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런은 1992년 총선에서 노스웨스트더럼 지역구 자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힐러리 암스트롱 노동당 의원과 테리사 메이 보수당 후보 (이자 훗날 영국 총리)에 밀려 3위로 선거를 마쳤다]. 이후 그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랭커셔 주의회에 들어갔으며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사우스리블 구의회의 레일랜드센트럴 지역선거구 시의원으로도 활동했다.[8]
2005년 총선에서 패런은 다시 한번 웨스트모어랜드 론즈데일에서 콜린스 의원 낙선에 나섰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는 불과 267표의 근소한 차이로 콜린스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7] 패런은 2005년 5월 25일 의회 원내 처녀 연설을 했다.[13] 또한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원내 교육기술특별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자민당의 유소년부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5] 2005년에는 초원 농업에 관한 일을 다루는 초당적 의원 모임을 꾸렸다.[14][15]
2008년 3월 5일, 패런은 영국의 리스본 조약 가입여부에 대한 원내 표결의 당차원 불참 결정에 대한 항의 표시로, 그간 맡고 있던 고위간부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이후 환경식품농림부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정면석 자리로 복귀하게 되었다.[17] 이 시기 패런은 당내 배버리지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18][19]
2010년대
2010년 총선에서 패런은 보수당 후보를 11.1%의 득표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때 전통적인 보수당 텃밭이었던 자신의 지역구에서 12,264표의 과반표를 얻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자민당이 거둔 나머지 지역에서의 결과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승리이기도 했으며, 웨스트모어랜드 론즈데일이 자민당 강세지역으로 우뚝 서는 수확을 거두었다.[20]
2010년 5월 27일, 패런은 빈스 케이블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자유민주당 부대표 자리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6월 9일 경선당일 투표 결과 패런은 사이먼 휴즈 전 당대표에게 밀려 패배했다. 18표를 얻은 패런과는 달리 휴즈는 38인으로부터 후보추천을 받아 20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글래스고 클라이드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자민당 당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중인 패런 (2014년)
2010년 9월 16일, 패런은 스콧 공작의 재선 불출마 선언에 따라 자민당 의장 경선에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 53% 득표율로 경쟁후보인 수전 크래머의 47% 득표율을 따돌리고 의장직에 당선되었다.[21]
2012년 3월, 패런은 같은당 의원 두 명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광고표준심의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최근에 위원회가 기독교 단체 'