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두한/보존문서2
김두한 출생 문제1. 소결: 생모는 김계월. 당시 안동김문에서는 김두한을 인정함. 1) 당시 문헌
2) 현대 문헌
2. 허위설의 근거는 발견되지 않음. 출전도 불명.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3:50 (KST)
그리고 안동김씨 문중에서 인정했다구요? 자료를 출저를 올려주십시오.
위 글에 주장보다 김구,이범석,신익희등 독립운동가들과 친분있었다는점과 김좌진대신 훈장받았다는점(독재정권과 상극사이)과 김좌진의 어머니 김좌진의 첫째부인 오숙근,김두한의 부인 이재희 살았다는점과 오숙근이 홀로 중국에 들어가 김좌진의 유해을 수습하고 몰래 안장한후 해방후 1957년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김두한이홍성군 서부면(西部面) 이호리(梨湖里)에서 충남 보령으로 이장한점 제가 말한 이것만해도 저 위에 글들에 충분히 반론이 된다고 보여진다고 생각 되는데요? 그리고 제가 한홍구가 쓴 대한민국사대한 적은거는 우리나라 역사의 정설은 일부는 잘못된 정보가 정설로 되어 있는점은 생각해서 적었습니다.(실제 광해군과 의자왕을 폭군으로 왜곡되었고 신라가 통일이라고 된점 봐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4:39 (KST)영주니
토론 맨위에 글과 현재 사전에 등재되어있는 글들 보면 저 비판글은 거짓말이라고 밖에 보이지가 않는데요? 이게 악의적이 아니고 뭘까요?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4:48 (KST)
그리고 안동김씨 항렬을 보면 김좌진(金佐鎭)김두한(金斗漢)는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 27세손이고 김두한의자녀 김을동씨는 28세손.[1]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4:56 (KST)영주니 즉석 ref 강의용 주석자, 지금 제가 뭘 한 걸까요? 편집 모드에서 잘 곱씹어보세요. 이걸 처음부터 하셨으면 문서 잠금 사태까진 죽어도 안왔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문서 베껴다 놓지 마세요. 저작권 침해입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5:02 (KST)
2007년 10월 5일 위원회에 보내주신 민원사항에 관한 답변입니다.
정리: 김두한 출생 문제 - 진실설김두한은 김좌진과 김계월 사이의 소생으로, 1930년 당시 유가족으로 인정되고 안동 김씨 문중에서도 수용한 것으로 보임. 1. 근거 자료: 당시 문헌 《매일신보》 1925년 9월 15일, 《매일신보》 1930년 2월 13일, 《조선일보》 1930년 3월 17일, 《중외일보》 1930년 2월 18일, 《중외일보》 1930년 5월 30일 2. 진실설을 지지할 인용 출처 《말》 2003년 5월호 기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한글판. "김두한" 항목 3. 그외 제기된 상황적 논거 (단, 이 부분의 출처는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
4. 기타: 허위설의 근거가 불투명하며, 그 출전조차 불분명. 반론 근거 없음. 보충할 부분이 있으면 이 아래로 기입하세요.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5:11 (KST)
↓ ↓ 김두한은 정말 ‘장군의 아들’인가 장군의 아들’이 넘나드는 끝없는 거짓말의 경계선 ‘장군의 아들’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인기드라마 「야인시대」는 요즘 해방 정국에서의 좌우 대립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오늘날의 분단을 잉태한 중대한 갈림길이었고 그래서 학자들도 이 시기를 다루는 데는 여간 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야인시대」는 그러한 엄중한 시대를 한낱 깡패들의 패싸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구도는 우리가 지난 1960∼1970년대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반공교육’의 틀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념에 마비돼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좌익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우익 .
