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보존문서1저명성독립 문서로 등재할 만큼의 백과사전 적합성, 그리고 저명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백두 (토론) 2009년 7월 9일 (목) 14:59 (KST)
프로축구팬 아니시면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인지를 못하실겁니다. 전부 근거와 출처가 있는데 왜 자꾸 저명성을 걸고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저명성에 위배되는 부분을 지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일단 아웃라인만 잡은거고 여러가지 보충할 사항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검색을 많이 하는 사건이고 프로축구 관련 문서들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단어로 많이 인용되고 있으니 절대 삭제 반대입니다. 《토론》--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oojanam0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K리그 연고지는 문서는 일괄적인 연고지 제도 변천사에 대해서 서술하는거고 이 문서는 K리그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서술하는문서이기 때문에 합치면 안 됩니다. 왜 저명성이 떨어지는지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oojanam0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3개월 동안 추가적인 의견이 없으므로, K-리그 연고지 문서에 표제어를 연맹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식 용어인 구단 완전지역연고제도로 바꾸어 근래 요새 바빠서 내용 보충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용 보충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토론에서 합의가 난게 아닌데 Snowleopard님이 무슨 권한으로 병합을 하는거죠? Boojanam01 (토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오류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오류설 혹은 허구설 논파 완료아래 기재된 반 FC 서울 커뮤니티에서 만들어 속칭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오류설 혹은 허구설이라 떠돌면서 제기된 부분들 모두 증거자료와 함께 논파되어 문서에 반영되어있습니다. 문서 본문의 시행 단락 설명과 시간대별 사건 테이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여기 한국어 공식 위키백과가 아닌 리그베다 위키백과에서 벌어진 서울연고공동화정 정책 자발성 vs 강제성 끝짱토론 게시물, 토론 결과 정리 및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허구설 주장자 패배 인정 게시물 처음부터 자세히 읽으시면 아래 오류와 허구 입증이 모두 가설이나 독자연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일단 이건 제가 쓴 것이 아니라 풋볼케이닷넷의 다문제일님의 글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 문서가 가지고 있는 오류와 허구들을 입증하는 글이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Fetx2002 (토론) 2013년 2월 9일 (토) 15:53 (KST) 안양 창단 기념 칼럼 <1> 비극의 시작,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의 발단에 대한 재검토 안양 프로축구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저는 낙관론자는 못 되는 사람이라서 일단 험로를 예상하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이 아니라고 하여 단지 조롱과 비웃음거리로만 삼는 태도는 경멸합니다. 따지고 보면 K리그 역사 자체도 졸속으로 시작되어 온갖 흙먼지를 피우고 스스로 구덩이를 파며 갈지자로 휘청거리며 걷다가 여기까지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룩졌던 한국 축구사에 한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고, 일련의 사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민감한 주제들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환점을 맞아 지난 시기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축덕으로서의 욕구가 솟아나기도 하고요. 그러려면 모든 일의 시초가 되는 1996(~1999?)년의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필수일 텐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과정 끝에 내린 결론으로 연고이전 문제에 관한 어떤 의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분쟁은 과거지사가 됐다고 여기고 있고, 어차피 이미 각자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특정 결론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 아닐 것이며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된 결론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LG 축구단의 안양→서울 연고이전을 둘러싼 축구팬 사회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해의 교집합이 꽤나 넓게 형성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한 마디로 "잘못됐다"는 것. 계기를 보나 과정을 보나 결과를 보나 말이죠. 제가 아는 한 웹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문서인 위키피디아 한국판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기사(이하 위키 문서)를 읽어보면, 연맹의 판단 착오(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 또는 재벌 간의 협잡(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 또는 당시 정부의 강압(청와대 지시)에 인해 촉발되었으며, 경기장 문제 등 졸속시행으로 인한 온갖 촌극을 벌인 끝에 1999년 서울 구단 창단 결정으로 '철폐'될 수밖에 없었던, 게다가 서울 방출(?) 후 최초 연고지를 유지하는 구단이 한 개도 없는 등 어떠한 소득을 거두지도 못했던, 그야말로 삽질의 파노라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위키 기반의 웹사이트, 예컨대 엔하위키 같은 곳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입은 옷만 다를 뿐 몸뚱이는 그대로라고 해도 무방하며 심지어 연고이전을 반대한다는 풋케위키의 해당 문서 도 좀 지난 버전의 위키 문서를 전재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가 이 문제에 대해, 적어도 네티즌-축구팬 사이에서는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그만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느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송송 뚫린 구멍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일단 위키 문서에서 '서울 공동화 정책'의 원인으로 상호 모순되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는 것부터 걸립니다. 위키 문서는 '발단' 항목에서 J리그의 성공에 자극받은 연맹이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해 '서울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는 요지를 근거 자료도 거의 제시하지 않으면서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도록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이란 제목을 단 항목에서는 당초 서울을 원하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서울 연고를 공동화시켰다는 사뭇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다음 '시행' 항목에서는 당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지방분권화의 일환으로 서울 소재 구단의 지방 분산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이모티콘이 나올 만하지 않습니까. -_-ㅋ (도대체 뭐가 진짜 원인이라는 건지...) 잘나가던 J리그의 도쿄 공동화를 모방했다?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의 K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지방분권화를 추진하던 청와대 지시 때문이다? 세 가지가 꼭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하나를 강조하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은 상식이겠죠. 만약, 위키 문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각주를 달면서 “...었다는 설이 있다”는 유보적 표현도 없이, 엄연한 축구계 ‘외부’인 청와대™의 의지에서 비롯된 서울 소재 구단들에 대한 ‘강압’적인 연고 이전과 그에 따른 해당 구단들의 완강한 ‘저항’을 자신만만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시행’ 항목의 원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쨌든 축구계 ‘내부’에서 나온 발상이었다는 ‘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설’이나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설’은 조금이라도 설자리가 줄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J리그 모방설이나 삼성 참여 유도설을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청와대 지시와 같은 것은 설령 실재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마지막 도화선 정도 구실을 한 것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되긴 힘들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논을 갈라 각각 다른 곳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는 양상은 비단 저 문서가 아니더라도 위키피디아 류의 집단 연구 문서가 항상 안고 있는 문제점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남이 시켜서 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했다”고 하긴 힘들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이 정도는 진영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종합해 보자고 하기엔 두 가지 설의 근거가 워낙 빈약합니다. J리그 모방설을 설명하는 ‘발단’ 항목에서 근거 자료의 출처를 밝힌 각주는 단 한 개인데 그나마도 베르디 가와사키의 창단 과정에 대한 것으로 전체적인 논점과는 별 관계가 없는 글입니다. 삼성 참여 유도설을 다루는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 항목에는 덕지덕지 여러 개의 각주가 붙어있습니다만 역시 클릭해서 확인해 보면 “삼성그룹이 서울 연고로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고 하자 당시 협회와 연맹을 장악하고 있던 현대그룹이 위협을 느끼고 이를 무산시켰으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삼성의 리그 참여를 유도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서울 공동화를 단행했다”는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전무하며, 월드컵 유치전과 삼성의 K리그 참가 과정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일 뿐입니다. 위키 문서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어도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글쎄요, 이런 것도 찾아내는 실력이라면 벌써 찾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화·유공·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일화·유공·LG가 내년시즌부터 서울을 연고로 할수 없게 된다. 11월초 청와대가 프로연맹을 통해 이들 3개구단에 대해 서울연고지 이전지침을 내렸다. http://ikfhs.tistory.com/entry/서울연고공동화정책
덥석 물기엔 일단 분량이 너무 짧아 구체성이 부족하다든지, (한참 나중인 2003년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를 가장한 에세이 같은 것을 빼놓는다면) 이른바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자료라든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일단 저 기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서울 공동화 정책’이 당사자인 연맹이나 구단들의 의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오로지 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상식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작용(강압)이 있으면 반작용(저항)도 있는 법. 역설적으로 반작용의 존재는 작용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위키 문서에서 내세우는 ‘저항’의 근거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하여 3개 서울 연고 구단들은 12월까지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기 위해 연맹에 저항하였으나[18]
↑ “일화, LG, 유공 서울 포기 못해”, 《한겨레신문》, 1995년 12월 13일 작성.
프로축구계의 "뜨거운 감자", 지역연고제의 정착은 끝내 스스로 풀 수 없는가.
연맹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지역연고제 정착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용구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서울연고팀은 내년 시즌부터 무조건 서울을 비워야 한다"고 결의했으나, 서울 연고팀들의 탈서울 거부 움직임으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유공은 다음 시즌부터 목동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방침을 세우고 서울 잔류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일화쪽은 내년에도 동대문을 홈구장으로 계속 사용할 계획으로 연고지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도 "두 팀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떠날 수 없다"며 서울 연고를 고수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연맹은 이에 따라 지난 7일 서울연고 구단들이 연말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경우 내년 시즌 프로리그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세우고 각 구단에 서울이전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연맹의 이런 내부방침은 최악의 경우 프로축구 자체의 공멸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구단들의 탈서울 기피현상은 우선 관중동원 등에서 가장 풍부한 시장성을 갖추고 있는 서울을 놓치기 싫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구단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일부 구단관계자들의 근시안적 사고방식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지역연고제의 주범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로축구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판의 규모를 먼저 키운다는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당장의 손익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축구 관계자들은 프로축구가 지역연고에 확실히 기반할 때만 관중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고 국민적 호응을 되찾을 수 있다며 관계 구단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서울 3개 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태도는 포철팀이 포항으로 팀명칭을 변경하며 독립법인화해 연고지에 뿌리를 내리고, 전남·전북팀이 본격 활동하는 등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지역연고제의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용구장을 확보(건설 계획이라고 봐야겠죠)할 경우 서울 잔류를 보장했는데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되는 구단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대목이지만 역시 긴 말 않겠습니다. 헌데 해당 구단들이 ‘탈서울 거부 움직임’이란 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껏해야 연맹이 기한으로 정한 ’96시즌에도 여전히 서울의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내비추었다는 것에 불과함은 그냥 넘기기 어렵군요. 위키 문서에서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하는 LG 구단의 태도는 더욱 한심해서 다른 구단 눈치 보느라 미루고 있다는 게 고작인데, 과연 이 정도 반응을 ’동대문 3구단의 지방 분산‘이라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연맹이 내년까지 하라고 했는데 따를 뜻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면 그게 전면적 거부지 무슨 말장난이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꼭 연맹이 정한 타임라인에 맞춰 후다닥 일을 처리해야만 기본 방침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개념 없이 놀던 구단들이 시간 약속 정확히 지켜 해당 지역 들어가서, 프로 경기에 손색없는 경기장 바로 확보하고 유랑 경기 같은 거 싹 없애버리고 했다면 당시 한국 축구 현실에서 훨씬 더 불가사의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큰일을 진행하는 데는 언제나 과도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기간이 꼭 (연맹 이사회가 결의한 시점인) 1995년 2월 이후 ‘1년 내’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1년보다 훨씬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방침 자체에 대한 거부라고 보는 것은 비약입니다. 사정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냐고요?
또한 안양종합경기장은 1년간 경기장 개보수를 했으며 부천은 아예 프로축구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없어서 1996년도부터 2000년까지 서울 목동 주경기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안 역시 야간 경기가 가능한 조명탑이 없는 종합경기장이어서 일몰 상황 발생한 뒤에 제비뽑기로 승부를 가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물론 위 기사가 ‘전면적 거부’에 대한 증거로서는 부족한 것처럼, ‘전면적 찬성’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95년 2월의 연맹 이사회 결의 직전에 해당 구단들이 나타낸 움직임을 추적하는 편이 훨씬 낫겠죠. 상식적으로 구단들이 나중에 연맹에 정한 방침과 유사한 행동을 이미 그때 보였다면 ‘공동화’가 단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니까요. 그런데 위키 문서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어,
1994년 4월 대한축구협회에서 서울 동대문 운동장을 공동 연고지로 하는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의 서울 연고권의 분산을 추진중이었지만[16]
일단 16번 각주에 연결된 근거 자료는 ‘스포츠에 “地自制” 바람’이란 표제의 <경향신문> 1994년 4월 15일자 기사로 당시 이상룡 수원시장이 LG 구단 측에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의 해당 본문은 “이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서울을 연고로한 LG·유공·일화등 3개구단의 연고권 분산을 추진하고있는 상황에서...”라고 한 기사 말미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아마 지자제라는 용어가 떡하니 들어있는 표제로써 김영삼 정부의 지시사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해당 구단들의 자발적 의지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구단 관계자들은 최근 정부와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지금이야 말로 프로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축구와 태권도를 특별관리 종목으로 선정,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여서 구단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연고 설정과 전용구장 확보 등에 정부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 구단 사무국장 선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문제는 최근 단장회의에서도 빈번히 거론되고 있어 조만간 마스터 플랜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방법에 따르면 도시 단위로 연고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와 포철은 우선적으로 울산-경남,포항-경북으로 묶어주고 기업의 지역연고에 따라 대우를 부산-제주로,유공은 인천-경기로 할당하며 LG와 일화를 서울의 강남이나 강북으로 지정한다는 것. 이같은 방안에 대해 LG와 일화도 다른 연고지를 찾고 서울은 연고팀 없이 비워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직 팀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나 연고지 미확립으로 프로야구에 설움을 당해 온 각 구단 관계자들은 연고지 할당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강조는 인용자) 연합뉴스 1993-12-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723566
그쪽 친구들 옛날 신문 열심히 뒤져서 리그 가입 전 LG가 서울 연고를 희망했다는 사실 따위는 잘도 찾아내면서 이런 건 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던 건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LG+축구+연고지 때려 넣고 뉴스 클릭해서 오래된 순으로 정렬시키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기사인데 말이죠. 이제 제가 왜 청와대 지시설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월간 축구>의 단신 기사에 연연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아셨을 겁니다. ‘지시’는 생략된 거라고요? 예,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습니다. ^^b 물론 구단 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라는 구절 같은 것은 따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그럼 동대문 3구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각자 연고지를 확정하게 됐을까... 요? 에 대해선 다음 이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칫통 님이 쓰셨습니다: 우선 저는 96년 일어났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서울연고구단의 이전 자체가 2004년, 2006년 연고이전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4년 2006년의 연고이전의 원인은 과거 부터 있어온 최대 시장인 서울시장에 대한 구단의 탐욕이 원인이고 그것이 폭발하게 된 요인은 월드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수도 공동화 정책의 영향을 받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애당초 일본에서 수도공동화 정책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부터가 에러지요. 저도 칫통님과 마찬가지로 '서울 공동화 정책'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당시 협회 차원에서 추진했던 '정책'은 어디까지나 '도시 단위 연고지'를 확립한다는 거였고 굳이 서울을 비우겠다는 정책 목표가 수립되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서울을 비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연고지 확립을 위함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유공 LG 일화 같으면 그 '도시 단위'란 서울이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았는데 최종적인 선택이 서울 외 수도권 도시였을 뿐입니다. 물론 상호합의 하에 말이죠. 그러니 연맹에서 2002 월드컵을 전후해서 서울 구단 창설을 추진했음을 들어 '서울 공동화 정책'이 '철폐'되었다고 하는 건 뻘소리일 수밖에요. 수립된 적이 있어야 철폐가 되든지 말든지 하죠. LG 축구단의 '서울 복귀'를 연맹에서 손놓고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공동화'가 허구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일단 전회에 인용한 <연합뉴스> 1993년 12월 1일자 기사에서는 유공=인천/경기 LG=강북 일화=강남이 드러나는데 LG 일화의 서울 외 수도권 연고지 후보군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 어정쩡하게 돼 있는 프로축구팀들의 지역연고도 하반기까지는 재조정해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하고 있는 LG, 일화, 유공 등 3팀에 대해 수원, 성남, 인천 등으로 연고를 갖게 하거나 또는 강남과 강북 등으로 나누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프로구단들의 전용축구장 건립을 위해서 문체부와 합리적 방안을 모색중이다. 전용축구장을 만들려면 적어도 2만여평의 땅이 필요하나 현행법상 제약조건이 많은데 문체부쪽에서 "건축법 등을 개정해서라도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언질을 줌에 따라 프로구단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대우, 일화를 빼고는 대부분의 프로구단들이 이런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전용축구장 건립에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축구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축구협회는 이와 함께 동대문운동장을 전용축구장으로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는 뜻을 굳히고 이미 정부쪽에 이런 의사를 표명해놓고 있는데 그 귀추가 주목된다.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함) 한겨레 1994.07.15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1500289108005&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07-15&officeId=00028&pageNo=8&printNo=1954&publishType=00010
이때까지는 본 문제를 논의하는 상위 기관이 대한축구협회로 나타나는데, 참고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4년 7월 30일에 창설되었고 당시 대의원 10명 중에 7명이 당연직으로 선출된 각 구단 단장들이었습니다.
