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DEAE / FORTUNAE / SOSIA / IUNCINA / Q(uinti) ANTONI / ISAURICI / LEG(ati) AUG(usti)
각주
외부 링크
|
Portal di Ensiklopedia Du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