여기에 영화 「장군의 아들」 1편 시나리오에 관계한 것으로 알려진 도올 김용옥은 그의 저서 『도올세설』에서 “내가 김두한에 관해 출간된 도서를 다 훑어보고 난 후에 내린 하드 팩트(hard fact)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930년 조선일보에 실린 어릴적 사진. 현재 그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과 동일하다. 그는 개성에서 자라난 부모를 모르는 고아다. 열 살 때 서울로 내려와서 거지노릇을 하다가 왕초라는 거지대장에게 붙들려 장차구다리(청계천) 밑 거지소굴에서 컸다. (중략) 다시 말해서 그가 장차구다리 밑의 거지에서 종로 일대를 제패하는 깡패두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픽션과는 전혀 무관한 사태이며, 김두한 자신에게도 의식된 족보의 사실일 수가 없으며 (중략) 그 이외의 어떠한 논리도 가식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요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역사학자 한홍구는 그의 저서 『대한민국사』에서 이 문제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두한이 정말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중략) 그러나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는 확증 역시 어디에도 없다.” 그러면서 그는 김좌진 장군의 부인 등 유족들이 그를 아들로 인정했고, 안동 김씨 가문에서도 그를 일가로 받아들여준 사실을 지적해 두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한홍구 역시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라는 확증을 제시하지는 못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은 몇 다리 걸치면서 ‘사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뒤에서 쓸 터이지만, 결론적으로 김두한은 장군의 아들이 맞다. 그럼에도 의혹이 끊이지 않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김두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 그는 1963년에 출간한 『피로 물들인 건국전야』라는 회고록에서, 그리고 1969년의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야화」에서 자신의 출생과 어린 시절과 이후 활동에 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일관했던 것이다.
© 김두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김두환 어릴적 사진 그 중에서도 우리를 실소케 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김옥균이 자신의 할아버지, 즉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김옥균은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뒤 ‘3일 천하’로 끝나고 일본으로 망명을 가 계속 일본에서 머물다 1894년, 상해에서 조선 황실이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했다. 김좌진은 김옥균과 같은 안동 김씨이기는 하나 1889년에 태어났고 당시 김옥균은 조선 제1의 역적으로 일본에 있었으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또 김좌진이 서울에 머물던 1910년대에 백정들의 결사체인 형평사 초대회장을 지냈다고 하는데(나중에 그를 길러준 설렁탕집 ‘인사옥’의 주인인 원 노인이 백정 출신으로 이때 김좌진과 인연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김좌진의 활동기록 어디에도 형평사 운동을 했다는 흔적은 없으며, 형평사는 1923년 백정 출신 자산가 이학찬이 진주에서 처음으로 결성했다. 이때는 이미 김좌진이 만주에서 청산리 전투(1920년)를 치르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시기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해방 뒤 북의 김일성이 “8·15 후 50일 만에 나에게 북 노동당원증과 함께 순금 단추가 번쩍이며 금 모리스가 눈부신 육군 소장 제복을 보내왔다”며 당시 거리에 “김두한이 남반부 인민군 사령관에 취임하게 되었다”는 벽보가 나붙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넘어 폭소가 터진다.
먼저 김두한 자신이 말하는 출생배경을 들어보자. 김좌진은 1889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청년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안창호 등과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다 1916년 즈음에는 노백린 등과 광복단이라는 비밀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해 활동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김두한의 얘기는 그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30대 초반의 김두환. 어릴적 사진과 비교하면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김좌진이 서울 근교 야산(사직공원 뒤)에서 동지들과 회합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일경들이 이를 알고 들이닥쳐 포위망을 좁혀왔다. 김좌진은 동지들을 대피시킨 뒤 홀로 일제 순경들을 상대해 때려눕히고 자신도 도피했다. 쫓아오는 일경들을 피하기 위해 사직동의 어느 양반집의 담을 넘어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 집은 궁녀 박 상궁의 집이었고 그 방은 박 상궁의 딸 박계숙의 방이었다. 