프로축구 포항제철 아톰즈가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다. 포항제철(POSCO)은 25일 지난 73년 창단이후 그룹차원에서 운영돼온 축구팀을 국내 최초로 단일 지역을 연고로 재창단키로 하고 前포철부사장 李大公씨(52)를 구단사장에, 崔영만 前포항시체육회 이사(46)를 단장에 내정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전용구장을 확보한 포항제철은 시즌이 종료되는 대로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법인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주식공모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 뒤 빠르면 내년 시즌 개막에 앞서 법인으로 출범시킬 방침이다. 포항제철의 별도법인 전환움직임은 金滿堤회장 취임이후 취해진 '군살빼기'에다 스포츠가 기업보다는 지역연고중심으로 전환돼야한다는 대원칙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국내 프로축구는 전남 드래곤즈가 동광양,순천,여수를 중심으로 철저한 지역연고중심으로 출범해 본격적인 연고지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현대는 올해부터 이미 유니폼에 울산을 표기했으며 서울지역에 연고를 둔 일화 유공 LG도 수도권으로 연고구장을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 된다. 연합뉴스 1994-10-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21571
동대문 3구단을 포함한 K리그 연고지 재조정 문제를 다룬 기사 중에 처음으로 서울 분할 방안을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서울 외 수도권 즉 인천/경기 지역으로의 이전 움직임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주어는 정부도 협회도 누구도 아닌 일화 유공 LG입니다. 아직 95년 2월 연맹 결의(95년 11월 청와대 지시?) 이전입니다.
'제8구단' 전남 드래곤즈가 이달 말께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할 테세를 갖추고 있는 것과 함께 일화.유공.LG도 서울을 탈피,수도권 도시를 새 연고지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4-11-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82044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그러나 이들 3개구단이 연고도시를 선택하지 못할 경우 오는 2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강제로 연고도시를 배정키로해 구단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년시즌 8구단의 페넌트레이스는 도시대항의 경쟁장으로 변모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 안 그래도 됩니다. 이 문장의 바로 위를 보면,
아직 도시연고를 확정하지 않은 일화등 3개구단은 올해안에 연고도시를 선정할 계획이다. 일화는 성남, 유공은 부천, LG는 서울 또는 수원을 연고도시로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 LG,유공,일화가 몰려있는 서울지역의 연고지 재배치는 현행대로 공동구역으로 하자는 안과 지역적으로 3등분하자는 안이 나와 추후 이사회에서 논의키로 했다. 연합뉴스 1994-12-2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837115
이상의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 관계자 사이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 논의가 1년 동안 진행되며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 구체적인 도시 이름이 나오는 가운데 새로 설립된 프로연맹에서 하나의 정책으로 확립되었다는 것 외의 결론은 불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지방 축구 활성화니 하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지역연고 확립 특히 ‘도시연고’라는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당시 축구계에 동대문 3구단이 서울이라는 도시연고를 확립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LG의 ‘서울 연고 복귀론’에 청와대 지시설을 비롯한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는 모처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위키 문서가 전하지 않는 1995년 2월 이전의 진실입니다. 물론 95년 2월 이후라고 해서 그러한 도시연고 확립을 향한 각 구단의 움직임이 딱히 달라질 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구단들 스스로 말을 꺼내놓고 막상 연맹에서 정책으로 확립하니 전면 거부로 돌아섰다고 한다면, 흠...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공부해라!”고 하면 공부하기 싫어지는 그런 심리인가요 -_-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차라리 실제 움직임을 보여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니 서울 독점을 노리고 눈치 보기 대작전을 폈다면 모를까 말이죠.
또한 지역연고지 조정을 마무리해 프로축구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던 프로연맹의 야심찬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김기복 프로연맹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해당 구단에 여러 차례 문서를 보내 올해 안에 지역연고지를 옮기도록 종용했으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하루빨리 입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프로연맹에 따르면 LG는 안양, 일화는 성남·과천·평택, 유공은 인천 등과 연고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일부 구단은 이미 방안을 확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개 구단은 서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발표를 미룬 채 상대 구단의 동태만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밑줄 친 부분이 보여주는 당시 3구단의 연고 문제 협의 지역. LG는 1년 사이에 수원에서 안양으로 맘을 바꾸었는데 뭐 이건 삼성 때문이겠죠. “이미 방안을 확정해 놓은” “일부 구단”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구단들에게 강제로 연고지를 배정했다고 하는 것이 천하의 헛소리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3구단은 이렇게 시종일관 수도권 도시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지방 축구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대의 명분에 어긋나는 연고지 선택이었다” 는 얘기는 뭡니까.
프로축구연맹은 또 지역연고제 확립을 위해 그동안 서울을 연고로 하던 팀들중 LG는 창원과 대전, 안양중 한곳을 선택하기로 했으며 일화는 다음달 16일 이후 확정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1996-02-2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040294
한편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했던 3개구단은 지역연고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일화가 천안, 유공이 부천, LG가 창원으로 홈 구장을 옮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1996-03-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102646
안양은 LG연구소 LG전선등 각종 계열사들이 자리잡고 있고 서울 등 인근 도시의 축구팬들가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인구 1백27만여명의 대전은 이들 중 최대 도시이며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LG와는 별 연관이 없는게 결정적인 흠. 반면 창원은 축구열기가 드높은 데다 LG전자 등 계열사가 있어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서울에 눌러앉으려 하고 있는 LG로서는 이들 중 어디에서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을 공동연고지로 사용해 왔던 일화와 유공이 이미 연고지 이전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약속을 깨고 혼자서 서울 잔류를 우길 수도 없는 형편. 결국 LG는 현재 열리고 있는 아디다스컵대회의 홈3경기를 대전과 안양, 창원에서 잇따라 열어 축구열기와 흥행성 등을 판단한 뒤 연고지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여기서 ‘약속’이란 다 같이 서울을 비우기로 한다는 내용일 것임은 뻔할 뻔. "두 팀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떠날 수 없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에 이은 참으로 일관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는데 한두 달 주저했다는 게 강력한 저항인가요. -_- 무슨 단체로 격렬한 반대 시위를 했다거나 연맹 이사회에서 전면 철회 요구라도 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렇다 할 항의조차 없었습니다. 설사 그런 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체 맥락을 볼 때 ‘안 되면 말고’ 식 아니면 ‘흔한 통수’일뿐 거창한 연고 수호 의지 등으로 봐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애착이 남달랐다면 그렇게 열심히 새 연고지를 물색한다든가 ’95시즌에 유랑질의 정점을 찍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각 구단의 연고지 확정 기사를 인용할 필요성은 못 느낍니다. 어떤 애들은 레지스탕스의 증거로 모 구단이 막차를 탔다는 기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만,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검토를 거듭하다가 잠시 눈치 보느라 발표가 늦어진 것 따위를 놓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가장 멍청한 해석입니다. 결국 구단들 스스로 검토한 후보군이 아닌 엉뚱한 지역으로 강제 배정을 받은 사태 역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결국 전부 자기들 가고 싶은 데 들어간 겁니다. 이런데도 ‘1996년’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요. 96년부터 하기로 95년에 결정했는데 안 따랐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배정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이상의 자료들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양심이 없는 겁니다. ‘서울 공동화’란 어디까지나, 1993년부터 구단들 스스로 논의를 시작한 것이 1994년 즈음에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프로축구연맹의 정책으로 수용되어 1995년 2월 이사회 결의로 확립, 실제 이전은 1996~2000년(일화에 면죄부를 주는 느낌이라면 하한을 99년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에 이뤄진 정책이라고 보는 게 맞지, 그렇게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시행된 폭거처럼 말하는 건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사실 2011년 개편 전의 프로연맹 이사회란 게 어떤 성격인지 당시 K리그 구단 수가 몇 개였는지만 알아도 당사자인 3구단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여서 반발이 불거졌다는 따위 황당한 주장은 내뱉기 힘들 겁니다. 이렇게 사실관계를 추적해 보면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 지금 와서 보면 ‘도시연고 확립’이라고 하거나 당시 주로 쓰였던 표현인 ‘연고지 조정’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은 움직임 전반에 대해, 위키 문서가 대표하는 통설(?)에 오류가 허다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시 협회가 서울 연고를 노리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고자 단행한 조처였다.” - 근거 없음.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 - 근거 미약. 문헌적 근거가 너무 단편적이고, 실제 진행 과정을 보도한 당시 통신사 및 신문 기사들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발견되지 않음. “서울 소재 3구단에 대한 강제적인 지방 분산 방침에 해당 구단들이 저항했다.” - (극히) 부분적 진실. 대체적 오류. 일단 ’96시즌부터 서울 소재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1995년 2월의 연맹 결의에 대해 1995년 11~12월 3구단 측에서 불응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해당 구단들이 수도권 도시를 연고지로 삼는다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일은 없었다. - 오히려, 본 방침은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이 논의를 시작해서 구단 간 협의체인 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정책으로 확립된 사안이며 최종 결정된 연고지도 각 구단이 장기간 검토 끝에 스스로 정한 것이니만큼 전체적인 진행 과정에서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방 축구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으나 3구단이 수도권에 연고지를 정한 것은 난센스다.” - 허수아비 치기. 당시 K리그는 이미 전북 전남의 가입으로 전국화를 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수도권 지방 이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3구단이 검토한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는 일은 다음 이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양 창단 기념 칼럼 <3> '탈 서울'은 실패했는가? “1993년 무렵 K리그 구단들 사이에서 지역연고제를 도시연고로서 확립하고자 하는 논의가 일어났고 특히 지역연고 정착이 미진하다고 여겨졌던 동대문경기장의 세 구단(유공 LG 일화)의 경우는 서울 외 지역을 도시연고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동대문 3구단은 서울의 강남/북 분할 방안 등과 병행하여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검토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부천 인천(이상 유공) 수원 안양 창원 대전(이상 LG) 성남 과천 평택 천안(이상 일화) 등 주로 수도권 또는 그에 인접한 도시들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러한 각 구단의 움직임을 정책으로 수용하여 마침내 1995년 2월 연맹 이사회에서 ’96시즌부터 전용구장 건설 계획을 제출하는 구단에 한해서 서울 잔류를 허용한다고 결의, 이들 구단의 수도권 내 분산을 촉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이른다. 유공과 일화가 ’96시즌에도 각각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책 추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서울을 비운다는 기본 방침 자체에 대해서는 구단 간 합의가 있었으므로, 일단 유공은 부천을, LG는 안양을, 일화는 천안을 도시연고로 확정, K리그 다른 구단들과 더불어 1996년부터 연고지로 삼은 지역 이름을 구단 명칭에 표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미비한 경기장 시설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진입은 즉각 이뤄지지 못했고 LG는 1997년 유공은 2001년에야 각각 안양과 부천의 종합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일화 구단의 경우도 1996년에는 천안시에서 홈경기를 거의 개최하지 않았으며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천안의 오룡경기장을 홈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신중을 좀 덜어서 말씀드리자면, 당시 축구계에서 많지도 않은 전체 여섯(나중엔 여덟) 구단 가운데 세 개가 한 경기장에 몰려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여 일단 어떤 식으로든 분산한다는 방침 자체에는 각 구단 간에 이견이 없었으리라 보는데, 실제로 확인되는 사실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또 추정컨대 당시 프로구단이 실질적으로 사용할 만한 경기장이 동대문 목동뿐이었으므로 강남/북과 같은 식으로 서울을 분할할 경우 다른 형태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어 3구단 중 한 개 구단 이상이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정함이 불가피해졌으며, 끝내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전부 서울을 비우기로 하고 이를 서로에게 확실히 보장받고자 월드컵 유치와 맞물린 전용경기장 건설이란 제약 조건을 걸기로 합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뇌내망상이 지나치다고요? 위키 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온갖 개똥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망상이라고 하지만 구단들의 도시연고 확립 의지가 서울 공동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보다 더 잘 풀어낼 이론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막판에 눈치작전이 벌어진 경위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고요. 이쯤 되면 결국은 다 편향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거 아니었냐고 여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키 문서의 각주는 전부 일일이 조사해봤고 네이버 뉴스에서도 관련 기사를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 제 주장의 핵심 논거인 1. 수도권 내 도시연고 확립 논의는 각 구단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2. 해당 구단이 연맹 등에 본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한 적은 없다. 에 대해 반례가 될 만한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못 믿겠으면 너님이 찾아보시죠. 상식적으로 그렇게 청와대 지시 등의 외부 강요로만 시행된 정책이었다면 유수의 기업집단(+종교집단)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각 구단들이 당하고만 있었겠습니까. 서슬 퍼런(?) 김영삼 정부 때는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시기 지나면 바로 행동 개시했겠죠. 결국은 일화는 천안 버리고 LG는 안양 버리고 SK는 부천 버리지 않았느냐고요? 그 연고지 다 지들이 선택한 거라니까요. -_- 강제성 어쩌구 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일입니다. 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안양과 서울에 프로구단이 나란히 서게 된 이상 이제 와서 패륜 짓이니 연고 복귀니 해봤자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어차피 안양→서울 연고이전이 잘못됐다는 제 신념은 안양 연고 확립 과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고 해서 변할 부분이 아닙니다. 어차피 ‘연고지 조정’에 대한 저의 정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죠. 어떤 이는 서울특별시를 본사 소재지 이상의 ‘지역 기반’으로 여기지 않나 싶은 한 기업집단 산하 스포츠클럽이 서울 도시연고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쯤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GS가 월드컵경기장에 눈이 멀어서 검토 단계까지 포함하면 5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해당 지역의 전폭적인 협조 하에 확립한 연고지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LG의 안양 시대’에 대한 해석이야 어떻든 1996~2000년의 도시연고 확립 정책은 K리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영향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구단 명칭에 지역명을 표기하고 유랑 경기를 점차 줄여가는 가운데 팬 집단의 질적 양적인 성장이 일어났고, 국내 축구 리그도 프로 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이저 스포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축구 르네상스’도 이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수원과 같은 대형 클럽의 탄생도 도시연고제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어딘가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구팬이 1996년을 지역 연고제 원년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공동화’만 보더라도 실패라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자는 LG의 안양→서울 연고이전과 일화 SK도 최초 진입한 도시 연고를 유지하지 못했음을 들어 그러한 단언에 거리낌이 없지만, ‘서울 복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실패는 1/3에 한정되며 나머지 두 구단은 여전히 서울 밖에 머물고 있으므로 2/3의 성공은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천안 부천 연고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탈 서울 ‘합의’(‘정책’보다는 이 표현이 어울립니다)의 실패가 아닌 연고지 설정의 실패일 뿐입니다. 물론 책임은 해당 구단의 몫입니다.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1,041만여명의 수도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시장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지적도 전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유일한 서울 소재 구단이나 과거 동대문 시절 3구단의 관중 동원 능력을 보면 91년 체제의 연장은 평균관중 5~7천 수준 중소 구단의 병존에 그쳤을 공산이 큽니다. 안양 부천 천안 합쳐도 서울보다 훨씬 적다 어쩌고 하는 뻘소리는 낫 놓으면 낫 그림 밖에 그릴 줄 모르는 어린이다운 발상입니다. 좀 더 크면, 연고 도시 인구가 서울 1/10 밖에 안 되고 K리그 전체를 놓고 보면 딱 중간급 규모인 수원 삼성의 흥행성이 국내 최고인 것이나 부산 1/7 수준인 포항 스틸러스의 관중 동원 능력이 아파트 구단의 두 배 이상인 것에서 세상이 그리 단순치 않음을 깨달으리라 봅니다.
