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스콰이어
크리스 스콰이어(영어: Chris Squire, 1948년 3월 4일 ~ 2015년 6월 27일)는 베이시스트로 가장 잘 알려진 영국의 음악가, 가수, 작곡가였으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창립 멤버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밴드에 남아 1969년부터 2014년까지 발매된 모든 스튜디오 음반에 참여하며 최장수 원년 멤버였다. 경력예스1967년 9월, 스콰이어는 피터 뱅크스, 보컬리스트 클라이브 베일리, 드러머 밥 해거가 속해 있던 사이키델릭 밴드 메이블 그리어스 토이숍에 합류하였다.[1] 이들은 마퀴 클럽에서 공연을 했고, 그곳에서 가까운 라 샤스라는 바를 운영하던 잭 배리가 이들의 무대를 관람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연주 실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뭔가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고 말했다.[2] 어느 날 밤 라 샤스에서 배리는 스콰이어에게 바에서 일하던 존 앤더슨을 소개했다. 앤더슨은 이전에 건의 리드 싱어이자 솔로 가수로 활동했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2] 두 사람은 사이먼 & 가펑클, 더 어소시에이션 등 공통의 음악적 취향과 보컬 하모니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며 가까워졌고, 며칠 뒤에는 이후 예스의 첫 음반에 수록될 곡인 〈Sweetness〉를 함께 만들게 되었다.[3] 밴드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앤더슨과 스콰이어는 드러머 빌 브루퍼드, 키보디스트 토니 케이, 그리고 피터 뱅크스를 리허설에 참여시키며 라인업을 갖추었다. 이들 다섯 명은 기존 밴드명인 메이블 그리어스 토이숍을 버리기로 합의하고, 뱅크스가 처음 제안한 이름인 예스로 밴드명을 결정하였다.[1] 예스라는 이름으로의 첫 공연은 1968년 8월 3일, 에식스주 이스트머지아의 한 청소년 캠프에서 이루어졌다.[4] 스콰이어는 밴드 결성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내 연주 스타일을 싫어해서 세션 일도 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훨씬 더 단순한 연주를 원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을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예스를 시작한 거였다"고 말했다.[5] 그는 이후 자신의 베이스 솔로 곡 〈A Bass Odyssey〉를 개발하였다.[6] 1969년 8월, 예스는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 《Yes》를 발매하였다. 음반 사진은 스콰이어의 첫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마틴 애들먼이 촬영하였다. 스콰이어는 수록곡 8곡 중 4곡인 〈Beyond & Before〉, 〈Looking Around〉, 〈Harold Land〉, 〈Sweetness〉의 작곡에 참여하여 작곡가로서 이름을 올렸다.[7] 1972년 7월, 브루퍼드가 밴드를 떠나고 앨런 화이트가 그의 후임으로 합류한 뒤, 스콰이어는 리듬 섹션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조정하였다. 그는 "내가 너무 많이 연주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신은 없었다. 빌과 함께할 때는 내가 하는 연주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앨런과 함께하면서는 이전보다 조금 덜 연주해도 내 연주가 충분히 전달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8] 스콰이어는 1973년 음반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의 수록곡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에서의 자신의 연주를 두고 "내가 연주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연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였다.[9] 스콰이어는 1969년부터 2014년까지 예스가 발표한 21개의 스튜디오 음반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멤버였다. 그는 밴드 음악의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아마도 가장 신비로운" 멤버로도 여겨졌다.[10] 《Heaven & Earth》는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음반이었다.[11] 질병 및 사망2015년 5월 19일, 예스는 스콰이어가 급성 적혈구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치료를 받는 동안 공연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12][13] 2015년 6월 27일 늦은 저녁, 스콰이어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치료를 받던 중 67세의 나이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14][11][15][16]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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