박계숙은 그를 책장 안에 감추어 주었고 김좌진은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책장 안에 있던 그는 간이 크게도 잠이 들었고 그 사이 박 상궁은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날로 하인들을 고향으로 보내버리고 이후 모녀가 손수 김좌진의 시중을 들었다. 이때 태어난 혁명아가 바로 김두한이었다. 통속무협소설에나 나올 법한 드라마틱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과장은 섞였을지라도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조사해 본 바로는 여기엔 단 하나의 사실도 없는, 완벽한 거짓말이다. 김두한의 생모는 박계숙이라는 양반집 딸이 아니라 김계월이라는 기생이었다. 1930년 1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이 암살당하자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국내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고 유족의 동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집중했다. 그 가운데 김두한과 관련된 최초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그의 가족은 지금 전부 그의 근거지 이든 길림성 모처에 잇다는데 그의 칠십 로모와 그의 안해며 그의 아우되는 김동진씨를 합하야 세 식구가 잇다 하며 시외 모처에 씨의 서자 한 사람이 잇슬 이라는데 “(『동아일보』 1930년 2월 13일자) 여기서 그의 아내는 그가 만주에서 결혼한 나혜국이고 칠십 노모는 장모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 시외 모처에 있다는 김좌진의 서자가 바로 김두한이지만 『동아일보』는 그 이름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곧이어 『조선일보』 개성특파원 최문우가 바로 이 김두한의 거처가 시외 모처가 아니라 개성이라는 것을 알아내 취재를 해서 1930년 3월 17일부터 2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그의 기사에는 김두한의 어머니 김계월과 김두한의 사진까지 실려 있어 신빙성에서 나무랄 것이 없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가(김좌진) 가장 사랑하던 애첩 김계월(26)의 몸에서 출생한 김두한(12)이란 아들이 현재 홍성에 잇느니 혹은 경성 시외에 잇느니 하야 그 확실한 소재처를 아지 못할 안이라 애첩 김계월이가 원산 방면에서 료리업을 한다고 보도되엇거니와 그는 모다 오보이엇스며 허설이엇고 정작 김좌진의 아들 두한이 잇는 곳은 아버지가 잇는 바 바람 거친 그곳과는 정반대로 고요한 조선의 도읍 개성에 잇다. 그는 목하 개성 서본뎡(西本町) 이백 오십 사 번지에서 자긔의 조모와 가치 쓸슬한 그날그날을 소일하고 잇다.”『조선일보』 1930년 3월 17일자) 그가 3월 12일 김두한의 집을 찾아갔을 때 김두한은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아직 도라오지 안코 어둠컴컴한 방에 두한의 외조모만 병으로 누어 잇섯슬 ”이었다고 한다. 그가 취재한 바에 따라 김두한의 출생과정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 1930년 조선일보에 실린 김두환의 생모 김계월 김계월의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김상회라는 사람으로 명문 집안이었으나 구한말 격변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이었다. 집안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김계월은 15세 때 서울의 다동권번(茶洞券番)이라는 기생집에 팔려 가게 되었다. 연도를 계산해보면 1916년 즈음이다. 바로 김좌진이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때 기생집에서 김좌진과 김계월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이후 3년 동안 동거했으나 김좌진은 1918년 홀연 만주로 떠나버리고 김계월은 서울에 홀로 남게 되었다. 김두한은 회고록에서 “떠나는 아버지를 붙들고 어머니께서 태아가 있음을 고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나으면 두한이라 하고 딸을 나으면 두옥이라 부르라 하시면서 홀연히 집을 떠나셨다고 후일 어머니가 말해주셨다”고 하는데 이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먼저 펴낸 회고록에서는 이후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 자신이 일곱 살 때 “예비검속됐다”거나 “투옥됐다”고 말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육성증언에서는 “여덟 살 때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최문우 기자가 개성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열두 살로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는 왜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일까. 여기에는 김두한이 감추고 싶은 가족의 내력이 있었을 것이다. 남편을 홀로 떠나보낸 김계월은 살아갈 방도가 막막했다. 그래서 결국 노모와 아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김좌진을 찾아갔다. 김두한이 자신이 여섯 살 때 만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은 그래서 사실이다. 다만 어슴푸레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었고 그래서 그가 말하는 연도가 죄다 실제와 틀리게 된 것일 터이다.