위에 글이 나온 사이트 링크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http://footballk.net/phpBB3/viewtopic.php?f=21&p=5367#p5367 (1) 요새 북패충들 사이에서 by 다문제일 » 2010년3월30일(화) 08:24 (2) 칫통 님이 쓰셨습니다: 우선 다문제일님 안양 창단 축하드립니다. 10년전 빛 갚으러 가겠습니다. ㅎㅎㅎ 5대 0 참패도 돌려드려야 하고.. 제가 농담처럼 노래 불렀던 "범계불바다"도 -_-;; (3) Re: 연고이전에 관한 끝장토론 by 윤군 » 2012년10월14일(일) 23:27 다문제일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자료 찾느라 고생하셨겠네요. 다문제일님이 여기 쓰신 근거로 위키백과에 상주하는 쓰레기새끼들 엿맥이고 문서 제대로 수정하여 진실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Footwikis 이 개패륜 쓰레기새끼 때문에 위키가 썩네요 아주.수원 블루윙즈 지지자 패륜박멸 일단 위에 오류와 허구라고 설명하는 글 쓴 지은이가 다문제일이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고 보시다시피 풋볼케이닷넷에서 북패충 북패충 거리는 FC 서울 구단 극렬 안티입니다.. 그리고 풋볼케이닷넷이 어떤 집단입니까?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안티 사이트이고 위키백과에서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가 공식 구단명칭대로 불리고 프로축구연맹 공식 기록대로 불리는게 싫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편집하겠다고 풋케위키라는 위키백과까지 만든 곳과 연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 글 지은이가 뭐 객관적으로 글 적었겠습니까? 위키백과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흠집내어야겠다 목표 설정하고 어떻게 하면 꼬투리 잡고 반박할 구실 찾아서 흠집내고 물타기 해버릴까 의도 가지고 만든 글인것이 명백하며 윤군이라는 아이디가 쓴 글 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 상주하는 쓰레기새끼들 엿맥이고 문서 수정하겠다고....의도가 뻔하죠. 여기 위키백과의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서술 내용이 100% 확실할 수는 없지만 왜냐면 무슨 일이든지 정체가 규명될려면 당시 관계자의 구체적인 진술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지만 당시 여러가지 정황을 최대한 설명하고 언론 기사를 근거로 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내용이며 저 문서가 문제없이 몇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또 하나 위에 반박글에서 범하는 오류 하나가 위키백과 서울공동화정책에 발단 원인이 여러 가지 원인을 서술해서 서로 모순된다고 하면서 말이 안 된다고 하는데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작용해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 일이 무슨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고 그럴 수가 없는거죠. 풋볼케이닷넷 등등 FC 서울이나 제주 유나이티드 등 무슨 의도를 가진 집단에게는 이 문서가 눈에 가시겠지만 앞으로 반달도 할려고 계획 중인 것 같네요. 덧붙여 반대로 저기 위에 글 흠집내어야겠다 목표 설정하고 자료 모으면 위에 오류와 허구라고 주장하는 기사 아래처럼 똑같이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풋볼케이닷넷 유저가 순수하게 중립적인 관점에서 연고이전 반대 이 논리 하나 때문에 객관적으로 서술하자고 한다면 1996년 서울 연고지 공동화 정책도 연고지 이전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서술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1996년은 안양 LG 치타스가 연고이전으로 생긴 것을 감추고 미화하기 위해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서울에서 나갈려고 했으며 당시 정황상 3개 구단이 서울에 밀집해 있었으니 합리적인 판단이며 명분이 있다는 이런 얘기로 은근히 물타기를 하는데 이런 것으로 당시 연고이전이 미화할 수가 없는거죠. 이 논리대로 적용하면 예전에 안양, 부천, 성남, 수원 수도권 중소도시에만 축구단들이 몰려 있으니 서울, 제주 등으로 연고지 이전했으니 이것도 역시 명분이 있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에 글은 연고이전 반대론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한테 유리한 연고이전은 미화하는 이중잣대 시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1) “K리그 연맹에서 J리그의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했다.” - 근거없음 -> 모방 안 했다는 근거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즉즉 1993년 J리그 출범 후 당시 J리그 방식을 따라서 1995년부터 전후기 리그제에 챔피언결정전 방식이 도입되었고 1996년부터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시행되었고 그 후 1998년 K리그라는 리그명칭을 J리그 모방해서 K리그 K리그 이렇게 부르다가 공식적으로 K리그로 확정한 것 이 3가지 변화가 J리그 모방 내지 영향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협이나 연맹에서 모방했어도 공식적으로 J리그 방식 모방했다고 당연히 발표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죠 이런거 발표 안 했다고 근거가 없다고 하면 그러면 이런 정책을 독자적으로 연맹이나 협회에서 기안하고 계획해서 했다는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2) “당시 협회가 서울 연고를 노리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고자 단행한 조처였다.” - 근거없음 -> 삼성그룹과 관련 없다는 명백한 증거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아무튼 위키에 삼성그룹 현대그룹의 알력으로 생겼다는 설 정도로 소개되어 있었음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 - 근거 미약. 문헌적 근거가 너무 단편적이고, 실제 진행 과정을 보도한 당시 통신사 및 신문 기사들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발견되지 않음. -> 그나마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고자 했거나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당시 뉴스 기사라도 있는데 너무 단편적이라고 자신들한테 유리한대로 근거가 미약하다고 억지 부림 (3) “서울 소재 3구단에 대한 강제적인 지방 분산 방침에 해당 구단들이 저항했다.” - (극히) 부분적 진실. 대체적 오류. 일단 ’96시즌부터 서울 소재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1995년 2월의 연맹 결의에 대해 1995년 11~12월 3구단 측에서 불응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해당 구단들이 수도권 도시를 연고지로 삼는다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일은 없었다. -> 최소한 불응하는 자세라도 보인 것은 사실인데 이 부분은 의도적으로 별거 아닌 것처럼 묘사하고 전면적 거부 의사가 없었다고 자신들 유리한대로 의미 축소 - 오히려, 본 방침은 늦어도 1993년 12월부터 각 구단이 논의를 시작해서 구단 간 협의체인 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정책으로 확립된 사안이며 최종 결정된 연고지도 각 구단이 장기간 검토 끝에 스스로 정한 것이니만큼 전체적인 진행 과정에서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전혀 근거 없음, 연맹에서 강제 분산 방침 정해지고 차라리 해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프로축구단 운영할려면 싫든 좋든 계속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 연고지에서 축출될 경우 그나마 그래도 가장 자기 구단한테 유리한 연고지에서 운영을 해야 하므로 이런 연고지 찾는 작업을 한 것을 자율성으로 판단할 수 없음. (4) “지방 축구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으나 3구단이 수도권에 연고지를 정한 것은 난센스다.” - 허수아비 치기. 당시 K리그는 이미 전북 전남의 가입으로 전국화를 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수도권 지방 이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3구단이 검토한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 95년에 전북, 전남이 생겼어도 당시 대전, 충청 지역에 구단이 없어서 전국화 달성이라는 말 자체 부터 틀렸고(대전 시티즌은 1997년부터 리그 참가) 염원하던 호남 연고팀이 생겼지만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고 뼈대가 되는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중에서 부산 연고팀 밖에 없는 실정이었음 그에 반해 프로야구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각 지역별 중심 대도시에서 연고정착을 해 나가는 상황이었으며 어차피 서울에 3개 기업구단을 분산할 것이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위성도시나 혹은 지방 중소도시보다는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각 지역별 중심 대도시로 들어가는게 당시 상황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의사결정이었음.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서울대를 가던 아니면 가장 입지 좋은 번화가에 프랜차이즈를 개설하던 이것이 100%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인생이나 사업에서 성공확율을 높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으로 서울대 갈 점수가 되는데 일부러 지방대 가고 입지 좋은 번화가에 프랜차이즈 개설 할 수 있는데 일부러 변두리에 차릴려고 하는 사람 없는 것처럼 서울을 정책적으로 피치못해서 포기했다면 그래도 그 다음으로 가장 시장성 좋은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이런 지역별 중심 대도시로 들어가는게 합리적이었음..덧붙여 연고지 후보군 대부분이 수도권 도시인 것에 대해 협회 또는 연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수도권의 서울 위성도시로 연고지를 정하는데 설사 연맹과 협회가 반대 의사를 안 밝힌 것을 떠나 아예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더라도 이건 명백하게 상식적인 의사결정과 거리가 멈. 다시 서술하지만 위에처럼 일단 시장성 좋은 대도시부터 기업구단으로 채우고 그 후 안양, 부천, 천안 이런 중소도시로 연고지를 확대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비상식적인 연고지 배정을 하면서 지금처럼 중소도시에는 기업구단 시장성 높은 대도시는 채울 기업구단이 없어서 시도민 구단이 생기는 이런 구조가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Footwiks (토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서도 이를 '정책'이라고 불릴 만한 구체적인 실증 자료가 있는지를 제시해주십시오. 가장 좋은 방법은 1차 사료. 즉 정부기록을 탐색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존재한다고 주장을 하신다면, 1차 사료 혹은 1차 사료가 부재할 경우를 대비한 다양한 각도의 2차 사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 압력설의 경우 베스트일레븐 기사에 잠깐 언급된 것 외에는 다른 매체들은 이사회 결정사항으로 제시되어있습니다. 베스트일레븐의 기사가 신뢰성있는 기사인지부터 검증을 하셨어야지요. 그리고 연고를 비우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서울 내에 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고, 연맹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듣지않고 안양, 부천, 천안 등으로 이전한 존재가 문제의 동대문 3개팀인데 이것이 마치 연맹의 강압에 의한 조치였다고 주장하시는 건 객관성의 문제가 있다고 봐야지요. 이 문서에서 제시된 레퍼런스들을 전부 검토해보았는데, 동대문을 떠난건 서울 3개팀의 의사가 아니었다는 것 외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레퍼런스가 딱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백과사전에 기록될만큼 보편적인 합의를 획득할만한 문제인지부터 다투어야하는데 그러면 일단 이 문서를 삭제하고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Steelerskimc (토론) 2013년 10월 1일 (화) 12:16 (KST)
1996년 1월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국 선정을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프로축구 열기 확산과 주요 16개 도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다. 이 정책에 따라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단, LG 치타스 프로축구단은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프로축구를 관장하는 최상위 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30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정리하면서 자기들이 무슨 이유로 언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고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으며 이 책 말고도 뷰티풀 K리그 6페이지 서른 살 K리그의 나이테 부분을 보면 1996년 부분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해 일화, 유공, LG가 각각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하는 공식 서적들에 일관되게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시행이라고 나오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나는 인정 못 하겠으니 증명할 레퍼런스를 더 가져와라 이건 위키백과 사용자들에게 요구할 사항이 아니죠. 위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오류와 허구라는 입증으로 제목으로 엄청 긴 내용의 글이 있고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했다는 신뢰성 관련해서 타박하듯이 글도 써져 있는데 확신이 있으시면 이게 옛날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없어진것도 아니고 위에 쓰신 글 출력해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찾아가시든가 전화를 하시던가 해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존재도 안 했는데 왜 한국프로축구연맹 발간 공식 한국 프로축구 30년사등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시행이라고 나오냐고 이의를 제기해서 주장하시는 의견을 뒷받침할 합당한 근거자료를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 1-131 축구회관 5층 한국프로축구연맹 전화번호 : 02-2002-0663~9 Footwiks (토론) 2013년 10월 16일 (수) 21:16 (KST) 한국프로축구연맹 30주년 기념 오피셜북과 축구전문지에 정부와 연맹이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시행했다는 공식자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맹이 공식적으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의 시행 주체, 시기, 목적, 결과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것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실존했음을 증명하기에 실증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실존했던 정책이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이 문서는 계속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 문서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실존했던 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그에 맞는 실증 자료를 제시해야 마땅합니다. 쉽게 말해서 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이 문서는 계속 존재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Withfact (토론) 2013년 10월 19일 (토) 20:43 (KST) 도쿄 연고 공동화 언급 부분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삭제 토론 (위키백과:삭제 토론/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결과 삭제되었으므로 더 이상 본문에서 도쿄 연고 공동화 관련 내용이 거론될 필요가 없으며 문서 일부 내용의 근거로도 쓰일 수 없으므로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복구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해당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Gunmania (토론) 2013년 2월 11일 (월) 12:31 (KST)
