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그빌라란(영어: City of Tagbilaran, 타갈로그어: Lungsod ng Tagbilaran, 세부아노어: Dakbayan sa Tagbilaran)은 필리핀보홀주의 주도로, 보홀섬 남서부에 위치한다. 면적은 32.70km2, 해안선 길이는 최장 13 km, 인구는 92,297명(2007년 기준)이며 15개 바랑가이를 관할한다. 마닐라(필리핀의 수도)에서 남동쪽으로 630 km, 세부에서 남쪽으로 7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세부와 마닐라를 연결하는 타그빌라란 공항이 있기 때문에 보홀섬의 관문 역할을 하며, 주변 섬의 리조트의 거점이다.
타그빌라란은 보홀주의 정치, 교통의 중심일뿐만 아니라 관광, 금융, 식품 산업 등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보홀 대학교, 홀리 네임 대학교 등 고등 교육 기관이 있는 교육의 중심이기도 하다.
역사
타그빌라란 시는 스페인 정복 이전에는 중국과 말레이 반도와의 교역으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스페인의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필리핀으로 향하기 위해 멕시코를 지나 1565년 3월에 보홀섬에 도달했다. 그는 보홀섬에 사는 다투 시카투나(Datu Sikatuna)와 화평을 맺고 현재 타그빌라란 시역에 속한 해안에서 서로의 왼팔을 베어 피를 내어 하나의 용기에 부어 와인과 섞어 마시면서 혈맹을 맺었다. 이 사건은 매년 7월 내내 계속 산두고 축제(Sandugo Festival)에서 재현되고 있다.
레가스피의 세부, 마닐라 정복으로 필리핀은 스페인령이 되었다. 타그빌라란(산호세 데 타그빌라란)은 1742년 2월 9일에 동쪽 근처의 바클라욘(Baclayon) 마을에서 분리독립한 도시가 되었다. 1966년 7월 1일, 타그빌라란 시 법령(Republic Act No. 4660)에 따라 타그빌라란 시가 성립되었다. 타그빌라란은 미국-필리핀 전쟁에서 미군에 점령당했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 점령되면서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시내 우부한(Ubujan)은 보홀인 프란시스코 살라자르 대령이 비센테 큐벨로(Vicente Cubello)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게릴라를 모아 궐기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살라자르 자신도 전사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지만, 그 용기는 현재도 칭송받고 있다.[1]
인구
인구는 2010년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96,792명이 있다.
타그빌라란 인구 조사
연도
인구
±% p.a.
1990
56,363
—
1995
66,683
+3.20%
2000
77,700
+3.33%
2007
92,297
+2.40%
2010
96,792
+1.75%
출처: 국가통계국(2010, 2007)
행정구역
타그빌라란에는 15개의 바랑가이가 있으며, 연간성장률은 1.75%이다. 그러나 시 인구의 44%가 상업과 물류가 활발한 4개의 도시 구역 내부에 집중되어 거주한다.
↑
인구 및 가구 조사 (2010). 〈Region VII (Central Visayas)〉. 《Total Population by Province, City, Municipality and Barangay》. NSO. 29 jun 2016에 확인함.다음 날짜 값 확인 필요: |access-date=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