© 맨 오른쪽이 생모인 김계월. 현재까지는 김두한의 주장에 따라 박계숙이 생모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노모의 건강이 악화돼 다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가 대략 1926년 즈음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서울의 인사동에 거처를 정하였으나 역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김계월은 다시 기생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어쨌든 안동 김씨 가문의 첩으로서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는 주위의 만류로 그만두고 친지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했다. 그러나 이도 오래 버틸 일은 아니었고 결국 친지들이 없는 개성으로 가서 기생을 하기로 작정하고 개성으로 온 것이다. 아마도 개성에서의 기생생활도 만만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김계월은 다른 기생 두 명을 데리고 요리업을 하기 위해 함흥으로 떠나버렸다. 최문우 기자가 찾아갔을 때 김두한이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김계월은 함흥에 있다가 다시 더 북쪽의 흥원으로 갔고 아마도 이후 소식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 김두한은 서울에 살 때 잠시 교동보통학교를 다닌 적이 있을 뿐 개성으로 옮긴 이후엔 학교를 가지 못했고 그나마 어머니와의 연락이 끊긴 뒤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집을 나와 서울로 와서 청계천 장차구다리 밑에서 거지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두한이 개성 출신의 천애고아라는 얘기는 이렇게 해서 나왔다. 김두한은 이런 자신의 불우한 가족사를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항일투사였듯이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항일투사의 대열에 올리기 위해 일제의 탄압을 받은 것처럼 말을 지어냈다. 이렇게 김두한의 거짓말은 자신의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어두운 부분은 삭제하고 자신을 영웅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의 회고록과 육성증언은 바로 그런 거짓말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김두한이 아버지가 공산당원의 총탄에 스러졌다는 사실 때문에 반공으로 돌아서게 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김좌진은 사망 당시 무정부주의나 사회주의 경향으로 기운 활동가였으며 김두한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조모에 따르면 그는 개성에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 “네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청국에 있는데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사회주의자이다. 나도 열 네 살만 되면 아버지를 따라가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고 한다. 러시아혁명의 여파가 밀려오던 당시 사회주의는 민족해방에 우호적인 사상이었다. 심지어 그는 아버지가 공산당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을 해방이 된 뒤 극우단체인 백의사 인물들이 일제 기밀문서를 통해 캐낸 사실을 전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고 하나 이미 김좌진 장군이 죽었을 때 그 사실은 신문을 통해 다 보도되었다. 오히려 그는 해방 직후 잠시 좌익에 몸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엔 진보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가 해방 정국에서 벌인 우익활동은 아버지와는 관계가 없고 그저 주먹 세계의 시류에 따랐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문제는 모든 정황이 이러한 데도 드라마 「야인시대」는 그 기본 줄기를 김두한의 거짓말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주먹세계를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마피아를 다룬 외국영화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명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야인시대」도 초반부에서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감상했다. 그런데 깡패를 그저 깡패로 다루지 않기 시작하면서 재미도 반감됐다. 깡패에게도 인간적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고, 뭇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구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깡패가 아니라 케케묵은 좌우대립 이데올로기를 그에 덧씌워 정치적으로 미화하려면 차라리 드라마 제목을 「야인시대」가 아닌「반공시대」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이다.--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07 (KST)영주니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17 (KST)영주니
그리고 저 기사로 문헌 근거로 내세우시는거 같은데 그저 인터넷에 여기저기 퍼지는 것과 다른게 없어 보이는데요?--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20 (KST)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6:31 (KST)
이래서 어떻게 신뢰가 갑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39 (KST)영주니
이제 사람을 난독증 취급을 하시는군요?--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44 (KST)영주니
광해군,의자왕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신지요? (삼국사기에는 광개토태왕을 광개토 왕으로 나와있습니다.)--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6:45 (KST)영주니
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문서를 훼손했다구요? 어느 문서를 훼손을 했는지요?--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06 (KST)
지금 등록된 내용이 전혀 잘못된 정보를 등록한게 올바른 사전 입니까?--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11 (KST)영주니