아무튼 일본에서는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표현을 사용 안 다고 하니 정책이라는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 지칭하는 용어라고 설명하고 요지는 J리그 사무국의 도쿄 국립경기장 불허로 인해 도쿄 연고지가 공동화 된 채 출범하여 운영되었고 이런 배경과 더불어 이 후 똑같이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이며 이런 J리그 방식에 대한 모방 부분은 필히 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기 부분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문장 구성상 어색하다고 판단되어 아예 카테고리를 계기 부분에 더 생성을 했습니다. PC 통신 참고글 K리그 문제들, 어설픈 J리그 흉내때문은 아닐까? 02/07/09 11:03 | 조회수 291 이X호 통합검색 박진감 넘쳤던 성남-포항전이 끝난 후 각종 게시판들이 축구얘기로 박터지네요.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칭찬하면서도 나머지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글들이 많은데. 이런저런 불평불만 비판들을 종합해보니까 대강 3가지로 나뉘는거 같더군요. 1. 선수 유니폼 등에 광고넣지 말고 선수 이름 넣어라 2. 서울팬들도 축구보고 싶다 서울에 연고팀 만들어라 3. K리그라는 이름 너무 개성없다 바꿔라 거의 와와~ 하면서 위의 의견들을 대세로 몰아가는 분위기인데 문득 느껴지는 점이 위의 1~3번까지가 모두 일본 J리그로부터 건너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선수 유니폼의 등광고. 제가 기억하기로 최소한 99년 시즌까지만 해도 전 구단이 등에 한글 선수명을 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광고가 들어가더니 이제는 선수이름이 들어가는 유니폼이 아예 사라지고 말았죠. (수원의 '블루윈 에어컨'이 시초였던거 같습니다) 이런 등광고는 유럽의 메이저 리그 중에 이러한 광고 넣는는 없고 남미하고 일본 뿐인데 결국은 J리그 보고 따라한거죠. 서울에 팀이 없는 것, '서울 공동화 현상' 이것도 결국 J리그 보고 따라한거죠. 일본 J리그 출범하면서 도쿄를 비워놨었었던 것 '다른 도시와는 비교도 안되는 가장 큰 시장은 특정 구단이 독점하면 안된다' 는 논리였는데 이게 우리나라로 건너오더니 서울에 있던 세 팀을 내쫓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로 이어졌죠. (서울에 전용구장을 건설하거나 나가라는 논리였는데 이게 넌센스라는건 모두가 아실겁니다. 지금 250억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구단들인데 무슨돈으로 땅값비싼 서울에 구장짓습니까) 마지막으로 K리그라는 이름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J리그 따라한 것이라는거 아시는 분들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전에는 KPFL(Korean Pro Football League) 인가 하는 이름이었는데 어느날 두리둥실하더니 K리그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90년대 중반 '일본 우세론' 이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축구판에 형성되었을때의 부산물들이 지금 부작용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앞서나간다~' 'J리그 박터진다~' '딴건 몰라도 J리그 마케팅은 최고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언제부터인가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을 불안하게 했고 결국은 이것이 보이지 않는 'J리그 따라하기' 로 이어지고 말았죠. 행정도 그렇고 리그 운영도 그렇고 마케팅도 그렇고 심지어 일부 서포터들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한동안 있었죠. 저는 여기에 신모씨가 해설때마다 입에 침나게 외쳐왔던 '일본 배워야한다' '우리 일본에게 추월당했다' 론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저 '배워야 한다' 는 얘기만 입버릇처럼 반복했지 멀 어떻게 해야 한다는건지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J리그들이 갖추고 있는 유소년 축구 클럽 시스템이나 연고지제도 등 정작 배워야 할건 훌쩍 건너뛴 채 '등광고' '수도 공동화' '리그 명칭' 등 그야말로 아무 쓸대도 없는 '껍대기' 들만 흉내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글을 적는 것은 더이상 리그 운영에 있어 과학적인 J리그니 J리그 만능주의 하는 등의 이상한 분위기를 더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도쿄 베르디와 FC 도쿄의 등장이 말해주듯 J리그의 '수도 공동화' 론은 완전한 실패였고 이것은 J리그 역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하나의 '신생리그'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2005년부터 유럽 방식의 리그일정을 채택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지 우리가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같이 리그 운영에 있어 아직 시행착오를 거치는 단계인데 저희가 그러한 '시행착오' 까지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요. 세계 축구에 유례가 없는 초유의 '전후반기리그' 니 이런것도 결국 다 일본 J리그 따라한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전반기 리그 챔피언이 후반기 리그에 소흘히 한다는 부작용이 일본에서 나타났고 얼마후 한국에서도 그것이 고스란히 나타났고... 저는 차라리 '야구식' 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플레이오프 제도같은 '우리의 시행착오'를 하는 것이 '우리 리그' 의 발전을 위해 훨씬 값진 시행착오였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월드컵 이후 지금이 프로축구판이 개혁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개혁을 하던 그것은 우리 축구 현장을 체험하면서 느낀 생각에서 나와야지 어설픈 외국사례 카피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장 현안으로 떠오른 광주 상무의 프로참여 등이 그런 좋은 예겠지요. 부디 이번에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한국적인 개혁' 이 K리그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랜만에 긴글을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Footwiks (토론) 2013년 10월 4일 (금) 22:16 (KST)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 제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계기 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부분으로 삽입하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의견도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네요. 저는 J리그의 영향이 없다고는 단 한번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계기 부분에서조차 관련 부분을 넣지 않았겠지요. 제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1. 일본 J리그의 영향이든, 모방이든 분명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월드컵의 유치 경쟁자인 일본에 새로운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흥행한다는 사실에 자극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연고제의 제대로 된 밀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부분에서는 위기감까지 느꼈기에 완전지역연고제를 도입했죠. 2.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은 정책이 아니지만, 분명히 당시에 도쿄 연고 구단은 없었으니 도쿄 공동화 자체는 수긍합니다. 정책이라는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 지칭하는 용어라고 서술하시고 계신데, 어차피 실제로는 정책임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언급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현은 과감히 삭제하되, 각종 문서에서 도쿄 공동화가 일어난 상황 설명은 다소 부피를 줄여 깔끔하게 적어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3. K리그 명칭 같은 부분은 모방의 근거가 될지는 몰라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 언급되는 것은 사족으로 여겨집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일본의 도쿄 공동화와의 유사점이야 내용으로 녹여내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출처 링크로 올린 글의 경우에 김현회 칼럼은 명칭 모방이 사족이라는 점에서, 플라마의 칼럼은 칼럼이 필자의 주관적 의견이 제시될수도 있어 기사로서의 객관성에서 흠결이 있다는 점이겠죠. 4. J리그와의 연관성이라는 파트는 나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제안을 하나 하자면 계기, 시행에서는 경과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영향 파트에 J리그의 영향 파트와 타종목에 끼친 영향 파트를 만들어 이 부분에 넣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서 구조가 될거 같습니다. 5. 수원 구단 프런트에 계신 분의 글을 보여주셨는데, 어차피 이 글이 일반 개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고, 기사나 공식 문헌이 아닌 이상, 위키백과 내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논의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전 FC서울에 대한 가치판단을 접어두겠노라는 의사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 문서에 수원 팬으로서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싶네요. ^^ --By elliott (토론) 2013년 10월 5일 (토) 10:32 (KST) 제목 이동 및 근거자료 인용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2월 24일 (금) 12:03 (AEDT) 이동하신 제목은 이미 K리그 연고지라는 문서에 해당되는 제목이라 넘겨주기로 이었고 위에서도 토론 한번 나왔지만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단독 문서로 충분한 저명성이 있어서 독립적으로 문서 개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스포츠신문이나 축구잡지들이 1990년대 기사 볼 수 있게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신문이나 축구잡지들도 네이버 옛날 신문 보기처럼 서비스가 되기 전까지는 사진 등등으로 캡춰되어서 블로그나 축구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런 옛날 기사들을 지금과 같은 식으로 밖에 인용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리고 조금 의아한게 킹케니님이 인용한 K리그 30년사는 실제 책 내용에 대한 캡춰사진도 없고 그냥 몇 페이지다 이렇게만 기재해 놓았는데 무슨 신문사와 무슨 축구잡지의 언제 기사인지와 당시 기사가 사진으로 캡춰되어서 유저들이 읽고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자세히 제공되고 있는데 이 기사들이 캡춰되어서 단지 블로그와 축구커뮤니티 게시판에 있다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라면서 삭제되어야 하는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위키백과에서 신뢰할 수 없는 출처라는 것은 블로그에 쓰여진 개인 주관적인 글을 근거로 제시했을때 하는 것이고 옛날 스포츠 신문이나 축구잡지 기사들이 블로그나 축구 커뮤니티에 캡춰된 사진으로 올라왔다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목 비롯 내용까지 위에서 보시다시피 전부 토론 거쳐서 합의된 내용이니 함부로 날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루어진 토론은 아니지만 개발공에서 오신 분들이랑 리그베다 위키에서 끝짱토론으로 앞으로 하시고 싶은 얘기들 다 나왔고 논파되었으니 미리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courageuser/220341436156 Footwiks (토론) 2017년 2월 25일 (토) 01:05 (KST)
축협문구: 한국 프로축구는 기존의 지역연고제를 보완한 완전지역연고제를 실시하여 당시 기업명이 우선시되던 구단명칭을 연고지역명으로 변경하는 등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작업을 확고히 하였다.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문서는 20년 전 사건에 대한 문서이지만 당시 상황, 계기, 시행(주요 일지 포함), 철폐, 유산 등 단락 구성이 잘 되어있고 근거 자료 제시 또한 160개가 넘을 정도로 상당히 잘 되어 있는 문서라고 생각됩니다. 1. 프로축구연맹에서 공식 발간한 한국프로축구 30년사 도서 307페이지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시했다고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1996년에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의에 의해 다른 연고지로 이전한 것을 지역연고제 내지 완전지역연고제라고 명시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역연고제 내지 완전지역연고제는 당시 프로축구연맹이 기존의 지역연고제를 더 보완한 것 자체를 의미하지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의에 의해 다른 연고지로 이전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한국프로축구 30년사 도서대로라면 완전지역연고제 시행 시기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같이 시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이외에도 각종 국내 축구 언론 보도에서도 서울공동화정책 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용어와 그에 따른 정책 내용 설명들이 나오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울공동화정책 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기사들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2. 본 문서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는 당시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이전 지침 하달과 관련된 근거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한 실시 근거에 대한 신뢰성 문제 제기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자료는 아니지만 엄연히 신뢰 가능한 스포츠 관련 언론, 출판사를 원 출처로 하고 있으며 그 내용적 흐름은 프로축구연맹에서 공식 발간한 도서와도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자료 자체의 원본성, 진본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스포츠신문사나 축구잡지 홈페이지와 직접적인 접근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뢰성이 없는 출처라고 단정짓는 것은 상당히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생각되며 kingkenny1967님이 제시하신 규정 문서를 들어가봐도 원본 기사 캡쳐 사진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저작권의 경우 해당 근거 자료들을 게시한 블로그와 해당 언론사간의 문제이지 위키백과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저작권 위배라고 단정하기에 그 근거가 미약하다고 판단됩니다. 해당 블로그들에 자료가 게시된 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음에도 기타 소요없이 근거 자료들이 블로그에 계속 게시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블로그가 원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3. 문장 하나 하나마다 인용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무조건 감정적 기술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인용 근거가 없는 문장의 경우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보니 관점에 따라 감정적 기술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충분한 근거 또는 주장이 잘 뒷받침된다면 감정적 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체적으로 kingkenny1967님이 감정적 기술에 대해 문제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footwiks님이 충분한 설명을 하였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문제 제기를 하였다고 하여 실제로 그 부분들이 무조건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 제기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 내지 주장을 밑바탕으로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아니하다고 증명한다면 오히려 문제 제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footwiks님은 kingkenny1967님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서술에 문제가 있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인정할 부분을 받아들였다고 생각되며 문제가 없는 부분에 대해해서는 분명한 출처 내지 합리적 주장을 기반으로 충분히 kingkenny1967님에게 설명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평행선을 달린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부정적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감정적 기술이라고 한다면 근거 제시에 전혀 문제가 없는 청와대의 이전 지침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이 감정적 기술에 해당한다고 판단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2월 27일 (월) 20:30 (KST)
아무튼 질문 주신 부분 또 답변 드리자면 다음과 같고 여기도 말씀하신 부분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자꾸 여기에 너무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부무 작성: 스포츠와 지역활성화:스포츠를 통한 지역활성화 모색”.http://theme.archives.go.kr/next/pages/viewer/archiveViewer.jsp?archiveId=0001287865&singleData=N <21편>서포터즈 이야기 http://sports.media.daum.net/sports/newsview?newsId=20071126114210029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월 1일 (수) 08:17 (KST)
그리고 FC서울 안티사이트에서 한국어 위키백과를 꼭 집어서 이 문서 때문에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용어가 생겼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니까 그 부분을 누군가 넣은것 같고 그리고 계속해서 이런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는 상황이니 유지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제 의견 얘기드렸다가 킹케니님 의견 수용하면서 그 부분 삭제했다고 하면서 언급한건데 뭐 잘못된 부분 있습니까? 킹케니님이 유언비어에 대한 부분 삭제하시고자 하시면서 그 부분 언급하니 당연히 이유를 말하면서 언급이 된것이지요. 킹케니님이 그 얘기 안 꺼냈으면 제가 얘기 했겠습니까? 프로농구 들어간 단락은 제목을 유사 사례로 바꾸었으니 이제 할 말 없으시죠? 또 하나 J리그 연관성 부분이 이 문서에 핵심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어도 이미 한번 토론을 거쳤고 J리그를 직접적으로 모방했다는 서술을 지양하고 연관성과 배경 정도의 뉘앙스 단락으로 빼고 합의하에 서술 된 것인데 이걸 제 맘대로 어떻게 삭제합니까? 아무 근거없이 유추나 추측이라면 그러면 킹케니님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독자 입안으로 실행했다는 증거 가지고 있습니까?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우리는 J리그의 J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서울 연고지 구단들을 강제로라도 지방으로 이전시키면 축구 열기가 살아날 것 같아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행했다는 증거 가지고 오시면 당연히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 입안 실행한 정책이다 이렇게 기술하는 것이 맞겠죠. 결국 따지고보면 킹케니님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 입안 실행했다는 결론도 근거없는 유추나 추측인것입니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수도 연고지가 공동화되고 리그를 운영하는 사례가 엄청나게 흔한 것도 아니고 1993년 J리그 그 후 1996년 한국 프로축구에서 수도 연고지 공동화 정책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내무부 문서 등등 월드컵 유치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J리그를 벤치마킹한 보고서도 있고 현재까지도 J리그를 벤치마킹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연관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자료가 존재하고 축구기자들도 연관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현재 단락 유지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 대신 킹케니님 의견에 따라 영향 받은 것처럼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 문단 말미에 그러나 일부 축구팬 중에서 J리그와 관련 없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입안하여 실행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도 존재한다 이렇게 삽입시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외에 저는 찾지를 못하겠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입안시킬 수 있는 배경이나 능력이 있었다는 정황 자료들 찾으시면 그런것도 추가시키면 단락이 균형있게 맞춰질 것 같습니다. 결국 이렇게 J리그의 리그 운영 방식과 똑같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K리그 명칭 등에 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J리그를 모방해서 도입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과거 PC 통신 축구 커뮤니티 시절부터 현재까지 축구팬을 비롯 한국 축구계에 폭넓게 존재한다 반면 일부 축구팬 중에서 J리그와 관련 없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입안하여 실행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도 존재한다 Footwiks (토론)