2007년 10월 9일 저희 홈페이지에 문의하신 내용에 관한 답변입니다. ===================================================================1. 우리 위원회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로 확정하여 공표한 자는 2006년도의 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는대로 106명뿐이고, 위 106명중에 김두한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2. 따라서, 위 블로그에 게시된 해당 정보(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김두한씨를 친일행위자로 분류하고 있다)는 일응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여지는 바, 네이버측에 위 해당 정보를 삭제하여 줄 것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3. 참고로, 사자명예훼손 부분은 고소권자가 사자의 친족 또는 그 자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위원회가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29 (KST)영주니 ↑ 조작. 나와 전혀 무관한 글에 내 ID를 살짝 덧붙여 날조함. 아울러 본건과 하등 관계없음.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7:31 (KST)
1.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입니다. 버튼 "이수정"<sjlee77@pcic.go.kr> | 메일 수신거부 수신 거부 목록에 추가하시겠습니까? sjlee77@pcic.go.kr 수신거부(메일 주소) pcic.go.kr 수신거부(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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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화) 09:52:58 [GMT +09:00 (서울)] ma4you@naver.com
2007년 10월 5일 위원회에 보내주신 민원사항에 관한 답변입니다. ==========================================================================1. 우리 위원회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친일반민족행위 여부는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제4조에 의거 우리 위원회의 의결로써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바, 우리 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 확정사실 등에 대한 공표는 매년 대통령과 정기국회에 보고한 후 공표하도록 되어 있어 동 보고 이전에는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당사자 및 그 배우자,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 이외에는 통지 내지 공개 할 수 없도록 동법 제23조 및 제25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께서 문의하신 특정인의 친일여부에 대하여 우리 위원회가 확인해 드릴수 없는 점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참고로, 우리 위원회에서는 2006년도에 친일반민족행위로 최종 결정된 106명에 대하여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대통령 및 국회에 보고한 후 공표한 사실이 있으며, 금년 말에도 친일반민족행위로 최종 결정된 자에 대하여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대통령 및 국회에 보고한 후 공표할 예정에 있습니다. 2006년도 조사보고서에 대하여는 우리 위원회 홈페이지 '보도자료'란에 게재하여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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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9일 저희 홈페이지에 문의하신 내용에 관한 답변입니다. ==========================================================================1. 우리 위원회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로 확정하여 공표한 자는 2006년도의 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는대로 106명뿐이고, 위 106명중에 김두한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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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위원회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로 확정하여 공표한 자는 2006년도의 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는대로 106명뿐이고, 위 106명중에 김두한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2. 따라서, 위 블로그에 게시된 해당 정보(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김두한씨를 친일행위자로 분류하고 있다)는 일응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여지는 바, 네이버측에 위 해당 정보를 삭제하여 줄 것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3. 참고로, 사자명예훼손 부분은 고소권자가 사자의 친족 또는 그 자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위원회가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34 (KST)영주니 이거 뭐 눈아파서 다 읽을 수나 있을까요?아예 요약해서 주장과 주장에 대한 근거를 명확하게 적어 두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제 이메일 뒤져서 가져온겁니다. 무슨 님의 아이디를 넣었다는겁니까? 이때 작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어느분께서 친일파로 기재하셔서 이의제기했더니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에 가서 따지라고 해서 직접 가서 답변 받아온겁니다.--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39 (KST)영주니
제 이메일 뒤져서 가져온겁니다. 무슨 님의 아이디를 넣었다는겁니까? 이때 작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어느분께서 친일파로 기재하셔서 이의제기했더니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에 가서 따지라고 해서 직접 가서 답변 받아온겁니다.--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39 (KST)영주니
△ 저는 이런 것 받은 적도 없고, 문의한 적도 없는데, 왜 제멋대로 내 ID가 들어 있는지?
어디에 있습니까? 왜 거짓말?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7:44 (KST)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46 (KST)영주니 ↑내가 받지 않은 메일에 제멋대로 내 ID를 넣었잖아요. 내가 받은 바 없는 메일에 내 ID를 붙여놓으면 그게 조작이지.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7:48 (KST)
글을 다시 보세요. [LeeSI]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답변내용입니다. << 이건 제가 님에게 보시라는 얘기이고 2007년 10월 9일 저희 홈페이지에 문의하신 내용에 관한 답변입니다.<< 이거는 반민족행위 진상위원회에 민원한거 답변 이메일 제목 입니다.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7:52 (KST)영주니 ↑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느닷없이 그 메일이 등장할 이유가 전혀 없겠지. 그런데, 사실을 보면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조작하는 것이지요. 문서 편집 기록을 보면 확인되지만, 그거 올려놓고 여러번 재편집까지 했잖아요.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7:58 (KST)
말 안했습니까? 님께서 거짓이라고 말하니깐 제가 답변 원본내용 가져 온거 아닙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01 (KST)영주니
그후에 무슨 거짓이다 은근슬쩍 <- 뭐이런 말하고부터 지금 이상하게 나가는군요?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02 (KST)영주니
지금 뭐하자는 시추에이션 입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04 (KST)영주니
모두 냉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이 토론에 참가하고 계신 모든 사용자 분들이 현재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모두 냉정을 찾을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시고, 이 문서의 올바른 편집 방향에 대해 토론하십시오. 비난을 하지 말고, 건전한 비판을 합시다. 위키백과:인신 공격 참조. --해피해피 2008년 2월 28일 (목) 18:05 (KST)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쭤봤죠, "최초 본곳은 어디이냐고"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08 (KST)영주니 ↑ 그 부분 복사해서 붙이세요. 고의적으로 게시물 길게 만들어놓고, 나중에 엉뚱한 말을 꾸며냅니까?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12 (KST)
너는,외국인, 바보취급..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10 (KST)영주니 ↑ 애초에 짬뽕, 끼워맞추기 따위로 모함한게 누구였더라?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12 (KST)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13 (KST)영주니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8:13 (KST)
무슨 모함을 조작을 했다는 겁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16 (KST)영주니 근거된 신문자료의 제호와 날짜를 무려 3번 반복했고, 그 이후 직접 신문기사를 확인했는지 2번 물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짬뽕, 끼워맞추기다" 운운하는 것이 모함이 아닌지? 거기다, 네이버 블로그는 도대체 무엇인지? 거기에 슬쩍 내 ID를 끼워넣어 엉뚱한 메일을 왜 붙이는지?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18 (KST)
무슨 고의적으로 게시물 길게 만들고 엉뚱말을 꾸며냈다는겁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18 (KST)영주니
△ 증거 대세요. 이 토론 어디에 저런 부분이 존재했습니까?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21 (KST)
토론 내용에 주의토론란에도 위키백과의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메일 주소 등 개인적인 신상을 공개하거나 인용이 허락되지 않은 내용을 올리면 안됩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8:21 (KST)
혹시 다른사람과 대화하거나 토론할때 상대방 글은 안보시고 자신의 의견만 내십니까? 위로 올리셔서 다시 글 보십시요. 난또 무슨 일인줄 알았군요.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22 (KST)영주니
다른 근거제시는 한번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위로 올려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작년에 개인적 겪었던 일을 적었고 그런데 님께서는 저보고 거짓이라고 해서 제가 이메일뒤져서 가져오니 님은 갑자기 조작이라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25 (KST)영주니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27 (KST)영주니
영주니님 사용자:유영준으로 서명을 달아주십시오. 헷갈려요!--알밤한대 2008년 2월 28일 (목) 18:31 (KST) 토론에 빗나간 얘기지만,그나저나 2007년 10월 25일에 김좌진 장군의 생가에서 있었던 김좌진 장군 전승기념 축제에 김을동씨와 송일국씨가 참여한 것을 보았는데요. 김을동씨는 손녀라는 명목으로 참여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알밤한대 2008년 2월 28일 (목) 18:28 (KST)
무슨 문서를 조작을 했다는 겁니까?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31 (KST)영주니 △ 하지 않은 발언을 했다고 하는게 조작이 아닙니까? 그리고, 중간에 인용하려면 전체를 다 해야지, 왜 멋대로 편집해서 바꿉니까? 그게 조작이죠.