서울연고공동화정책과 J리그 간 연관성 부분에 대한 두분의 의견을 잘 들어봤습니다.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실시한 주체가 프로축구연맹인 것은 맞는데 여기서 이 정책의 내용들을 프로축구연맹이 자체적으로 생각하여 수립한 것인지, J리그를 참고하여 수립한 것인지는 현재로써는 둘다 확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1. fookwiks님이 제시하신대로 당시 내무부 문서, 근래 축구기자들의 언급 등을 고려해볼 때 J리그와의 연관성(J리그를 참고하여 정책 수립)은 일정 부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되어 해당 단락을 문서 내에 존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kingkenny1967님이 제시하신 자료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실시 목적 내지 이유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자체적으로 생각하여 수립한 것인지, J리그를 참고한 것인지에 대한 부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프로축구연맹에서 자체적으로 이 정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했다는 정황자료나 근거자료들이 발견되면 그때 토론을 재개하여 두 견해에 대해 충분한 검증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2. 프로농구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은 프로연맹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책의 시행 계기, 과정의 상호 유사성 여부는 이 부분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며, 핵심적으로 두 정책 모두 공통적으로 연맹 차원에서 서울을 비웠다는 점에서 두 정책은 충분히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2일 (목) 00:16 (KST)
왜 그랬나 했는데 반달했던 것이 확실하네요. 계속 무시하시고 계신데 중립성이니 객관성이니 이런 말 하면서 인용문 링크만 날리면 되는데 핵심인 청와대 강제지시 사항 문단까지 다 날린 것부터 해명부터 하세요. 보아하니 이 문서에 토론 걸고 왜 오신지는 대충 짐작은 하겠는데 중요한 파트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과거 토론에서 합의가 난 부분이고 지금도 토론에서 킹케니님만 반대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시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네요. 일방적인 주장에 문서 내용 삭제시킬 생각만 하지 마시고 협업 태도를 가지시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수도 연고지를 공동화 시키고 리그를 운영하는 것은 흔한 것이 아닙니다. 1993년 J리그 그리고 1996년에 한국 프로축구에서 수도 공동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아예 멀리 떨어져서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모를까 내무부에서 일본 스포츠 분석 보고서를 번역까지 해서 발간했고 한국 축구계도 일본 J리그가 인기에 대해 알고 J리그 운영방식을 계속 분석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축구전문기자도 J리그 영향과 관련된 언급을 했기 때문에 이 문서에 기술이 된 것입니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newsview?newsId=20071126114210029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지금까지 연맹에서 독자이든 J리그 벤치마킹이든 공식발표는 없는 상황이니 계기 부분에서 참고사항처럼 연관성 부분으로 빼서 서술하는 것으로 과거 토론에서 By elliott님과 합의가 된 것이고 지금도 Rodrigo님도 그렇고 구성상 무리가 없다고 동의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과거 다른 유저들과 합의가 난 토론 결과에 그리고 지금도 킹케님만 계속 아예 날려버리자고 무리한 주장하시는데 이걸 삭제시킬려면 삭제시킬려는 킹케니님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실행했다는 증거를 가져 오셔야지 왜 저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관성 파트로 빼서 서술하는게 무리없다고 다 생각하는데 증거자료를 여기서 더 왜 제가 가져 옵니까? 연맹 독자 입안 및 실행 증거자료 가져오시면 정책 입안 모티브는 자체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입안했다로 기술하는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연관성 파트가 J리그 영향으로 한 것처럼 오해되면 연맹 독자 입안 및 실행으로 했을 가능성에 대한 문구도 추구하면 되고요... 과거 토론 내역 중 By elliott님 의견 2. 100% 똑같은 사례가 아니고 단락 제목이 유사 사례이고가장 중요한 개념인 수도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이니 유사 사례 단락에 들어간 것입니다. 종목이 다른데 어떻게 계기랑 과정이 100%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Footwiks (토론)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표하였다."[3] 인용 내에는 연맹이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합니다.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7일 (화) 11:08 (KST)
J리그 연관성 부분도 킹케니님 이전에 이미 토론으로 합의 된 내용이 반영된 것이고 위에 토론도 로드리고님도 기존처럼 존치하는 것에 의견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원래 위키백과에는 저작권 문제도 있고 기사 본문 내용 그대로 글자 그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즉 Paraphrasing를 해서 써야 합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780980 연맹은 또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의 재조정, 전용구장 확보에 중점을 둬 사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일화,유공,LG가 동대문과 목동구장에 몰려있는 등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위해 각 시,도로 분산시키고 공설운동장을 임대, 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 내용을 Paraphrasing해서 1994년 7월 20일 프로축구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행정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식 출범을 하였고 연맹은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공동화 계획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표하였다." 이 내용이 무슨 인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대부분 기사 내용 Paraphrasing해서 쓰여져 있고 그러니까 기사 내용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썼다고 지금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위키백과가 무슨 존재 의미가 있습니까? 기사 내용 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지... 그리고 유사사례, 서울연고권의 미래가 이 문서에 없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논문도 그렇고 유사한 사례 그리고 서울연고권에 관한 문서이니 미래 전망 등 이런 관련 내용 기재하는 것은 일반적것입니다. 억지 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기사 원 문장 위 기사를 인용문으로 달고 제가 쓴 문장 킹케니님 제가 여기서 위키백과 정책 어긴 것이 뭐가 있는데요? 일화, 유공, LG가 각 시도로 분산시켜서 나가게 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이렇게 요약해서 썼는데 지금 킹케니님 의견은 이 부분을 가지고 기사 본문에는 일화, 유공, LG가 각 시도로 분산시켜서 나가게 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쓰여있을뿐이지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적극 추진이라고는 안 쓰여 있으니 기사 본문에 없는 내용을 쓴 것이고 그래서 위키백과 정책을 위배하고 독자연구라고 하시는거에요? 주요 사건 일지 형식에 맞게 짧게 요약해서 써야만 하니까 기사 본문의 내용을 패러프레이징해서 쓴건데 정말로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까? 또 하나 이유를 모르는 내용을 서술했다고 문제제기 하셨는데 1987년 유고 연고지가 서울에서 인천/경기로 바꼈는데 이유가 알려지지 않아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충 설명한건데 이게 왜 문제가 됩니까? 단순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 된 이유나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위키백과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위키백과 규정에 어디에 그렇게 나와 있나요? 킹케니님 의견이면 같은 맥락으로 사건사고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사상자는 쓰면 안 되겠네요. 지금 문장마다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이게 지금 토론하자는건지 딴지를 거는것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이런식이잖아요. 기사에 서울 연고 공동화라는 단어 없는데 공동화라는 단어 썼으니 아전인수식으로 독자 연구 덧붙여 저는 정책이라는 용어 쓰지도 않았는데 확대해석해서 연결시켜고 독자연구다.... 한번 아래 기사에 대해 다른 분들 의견 들어 보죠. 제가 새로 발견된 기사에 의거해서 업데이트한 내용이 독자연구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영어 위키백과가 운영주체가 달아서 AFTERMATH를 쓸 수 있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쓸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요? 그리고 서울 연고권의 미래 보세요. FC서울처럼 이 정책에 영향 받은 팀도 포함되어서 기술되고 있고 이 정책으로 인해 파생된 75억원 서울월드컵경기장 입성금 문제도 기술 되어 있고 전혀 문제가 없다니깐요. 또 하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킹케니님이랑 토론하다가 새로운 기사 발견했고 위키백과 규정의 과감하게 문서의 내용을 고치고라고 해서 저도 업데이트 한 것이고 계속 이렇게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기사 원 문장 위 기사를 인용문으로 달고 제가 쓴 문장 Footwiks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21:39 (KST)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출범과 함께 J리그를 5년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아래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3구단 공동화 계획 적극 추진 발표 유사 사례 단락은 그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고 형식상으로도 무리가 없으니 존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J리그 연관성 단락은 추후 자세한 근거가 나오면 자세히기 기술하고 지금은 kingkenny1967님의 의견대로 해당 단락을 삭제하되, 유사 사례 단락으로 통폐합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10일 (금) 23:43 (KST)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이후 1990년부터 각 구단은 도시연고제로 전환을 했고,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이 정책이 존재한다는 것이 FC 서울 안티팬들에게 불리한 사실인가요? 제가 축구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몰라서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5일 (수) 23:55 (KST)
덧붙여 FC 서울 안티팬들이 한국어 위키백과의 이 문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폄하하기 위해 만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없었다 이런 내용의 블로그도 존재합니다. 그 블로그 내용처럼 이 정책이 없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얼마전 문서 제목 변경도 시도도 있었고 청와대에서 강제 이전 지침 이런 자신들에게 절대 불리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자료들이나 내용은 아예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킹케니님이 중립성 규정 들이밀면서 갈아엎은 버전의 근간도 사실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아래 블로그에 있는 개인 독자연구에 의한 의견을 골자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FC서울 안티팬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주도해서 서울 연고 3구단을 강제로 연고이전 시켰다는 팩트와 이와 관련된 기사,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들인데 한국어 위키백과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에 이런 기사들이 인용문으로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킹케니님이 만든 버전 살펴보면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주도해서 강제로 연고이전 시켰다 혹은 강압적인 정책이었다는 내용과 이와 관련된 기사,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들은 전부 날라갔고 당시에 압력에 의해서이지만 어찌됐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합의했다는 사실만 부각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일본인들이 을사조약, 위안부 문서 등에 자신들이 감추고 싶은 불평등 조약, 강제 체결,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여성 인권 유린 이런 팩트들과 이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최대한 감추고 어찌되었든 조약 체결에 합의하고 스스로 도장 찍은 것이니 불평등과 강제 체결은 아니다. 위안부들 중에 자발적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강제적인거냐 이런 식으로 일부 자신한테 유리한 부분을 침소봉대해서 본질 흐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킹케니님이 문서가 전체적으로 중립성 규칙에 위배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실행 이후 그러니까 이 정책의 전후맥락이 확실히 파악된 이후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관련된 기사들이 당시 정책이 서울 연고 3팀을 강제적으로 연고이전 시키고 그로 인해 당시 서울이라는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을 활용 못했던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등등 이런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들만 나오고 있고 어찌되었든 이 정책과 관련된 내용들의 기사이니까 인용문으로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중립성 위배인가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명확하게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재 문서 골자와 상반된 내용의 인쇄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 찾아와서 이런 시각도 있으니 이런 내용도 비중있게 고려해서 편집해야 한다 이러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근간은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과거 1994-1995년 기사에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어찌되었든 서울 공동화에 합의했고 그리고 연맹의 공동화 정책 추진 되면서 서울 말고 다른 연고지 검토 했다는 내용의 기사 있으니 자발적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아전인수 및 확대해석으로 자발적으로 연고 이전했다는 결론 도출하는 독자연구 내용을 어떻게 위키백과에 서술할 수 있습니까? (연맹이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추진을 하니 대비 차원에서 다른 연고지 검토해 볼 수도 있는 것이지 다른 연고지 검토 = 자발적으로 서울 연고지에서 나간다 이런 개념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관련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전후맥락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따라서 종합적인 평가에 의한 본질이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해 처음에 내려졌던 본질도 시간이 가면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비유하자면 킹케니님 이 분 논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당시에 폭도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기술된 기사들이 명백하게 남아 있고 당시 국민들도 이런 기사들 믿고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빨리 진압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 가졌던 것도 사실이므로 이 사건은 영원히 폭동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위키백과 문서 제목도 영원히 폭동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하며 신뢰할만한 출처로 뒷받침되는 추후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평가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본질들이라도 중립성 시각에 위배되니 기술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킹케니님이 지금 이 문서에 대해 편집했던 행동들과 갈아엎은 버전 한번 자세히 보면 제목부터 이동시켜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란 내용 자체를 없앨려고 하고 그리고 2000년대부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 강제적인 정책이었다 혹은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들은 전부 날라간 것으로 입증이 됩니다. 아래 기사들 보면 스포츠서울 1부 부장, 스포츠동아 2부 부장등 스포츠계 권위있는 대기자분들이 서술한 기사들도 있고 외국 전문 스포츠 서적에도 강제로 이전시켰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는 거르고 그러면 FC 서울 안티팬이 만든 블로그 독자연구 내용을 믿고 위키백과 내용을 바꾸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일부 기사가 칼럼 형식 혹은 저신뢰 출처라고 평가절하하는데 이런 저신뢰 출처라도 한번 킹케니님 의견 지지하는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서들이 근래 나왔는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문서 근간이 되는 달린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기사들 지금 온라인에서 바로 접속 가능한것만 추려보아도 이 정도인데 다시 읽어 보시고 이런 기사들 바탕으로 용어나 내용이 여기 문서에 기술이 된 것인데 이것이 중립성에 위배되고 독자연구가 되는지 다시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도 썼지만 "서울 연고 3팀이 서울을 떠나고 싶어서 지방으로 이전한 자발적인 연고이전 정책이다." 이렇게 인쇄되어 있거나 혹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프로축구를 발전시킨 정책이다 " 이런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인쇄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들 나오면 당연히 이런 내용도 기술해야겠지만 안 나오는 것이 제 잘못입니까? 그리고 원래 사건 당사자가 발언한 것은 중립성 문제가 있을까봐 FC 서울 한웅수 단장이 LG 치타스 시절에 우리는 등 떠밀리듯이 나갔다 즉 자의가 아니고 외부 압력에 의해서 나갔다는 발언 이런 내용은 여기 인용문에 넣지도 않았고 전부 제3자 신문기사만 인용으로 넣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서울연고공동화정책 관련 기사들
A: 서울 연고 3구단이 합의 안 해도 이사회 결정은 통과되었지만 추후 이를 받아들이는 것 B: 서울 연고 3구단이 이사회때 자신들이 원해서 합의했다는 것 A와 B는 차이가 있죠. 승강제도 반대하는 구단 있어도 시행이 되었고 반대하던 구단도 결과 수용하고 따른것인데 킹케니님은 독자연구로 이사회때 합의했다고 계속 하시잖아요.Footwiks (토론) 문서 수정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특정문서의 신뢰성 부분, 특히 여론의 주장을 어긴 부분이 많아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기존 문서로 롤백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조정 요청을 하시죠. 토론은 위의 토론 내용과 지금 문서 내용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시겠습니까?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6일 (목) 11:16 (KST)
편집은 과감하게 하는 것이 장려됩니다. 불필요하거나 비중립적인 내용과 의심이 가는 출처가 있다면 과감히 삭제하고 바꾸고 개편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키백과의 중립성은 사용자간의 중립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되어야 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19:23 (KST) 중립성킹케니님 중립성 틀 다셨잖아요. 중립성 틀에 어떻게 되어 있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주관적인 내용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여러 관점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2017년 3월) 내용에 대한 의견 있으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무튼 저 역시 킹케니님이 제시한 규정 보고 최대한 수정했으니 문서 다시 한번 읽어 보시고 킹케니님이 생각하는 고쳐야 할 문장이나 단락 얘기해 주시고 계속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그 전 토론에서도 지적하신 부분 있으면 최대한 의견 반영해서 수정했었지 제 주장만 일방적으로 진행하지도 않았으며 토론 피한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 토론 때문에 일부러 거의 매일 들어와서 토론창부터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토론 하면서 협업으로 문서 수정시켜서 발전시키는 곳이 위키백과이지 일방적으로 문서 수정하는 곳이 아닙니다..그리고 중립성 규정들 많이 공부하신 것 같은데 규정에 어긋난 부분들 있으면 얘기해 주시고 다른 분들 의견도 들어보고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 있으면 많이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킹케니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통째로 바꾸신 버전으로만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위키백과 규정에 맞지도 않고 그리고 위에 보시면 아시다시피 수차례 토론 걸쳐서 계속 발전해 온 문서입니다. J리그 연관성 같은 부분도 계속 얘기드리지만 엘리어트님과 토론으로 만든 부분이고 그리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셔서 제가 다시 근거자료 찾아서 달았고 패러프레이징 하면 독자연구라고 하셔서 기사 본문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서울 연고 공동화의 유래 문장해당 문장에 달린 3가지 출처를 보았으나 일단 블로그 출처는 정상적인 출처로 사용하기 힘드므로 넘어가겠습니다. 동아일보 기사에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공동화 하였다.'는 그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서술에 불과하며 특정되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Fifa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의 해당 단어는 '리그의 분산 정책'으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1대1 대응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기사에 두 정책을 연결짓거나 명확히 한 내용이 없고 기여자인 우리가 여기에 해석의 차이를 둘 여지는 없어보입니다. 첨언하자면 아무리 정당한 출처라 하더라도 위키백과에서 A와 B라는 출처를 가지고 와서 C라는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위키백과에 문서 제목을 정한 정당성을 반드시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유래 서술에 굳이 집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토트 2017년 3월 17일 (금) 19:31 (KST)
간단히 정리한 논점2000년대 이전까지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자료를 모아 집필을 의뢰하고 감수해서 발행한 책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들어가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해당 이름의 정책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용자 Footwiks의 기존 문서의 저신뢰 인용의 자세한 설명 없는 형용사 서술(예를 들어 "강제적인" - 얼마나 강제적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언제 강제했습니까)을 짜집기한 내용을 계속 인용이라고 들이밀고, 특정 시각에 맞추어서 서술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점:
이상입니다. 아, 그리고 자꾸 여러 사용자와 토론을 거쳐서 유지해왔다고 하시는데, 문서 역사 보면 Footwiks님이 거의 압도적인데요. [편집 역사] - 현재 내용에 애정이 있으실 법도 하지만, 위의 내용을 한번 검토해 주세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14 (KST) 답글 제발, 그냥 새로 달아주세요. 중간에 서명도 없이 떡 집어넣어놓으면 찾아볼 수가 없잖아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1:18 (KST)
간단한 논점 정리 및 의견 반영(1)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문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꾸 왜곡하시는데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한국어 기사도 있고 그런거 믿고 문서 만들수도 있지 무슨 허위 문서로 해당 내용을 만들었다고 왜 자꾸 왜곡하십니까? 지금 한국 축구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도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3][4][5] 5. 철폐 부분 ‘여론’ 인용 부분도 중립적 시각에 어긋난다는 얘기는 이해가 안 갑니다. 왜 중립적 시각에 어긋나는거죠?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95779 그리고 신뢰할만한 출청에 의해서 J리그를 모방했고 이 정책이 영향 받았다는 내용 있습니다. 이후 1990년부터 각 구단은 도시연고제로 전환을 했고, 1996년부터는 당시 큰 성공을 거두던 J리그를 모방해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부터 현재처럼 각 팀 명칭에 지역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공동화를 위해 당시 서울에 있던 세 팀 LG, 유공, 일화를 강제연고이전시켰다. 연맹은 지역축구의 발전과 서울이란 거대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란 명문을 내세웠다. 결국, 세 구단은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연고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Footwiks (토론) 신뢰할 수 있는 출처?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Footwiks님이 너무 많은 내용을 열거하면서, 각 문단을 넘나들며 토론하시기에 너무 번잡한 감이 있습니다. 뉴스 기사를 인용하실때는 가급적 링크만 올리시고 기사의 내용을 전재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링크를 올리시면 들어가서 읽으면 될 요량인데, 링크와 기사를 동시에 언급하시니
솔직히 다른 사용자들이 참여할 엄두가 안나게 무지막지하게 토론 내용이 양적으로만 불어나있습니다. 실속은 거의 없는것같고요. 당부드립니다만, 신문 기사 링크면 족합니다. 근거. 이런 식이면 될 듯 합니다. 일례로 J리그 모방 건등을 반론하시면서 엑스포츠 뉴스를 언급하며 "신뢰할 수 있는 출처다"라고 언급하시는데, 이 뉴스가 신뢰할만한 출처인가요? 아니, 이전에 뉴스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가요? 아닙니다. 뉴스라고 모두 신뢰받는 것은 아니며,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문서가 다루는 대상 마다 각 개념을 설명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출처' 역시 달라집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유수의 저명한 매체가 "지구 위에 현존하는 삼라만상"에 대입했을때 항상 신뢰가 가능한 출처가 될까요? 이 건으로 돌아가보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설명하는데 신뢰가능한 출처가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이 건은 연맹이 주가 된 사건이라 보여지기 때문에, 위에 자주 언급되는 그 프로축구연맹 30년사라는 책이 가장 신뢰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J리그를 모방"한다는 뉘앙스의 주장이 30년사에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엑스포츠'같은 뉴스를 인용하는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이는 신뢰할만한 출처가 아닙니다. Footwiks님도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듯이요.
기사의 진위 여부도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를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하는 것인지요..? 또한 "신뢰할만한 출처의 기사가 나오면 정확하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다."라는 문장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견해입니다만, 백:신뢰의 "일반적인 신뢰도"를 살펴보면
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달리말하면 위 문장은 일반적으로 신뢰가 가는 출처에 대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술하신것처럼 "당연히 기자들 오보가 많은 것"이 사실인데요, 이를 인지하고 계신 시점에서 엑스포츠 뉴스 따위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주장이 가능한지요? 또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일단 이 키워드에 관한 뉴스가 발견되기만 하면 집어넣어도 무방하다고 비춰질수도 있는 발언입니다. 기사라도 있는 내용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신뢰가능하고 입증가능한 사실을 적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보셨으면 하며. 또 다른 부탁입니다만 문단을 넘나들며 의견을 남기시거나, 다른사람의 의견 사이에 의견을 삽입하시면 편집 역사를 하나하나 대조하지 않는 한 토론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의견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도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blemaker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9:05 (KST)
강제이전 정책 VS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 / 부정적인 여파 VS 긍정적인 여파 대한 중립적 시각
예를 들자면 일본인들이 을사조약, 위안부 문서 등에 자신들이 감추고 싶은 불평등 조약, 강제 체결,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여성 인권 유린 이런 팩트들과 이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최대한 감추고 어찌되었든 조약 체결에 합의하고 스스로 도장 찍은 것이니 불평등과 강제 체결은 아니다. 위안부들 중에 자발적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강제적인거냐 이런 식으로 일부 자신한테 유리한 부분을 침소봉대해서 본질 흐리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위에도 서술했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관련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전후맥락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따라서 종합적인 평가에 의한 본질이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해 처음에 내려졌던 본질도 시간이 가면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비유하자면 킹케니님 논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당시에 폭도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기술된 기사들이 명백하게 남아 있고 당시 국민들도 이런 기사들 믿고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빨리 진압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 가졌던 것도 사실이므로 이 사건은 영원히 폭동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위키백과 문서 제목도 영원히 폭동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하며 신뢰할만한 출처로 뒷받침되는 추후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평가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본질들이라도 중립성 시각에 위배되니 기술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문서에 공동화 결의에 합의를 하고 합의 이행을 안 한 3개 구단의 행동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중립적 시각인지 먼저 토론을 거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이 프로스포츠리그는 비즈니스이고 시장성 좋은 연고지를 획득하고 거기에서 계속 팀을 유지하고 이런 것은 구단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구단 자산인 대표팀 선수를 빌려가고 돈으로 보상금도 주는데 그렇다고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보상금을 받은 것도 없습니다. 또한 1990년대까지 축구장 인프라가 좋지가 않았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수원, 포항 등등 조명탑 시설 갖춘 축구장도 몇개 안 되었고 즉 탈서울 하면 구단이 손해만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서울을 포기하고 탈서울을 할 이유가 상식적인선에서 전혀 없습니다.(실례로 유공은 부천으로 정했지만 경기장이 없어서 2000년까지 서울 목동에서 있었고, LG도 1996년까지 서울 동대문에서 있었고 1997년에 자기들이 조명탑 설치했고, 일화는 천안에서 1999년까지 조명탑 없이 경기를 했습니다.) 또한 정부, 연맹 vs 구단에서 구단은 상대적 약자이며 공동화 결의 합의라는 것도 당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쉽게 말해 대승적 차원에서 희생 같은 성격이 있었으며 합의 이전에도 압력에 의해 탈서울 결의를 종용하고 공동화 결의가 통과된 1995년 2월 이사회 이전 1994년 12월 이사회에서 강제로 연고지 배정한다는 발언 그리고 1995년 2월 이사회 앞두고서는 이번에도 서울 연고 3개 구단과 협의가 안 되면 투표로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등등 뭔가 정상적이지 못한 정황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합의라는 것이 1995년에 했더라도 실제로 진짜 나갈 생각하고 타 연고지도 고려해 보았더니 조명탑 있는 경기장들도 없고 다시 철회하고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겠다고 했을때 이것이 합의 불이행이라고 강조될만한 것인지도 중립적 시각에서 살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여파 단락은 일단 문서 구조가 산만하다는 지적하에 삭제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여파 단락을 새로 만든다면 어떻게 기술하는 것 중립적인지 알고 싶습니다. 가끔가다가 연고지 역사 특집 기사들이 나오면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관해서 강제적인 정책이었다, 서울 연고지를 놓치고 황금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했단 이런 식의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만 나옵니다. 킹케니님이 포커스를 맞춘 서울 연고 3개 구단의 공동화 결의와 합의와 이에 대해 왜 안 지켰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초첨을 맞춘 기사는 전무합니다. 강제적인 연고이전 vs 합의와 합의불이행 / 부정적인 여파 vs 긍정적인 여파로 구분해 본다면 강제적인 연고이전과 부정적인 여파에 기사들만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경우 서술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토론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을사조약, 위안부 이런 문서들의 서술방식도 참고해서 현재 기준으로 민주화 운동, 불평등 조약, 강제적인 성노예로 정의 되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폭도에 의한 폭동, 어찌되었든 제 손으로 체결한 정상적인 조약 체결의 성격, 계약도 하고 댓가도 받고 이런 성노예가 아닌 자발적인 면에 대한 서술 비중을 어떻게 안배해서 기술하는 것이 중립적인지 토론 좀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강제성과 부정적인 여파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는 서울연고공동화 정책에 대한 근래 기사들 (1) <21편>서포터즈 이야기 (2007)
1. 위안부가 말씀하신 당시 강제로 끌려갔고 합의가 없었다는 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닌 분들도 있고 자발적인 면을 가진 분들도 있어서 이런 부분을 일본에서 파고듭니다. 을사조약은 그러면 어떻게 기술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조약을 그래도 체결을 한 것인데 그러면 포커스를 어찌되었든 조약을 체결한 것에 맞추어야 하나요? 아무튼 킹케니님은 합의와 합의 불이행이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잘 알겠고 그런데 근래 나온 기사들 보암면 이건 킹케니님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판단되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 좀 듣고 싶습니다. 강제적이라는 내용 혹은 이 정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들을 엄청나게 폄하하시는데 주장하시는 강제적에 관한 기사는 그래도 위원석 이런 스포츠서울 부장급 기자가 쓴 기사라도 짤막하게 소개되는데 킹케니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합의와 합의 불이행에 관한 기사들은 칼럼에서조차 발견이 안 되고 있다는 것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합의와 합의불이행이 이 정책에서 중요한 요소인가 검토를 해 봐야 한다는 것이죠. Footwiks (토론)
[4] 제 글은 왜 지우시나요.--Leedors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23:56 (KST) 이거 아주 단편적인 예인데요, 이런 거 독자 연구 좀 하지 마세요.