--영주니 2008년 2월 28일 (목) 18:33 (KST)사용자: 유영준
사람 바보취급만들지마시고 제가 무슨 조작을했고 모함을했고 거짓을 했다는건지 그에대해 말씀을 하십시요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34 (KST)사용자 영준
말을 또박또박하게 해주십시요. 지금 님께서 하신 말씀들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39 (KST)사용자 영준 △ 또 직전 부분을 짤라내었음.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40 (KST)
↑이렇게 결합되어 있는 것인데, 자꾸 일부만 짤라서 오도하고 있잖아요. --LeeSI 2008년 2월 28일 (목) 18:50 (KST)
유영준님 의견에 쓸데없는 엔터넣지마세요. -- 피첼 2008년 2월 28일 (목) 18:46 (KST) 제안본문에 적혀야 할 내용들을 먼저 제시하고 부적절한 항목을 지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서로 대립되는 의견이 있을 때에는, 해당 내용의 지명도에 따라 ‘모두’ 적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8:45 (KST)
= 조작한 문자가 어느것이십니까? 2) 네이버 블로그 등, 나와 전혀 무관한데, 제멋대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후, 엉뚱한 메일을 가져와 내 ID를 넣어서 나와 관련인 것처럼 조작 = 네이버 블로그 얘기하시는거면 아까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위원회]얘기하시는거 같으신데 위로 글을 보십시요. 다시 적겠습니다. 저는 글을쓰다가 작년에 겪었던 개인적일은 적었을뿐인데 님께서 거짓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제가 원본 답변은 가지고 와서 적었더니 님께서 이거 조작이다라고 말하시고나서 제가 원본 내용들 전부 다 가져와 적었죠? 근데 이게 무슨 조작이라는 겁니까? 3) 근거가 된 신문의 제호와 날짜를 반복해서 제시해주었으나, 실제로는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짬뽕", "끼워맟주기" 운운하며, 마치 가짜 출처인 것처럼 조작. = 그러니깐 언제 반복적으로 적었고 제가 이렇게 여쭸죠 "그 자료가 어디서 최초로 봤냐고 " 근데 님께서는 제 말 전부 무시 하시고 님의 의견만 말씀 하셨습니다.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51 (KST)사용자 영준
지금 저랑 싸우자는 말이십니까? 자료 근거 제시 반론 제시는 전혀 못하고 혼자만의 의견을 내고 글투가 싸우자투에 상대 글은 전혀 안보고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55 (KST)사용자 영준
전 그쪽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군요.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56 (KST)사용자 영준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8:59 (KST)사용자 영준
남에말 일체 무시하고 그저 혼자 이상한말만 하시고 (무슨 흐름끊고 조작한다는건지요?)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00 (KST)사용자 영준
매일신보 1925년 9월 15일 - 요약: 김계월이 모친 박씨와 자식 두한을 데리고 만주로가 김좌진과 상봉 매일신보 1930년 2월 13일 - 요약: 김좌진의 유족은 4명. 아들 두한은 2-3년째 소재불명. 생모 김계월. 조선일보 1930년 3월 17일 - 요약: 김계월에게서 출생한 김두한 개성에서 외할머니와 살고 있음 중외일보 1930년 2월 18일 - 요약: 김계월에게서 태어난 김두한이 외할머니와 만주로 가서 김좌진과 상봉 중외일보 1930년 5월 30일 - 요약: 안동 김씨, 유가족 김두한의 교육을 위해 회합 ↑이거 주장하신다는 말 아닙니까?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02 (KST)사용자 영준
(여기 있던 끝없는 뉴스 무단펌질 삭제됨) by 피첼 ↑이게 어원 아닙니까?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04 (KST)사용자 영준
그래서 지금 결론이 뭡니까?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06 (KST)사용자영준
자꾸 혼자서 자신만의 의견을 내고 흐름을 님께서 끊고 이런식으로 물타기 아닌 물타기를 하시는거 같습니다만?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09 (KST)사용자 영준
할 말 다 없어지니 물타기 아닌 물타기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11 (KST)사용자 영준
계속 스스로 무덤을 파시는거 같습니다. --유영준 2008년 2월 28일 (목) 19:14 (KST)사용자 영준 냉각용 보호토론이 지나치게 가열되어 토론란을 12시간 보호합니다. 두 분 다 하룻밤 푹 자시고 머리를 식히신 다음 다시 토론하시기 바랍니다. -- 피첼 2008년 2월 28일 (목) 19:20 (K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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