Kingkenny1967 (토론) 2017년 3월 18일 (토) 00:06 (KST) 단순 표현과 사실관계를 잘못 표현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신다면 큰일인데요.
절대다수의견 -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 vs 소수의견 -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 / 중립적 시각 위반 토론위에 토론 단락은 답변이 너무 번잡해졌고 새로 토론 참여하실 분들도 있고해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킹케니님 버전과 제가 킹케니님 버전에서 중립적 시각 수정한 버전과 큰틀에서 거의 차이도 없고 논쟁이 되는 부분은 이제 딱 한가지입니다. 문서 전체 논조를 현재 절대 다수의견인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 vs 강제보다 이전 합의와 합의 불이행를 강조: 소수의견 혹은 FC서울 안티팬 비주류이론 이 둘 중에서 정하고 문서 시각을 중립적으로 어떻게 안배하냐는 것입니다.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로 보입니다. 따라서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로 보입니다.
특히 이 정책이 실시되던 1994년 7월부터 1995년부터는 축구계에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구단은 대승적 차원에서 희생하라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명목적 합의에 가까운데 현재 문서를 보면 1 대 1 대등관계에서 서로 주고 받은 것이 있는 쌍무적 계약관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의이행을 강제해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상대적 강자가 합의를 했는데 이를 어기는 것은 잘못이며 이에 대한 페널티로 당연히 강제당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는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또한 합의불이행라는 용어는 국내에서 뉘앙스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던 노동자들을 상대적 강자인 회사에서 복직 안 시키고 이런 경우때 합의불이행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정책과 관련된 기사와 책에서 통틀어 합의 또는 합의사항 이렇게 통틀어 합의라는 용어가 3번 정도 나오지만 합의불이행이라는 표현은 나온적도 없습니다. 또한 위와같은 경우도 아니고 상대적 강자인 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구단이 자신의 사업기반이 연고지를 포기하는 대가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없이 단지 2002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서울 연고지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도 사실 구단한테 도의적으로 미안해야 할 일인데 합의했다는 이유 만으로 합의이행을 강제해도 된다는 식의 현재 표현은 중립적 시각을 떠나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 대 1 대등관계의 쌍무적 계약관계에 의해 합의를 했더라도 타연고지를 알아 보았더니 후보 도시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마음을 바꿔서 서울 잔류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구단의 정당한 권리이고 이에 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계약이 틀어진 것에 대한 위약금 정도나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비유자면 주말에 직거래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치더라도 마음 변경하고 계약 파기하면 위약금이 걸려다면 위약금 물면 되는것인데 현재 첫문서에 포함된 합의이행을 강제하고 표현 자체부터가 많이 쓰이지도 않는 서술이고 어색합니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합의이행을 강제하고 이런식으로는 쓰여도 서울 연고 3구단이 서울을 안 나가는 것에 대해 합의이행을 강제하고....이 표현은 강제이전이나 강제정책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상대적 강자가 합의를 했는데 안 해서 이행을 강제 당교묘하게 만든 표현이라는 것이 보이며 그러므로 합의불이행과 합의이행 강제라는 표현은 아래 규정에 의거 중립적 시각 위배입니다. 따라서 합의불이행 보다는 합의를 했지만 서울 연고지 잔류로 기존 합의를 반대 - 합의이행 강제라는 표현은 아예 없애고 쓴다면 기존 합의를 반대하자 강제시행 이런 적합한 표현으로 바꾸어야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합의가 어떤 상황에서의 합의인지 즉 대등관계에서 합의인지 그리고 합의에 의해 보상을 받았는지 이런 추가적인 정보도 알려주는 것이 중립적인 시각이라고 보여집니다. 덧붙여 2000년대 이후 전후맥락이 완전히 파악된 이후 나온 기사에서 서울 연고 3구단의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포커스를 맞춘 기사는 전무하며 짧게 표현하는 기사는 정부와 연맹이 서울 연고 3구단을 연고이전 시켰다 더 자세한 기사는 강제이전, 강압적인 정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것은 이 정책을 전체적으로 평가했을때 서울 연고 3구단의 합의와 합의불이행이라는 요소보다는 위와 같은 상황하에 프로축구연맹과 정부 주도였다는 것이 이 정책의 본질인 것을 축구계 인사들과 축구계 기자들은 알고 있고 독자들도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기 때문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기사들이 강제이전 시키고 강압적 정책 이런 표현이 이 정책의 대표 속성을 대변하는 서술이기 때문에 굳이 합의니 합의불이행 이런거는 아예 생략하고 짤막하게 강제이전, 강압적 정책이라고 나오고 있는 것이며 특히 한국프로축구연맹 30년사에서 주체였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만들었던 책이니 자신들에게 불리한 강제라는 단어는 뺐고 합의라는 단어는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나온 신문기사들도 합의라은 단어는 없고 강제이전, 강압적 정책이란 기사가 나온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포인트를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제 의견이 아니고 신뢰할만한 출처에서 전후맥락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이 정책 본질을 평가한 다수의견이 강제이전 및 강제시행이고 그 합의나 합의를 어긴 것은 전체 이 사건 맥락상에 과정 중 일부분입니다. 제가 만든 버전 보세요. 제가 합의 부정했습니까? 하도 합의와 합의불이행 강조하셔서 제가 강제라는 말과 합의 관련 단어 비중이 거의 비슷하게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킹케니님 버전은 강제연고 정책이라는 다수의견인 사건 속에서 그 과정 중 일부인 합의와 합의불이행만 단락 만 배치 (강제시행 단락 없음) 그리고 단어도 합의와 합의불이행 8번 이상, 강제시행 (2번) 신뢰할만한 출처에서 계속 이 사건 본질이 강제성에 초점이 맞추어서 나오는데 왜 과정중에 명시되면 될 합의와 합의불이행만 강조해서 문서 주객이 전도되게 만드시냐는거죠?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문서가 특정 시각이나 입장만을 모아놓거나, 기타 특정 시각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면 안 됩니다. 다른 분들도 이제 많이 오시고 하니까 비유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특정 사건의 본질이 다수의견에 정해졌을때 문장 서술이나 논조는 (1)번처럼 되어야 하는데 지금 킹케니님 버전은 본질을 흐리는 (2)번처럼 되어 있습닏. 말씀하신 합의와 합의에 반대해서 강제시행 그 부분 제 버전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정의 서술: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이주된 사건. (2) 의도적인 목적을 가진 서술: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합의했으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된 사건.
1996년 1월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국 선정을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프로축구 열기 확산과 주요 16개 도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이 목표였다. 이 정책에 따라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단, LG 치타스 프로축구단은 천안, 부천,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 정책을 주체였던 한국프로축구연맹 자신이 만든 책이니까 당연히 강제적으로 이런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그런 내용은 넣지 않았지만 이 정책 주체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였으며 이 정책에 따라 일화, 유공, LG는 이에 따라 이전한 것으로 명확하게 서술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조차도 3개 구단이 합의는 했지만 3개 구단이 합의이행을 하지 않아서 우리가 강제적으로 연고이전 시켰다는니 이런 내용으로 서술은 안 되어 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5년 2월 13일 이사회에서 1996년 1월 1일자로 서울을 공동지역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 (유공, LG, 일화)의 연고지 이전 결정이었다. 단서 조건은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이전 후 서울 지역에 전용구장을 건립하여 복귀를 원할 경우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서울 공동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하자 3개 프로팀을 유치를 원하는 지방 도시들의 구애는 뜨거웠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자기들 의도로 서울 공동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대해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결정에 합의했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합의도 없이 강제로 이전시킨 것은 아니고 과정중 합의라는 형식도 있었다는 것만 알려줄 정도로 서술이 되면 됩니다. 그런데 킹케니님이 만든 문서 보면 초점이 서울 연고 3개 구단의 합의와 합의불이행입니다. 그리고 위에 문장도 해석의 여지도 있고 팩트 확인도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찾으셨으면 킹케님이 먼저 제시하셨겠지만 1995년 2월 이사회 당시 신문 기사들 보시기 바랍니다. 결정이 통과됐다는 의미입니다. 그 전에 3개 구단이 계속 반대해서 원만히 타결 안 되면 표결로 통과 될 수 있다고 했고 킹케니님이 당시에 10명이었다고 하니까 3 VS 7로 통과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사회에서 3개 구단이 상식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서울 연고지에서 나가고 다른 도시로 나갈려는 찰나에 프로축구연맹에서도 때마침 나가라고 해서 흔쾌히 동의했으면 프로축구연맹 30년사 책에도 일화, 유공, LG의 합의에 의해 만장일치로 결정에 합의 이렇게 명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A: 서울 연고 3구단이 반대 했지만 어찌되었든 공동화 결의는 통과되었고 이에 대해 결의 수용 합의 A와 B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탄핵 결정에 지금도 반대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더 이상 국론 분열은 안 된다고 결정에 합의 내지 수용하는 것과 탄핵결정 자체에 처음부터 찬성했고 당연히 원하는대로 탄핵되었으니 합의된 것이고.. 같은 합의라도 이렇게 개념상 차이가 있는 것인데 지금 문서는 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없고 1대1 쌍무적 관계로 대가라도 받고 합의를 했고 그런데 대가 받고 합의한 놈이 이행을 한해서 강제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쓰여져 있습니다. 지금 서술하는 합의가 1대1 쌍무적 관계도 아니고 당시 상황상 서울 연고 구단들이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한 대의명분에 동참해서 희생하면서 이루어진 합의 이런 부분도 부가적으로 서술이 되어야 중립적 시각으로 보입니다. 저랑 킹케니님 이렇게 둘이서만 주장, 반반, 재반박 하다가 토론창 엄청 길어지고 새로 오신 분들 토론창 보고 참여할 엄두도 안 나고 이런 식으로 되니까 다른 분들이 이 문서 논점 좀 파악할 수 있게 의견 들어보게 서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축구배경지식 가자신 분들부터 여러분들 계속 토론 참여 글 올리고 있습니다.
나름 정리를 위하여 새 문단을 개설하여 다시 토론을 개시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두 사용자 간의 무한 논쟁만 이어집니다. 이 문단의 토론 또한 다소 난잡한 감이 있어 Kingkenny 님의 의견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감도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세 구단이 합의를 했는데 이행하지 않아 강제로 이행하게 했는지', 아니면 '해당 세 구단이 합의에 반대하였으나 그대로 통과되어 강제로 이행하게 했는지' 등과 같은 입장들이 필터링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습니다. Kingkenny 님께서 편집하신 버전은 뒷부분이 어찌 됐든 첫 부분이 '합의를 했는데 불이행했다'과 같이 구단 측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기존 판과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고 이런 변경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용자가 있으므로 '합의를 했는데 불이행했다'라는 사실까지 전부 입증할 수 있는 출처, 혹은 서적 인용을 타 사용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링크와 함께 근거가 되는 부분을 간략히 추가해 주실 필요가 있는 듯 싶습니다. + 재차 언급하지만, 토론이 다소 난잡하여 본인의 이전 토론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할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Tursetic 2017년 3월 19일 (일) 13:32 (KST)
이 이 정책의 속성을 대표하는 다수의견이 정해지면 정책의 대표속성을 대변하는 정의 설명을 3~4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고..... 세 구단이 나갈려고 하던 참에 흔쾌히 합의해서 통과되었는지 아니면 나가는 것에 반대는 하지만 통과는 되었고 이를 수용해서 나가기로 합의한 것인지 이 부분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또한 여기서 합의라는 것이 1대1 쌍무적 관계에 의해서 서울 연고지를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던가 이런 대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대적 강자: 정부와 프로축구 연맹 VS 상대적 약자: 구단 사이에 당시 2002 월드컵 유치를 대의명분 등등에 의한 사실상 명목적 합의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합의와 이에 따른 합의이행을 강제 이런 표현은 상황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렇게 대표 개념을 서술하는 책이나 신문기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대한 기사는 과거 당시 기준 시각의 기사만 남아 있고 이는 본문에 이 정책 과정 중 일부로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광주민주화운동때 폭도들의 난동이다 이런 식으로 당시 기준 시각에 의해 폭도들의 난동과 이것이 문제라는 식의 기사만 남아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고 이것도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니 당연히 본문에도 쓰여지 있는 것처럼...그런데 당시 기준 기사를 가지고 정책 대표 개념을 설명하는 문장에 이 부분을 넣은 것은 정책 대표 속성에 대한 본질흐리기에 가깝습니다.) 프로축구연맹 30년사의 세부 과정 설명이 아닌 서너 문장으로 요약되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개념 설명 그리고 제가 제시했던 전후맥락이 파악된 이 후 나오는 신문기사 등 서너 문장으로 이 정책을 정의할때 강제이전 정책이다 강압적 정책이다로 표현하지 과정 중 일부인 합의에 대해서 언급하는 문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서울 연고 구단과 프로축구연맹 합의는 이 정책의 과정 중 일부이지만 전체를 대변하는 본질적인 속성이 아닙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전체 본질을 서너문장으로 요약할때 민주화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으로 끝나지 큰 사건 중 일부인 예를들면 폭도 같은 과격시위도 있었다 이런 부분을 넣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 일어난 일이긴 하니 폭도 같은 과격시위에 대해 서술하는 것도 중립적 시각인 것은 저도 인정하고 이런것처럼 제가 만든 버전도 이 정책 중 과정중 일부로 합의가 존재 했었다는 부분 명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사에서 이 정책을 요약하는 한두줄의 정의 문장들이 아래 같은 강제적인 정책이라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합의를 했는데 합의불이행이므로 이를 강제했다 이런 문장들이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기사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질적인 성격이 아니고 과정중 일부이기 때문이며 합의와 합의불이행으로 포커스를 맞처서 이 정책을 서술하는 것은 소수의견도 아니고 0퍼센트 의견으로 여기 킹케니님 버전만 그렇습니다. 포인트가 이것이니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책에 대해 전후맥락이 파악된 이 후 신문기사들의 한두줄 짜리 정의 개념 기사
토론을 보니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정책의 강제 시행 자체에 대해서는 두분 모두 동의를 하는데, footwiks님은 구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책이 강제 시행되었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고, kingkenny1967님은 구단이 합의를 했는데 그것을 행동화하지 않아서 청와대가 강제 시행토록했다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이 토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초의 서울공동화 시행 합의과 관련된 자발성, 강제성 여부라고 판단됩니다. 합의에 대한 부분이 토론에서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합의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정책이 시행된 것은 결국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것을 토대로 시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합의라는 것이 자발적인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3자의 강제적인 개입에 의한 불가피한 동의를 전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문서 서술에 있어서 더욱 더 명확한 서술이 가능해집니다.
[1] 구단들이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제적 정책 추진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경우 [1]에서는 구단들이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제적 정책 추진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문서에 '합의'라는 부분이 언급되는 것은 잘못된 서술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상호간의 채무, 채권 관계가 전혀 없는 A와 B가 있고 B가 A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상황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이 상황에서 B가 A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줄 것을 강요하여 A가 돈을 주겠다고 최초에 말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A가 생각을 해보니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다시 B에게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 B가 더욱 더 강압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마침내 A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이것을 B가 A로부터 일방적으로 돈을 갈취했다고 표현해야 적절한 것이지, A가 돈 지급 합의 후 불이행을 하여 B가 강제적으로 돈을 받아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연맹, 협회, 정부 등의 강요, 강압 등에 의해 구단들이 합의를 한 것이 맞다면 이 상황에서는 '합의'에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연맹, 협회,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합의가 발생한 것이니 저 합의를 발생시킨 강제성에 주목을 해야 맞는 법입니다. 이와 관련있다고 판단되는 주요 자료에는 1994년 4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연고권 분산 추진, 1994년 7월 연맹의 서울 연고 구단 분산 추진 계획 발표, 1994년 7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 타 도시 이전 방안 언급, 1994년 7월 문화체육부의 지역연고제 개선 계획 발표, 1994년 12월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 1995년 2월 연맹 사무총장이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1995년 11월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 하달이 있습니다.(문서 내 주요 사건 일지에도 바로 나와 있는 자료들이니 별도로 각주는 달지 않겠습니다.) 일단, 1994년 4월에는 협회가, 1994년 7월에 연맹과 협회에서, 연이어 서울 연고 구단들을 타 도시로 이전시키는 것과 관련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전 시점에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 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 내지 추진하겠다는 식의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볼 때 서울공동화 검토, 추진이 연맹, 협회에서 처음 제기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교롭게도 1994년 7월에는 문화체육부가 프로축구 지역연고제를 확실히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 연맹, 협회를 통해 처음 검토, 추진된 서울공동화에 대해서도 문화체육부가 적극 지원했을 가능성 또한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이 문서에 각주로 인용된 당시의 여러 언론 보도들을 보면 지역 연고제 개선 필요성에 대한 내용들이 자주 나오고 있었기도 했고요. 종합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을 보면 서울공동화라는 것 자체가 서울 구단들이 아닌 연맹, 협회, 정부 등에 의해 적극 추진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면 구단들의 입장들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하는데 1994년 12월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나 1995년 2월의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식의 발언 등은 당시 서울공동화 추진 과정에 있어서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맹, 협회의 계획에 대해 반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판단 가능합니다.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연맹, 협회 계획에 따랐다고 가정하면 근본적으로 저런 말들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부분들을 첨언하면 구단들의 저런 행동들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일화는 1989년에 서울 연고로 창단했고, LG, 유공은 1990년, 1991년에 각각 충청, 인천/경기로부터 서울로 이전을 했습니다. 서울로 이전한지 애시당초 3~4년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도 서울이 압도적인 최대 시장성을 갖추고 있고 수도라는 상징성도 있는데 안양, 부천, 천안 등의 중소도시로 이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지역 연고제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연고이전을 한다는 것은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세 구단이 한꺼번에 말입니다. 지역 연고제를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 잔류를 한 상황에서 1996년에 연맹이 했던 것처럼 구단 명칭에 지역명 사용하는 식으로 지역 연고제 개선하면 그만이기도 했씁니다. 그래서 서울 연고 구단들의 연고지와 지역 연고제 개선 사이에는 상관 관계부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역 연고제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서 나가야 했던 것도 전혀 아닙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995년 11월에 청와대에서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강제 이전 지침이 나왔습니다. 서울 연고 구단들이 강제적으로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이전 지침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최종적으로 1996년 상반기에 서울 연고 구단들 모두 타 도시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문화체육부가 프로축구 지역연고제를 개선하겠다는 계획과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은 어느정도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평시 상황에서 청와대가 뜬금없이 서울 연고 구단보고 타 도시로 이전하라는 강제 이전 지침을 내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충분히 전후 상황 파악 가능할만큼의 자료도 존재합니다.
[2]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된 경우 [2]에서는 한번 [1]과 다르게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기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에도 [1]과 마찬가지로 '합의'라는 부분이 언급되는 것은 잘못된 서술에 해당합니다. 구단들이 최초에 서울공동화의 시행을 자발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도중에 생각을 해보니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는 것 자체가 구단에게 불필요한 행동이라 생각되어 이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자발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하여 무조건 그 최초의 합의 사항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그 합의를 파기하는 것 또한 하나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합의 파기에 따른 보상 책임 등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 또한 동반하겠지만 말입니다. 구단들이 최초에 서울공동화 시행에 자발적으로 합의했다가, 이것 저것 생각해보니 잘못 생각했다 싶어서,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나오면, 구단의 의사를 존중하여 서울공동화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지, 청와대 강제 이전 지침 등을 통해서 서울 연고 구단들을 타 도시로 강제 이전토록 하는 것은 결국 구단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 이전에 해당합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지역 연고제 개선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 상황이라면 오히려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연고이전을 하려던 행위를 멈추고 스스로 서울 잔류를 택하기로 했으니 연맹, 축협 등의 입자에서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연고제 개선을 해놓겠다고 해놓고서 단체로 여러 팀이 연고이전을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축구팬들이 연고이전에 대해 상당히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지역 연고제 강화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볼 때 만약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최초에 서울공동화에 합의를 했다가 이를 행동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거기서 끝내는 것이 맞는 행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여러분들께 질문을 한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지역 연고제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서울LG, 서울유공, 서울일화 등과 같이 지역명을 구단 명칭에 붙이고, 서울 라이벌 의식을 토대로 서울더비를 정착시키는 것이 맞는 행동일까요? 아니면 최초에 공동화 합의를 하고 말고를 떠나서 결국에는 서울에 있던 구단들이 서울에 잔류하겠다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강제로 타 도시로 이전시킨 것이 맞는 행동일까요?
[2-1]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서울공동화 시행에 합의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강제 이전 지침을 통해 결국 이행하게 된 경우와 관련된 몇가지 의문 사항들 한편 위에서 말한 부분과는 별개로 [2]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좀 의아한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만약, 서울 연고 구단들이 서울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사가 있으면 연맹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을 하여 최종 승인을 받으면 바로 이전이 가능합니다. 이사회에서 별도로 합의를 하고 말고 그런 소리가 나올 이유 자체가 애시당초 없다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연고이전한 K리그 사례들을 봐도 타 도시로 이전하고 싶으면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해서 승인받고 가지 이 과정에서 합의를 하고 말고 그런 말들 자체가 애시당초 나오지도 않았고 나올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1]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1994년 4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연고권 분산 추진, 1994년 7월 연맹의 서울 연고 구단 분산 추진 계획 발표, 1994년 7월 축구협회의 서울 연고 구단 타 도시 이전 방안 언급, 1994년 7월 문화체육부의 지역연고제 개선 계획 발표, 1994년 12월 서울 연고 구단들이 연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강제 연고 배정 계획 발표, 1995년 2월 연맹 사무총장이 다수결을 통해서라도 이사회를 통과시키겠다는 발언, 1995년 11월 서울 연고 구단들에 대한 청와대의 강제 이전 지침 하달이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연맹, 협회, 정부 등 구단이 아닌 제3자가 처음 제시하고 그 후에도 그 정책을 주도했다는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서울 연고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것이 맞다면 이런 수 많은 자료가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하고 싶으면 그냥 이사회에 연고이전 신청해서 최종 승인 받고 바로 가면 그만입니다. 위에서 말한 부분이기는 한데 상식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당대 대한민국의 최대 시장인 서울에서 타 도시로 이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 구단중 한 구단 정도라면 그나마 또 모르겠지만, 세 구단이 동일 시점에 한꺼번에 서울에서 타 도시로 자발적인 이전을 추진한다? 더군다나 LG, 유공은 기존 연고지에 불만을 품고 타 도시에서 서울로 이전한지 3~4년 밖에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말라는 절대적인 법은 없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보기에 납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만큼 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그래서 각종 자료들을 보면 오히려 [1]이 맞으면 맞지 [2]는 부적절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당시 자료로 보나, 지금 현재 시점에서 서울연고공동화정책에 대해 언급한 기사들을 보나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일단 [1]이 맞든 [2]가 맞든 그 부분과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서론의 '서울에서 다른 곳으로 연고지를 옮기기로 합의했으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합의 이행을 강제하고'라는 내용이라든지, 3개 구단들의 합의 불이행 같은 하위 단락의 존재는 부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들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이 맞느냐, [2]가 맞느냐에 따라 수정의 내용이 다소 달라질 수는 있어도 마치 '서울 연고 구단들이 스스로 이전하겠다는 식으로 나섰다가 안하니까 단지 강제 이전 지침을 내려서 이전시킨 것일 뿐이다'라는 뉘앙스가 풍겨지는 지금의 문서 내용은 [1]이 맞다고 하든, [2]가 맞다고 하든,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 부분과는 상관없이, 정책의 진행 경과를 보면 강제 시행이 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부분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최초 합의의 성격(자발성, 강제성 여부)을 떠나서 결론적으로 구단이 하지 않겠다는 것을 강제 지침을 통해 강제적으로 실시토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그 합의가 자발적인지, 강제적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각종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가 맞다고 가정하면 의문점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보나 각종 자료들로 보나 부적절한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1]이 맞다고 가정하면 상식적인 선에서 보나, 각종 자료들로 보나 상당히 적절합니다. 이러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문서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Rodrigo 0000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00:05 (KST)
그리고 한국어 위키백과가 특정 사건의 대표 속성에 대해 개인 유저들이 서로가 당시 정황을 추론해서 어떤 속성이 특정 정책이나 사건의 본질이다를 개인 의견으로 토론해서 결정하는 곳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언론인들이 이 정책에 대해 기사를 쓰기 전에 평범한 민간인들이 접할 수 없는 축구기관 혹은 해당 구단, 당시 당사자 취재하면서 그들만이 접할 수 있는 정보나 인터뷰 등등으로 사실 확인을 바탕으로 결론낸 '합의'를 포함한 해당 과정을 강제라 평가하고 있는 사실을 존중하고 여기에 따라가서 문서 편집을 해야 합니다.(그것도 한두 기사면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이 문서가 생성되기 전부터 언론에서 이 정책 속성은 강제성으로 규정했으며 2013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한 책에서 과정 설명 중 세 구단의 합의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2014년 신문기사에서는 여전히 강제이전, 아예 강압적인 정책으로 개념 설명을 했으며 합의나 합의불이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또한 현재 버전은 단락이 23개로 어떤 단락에는 내용이 한 줄이고 단락이 너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3월 18일 버전에는 단락수도 줄여서 가독성을 보완했습니다.--Footwiks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22: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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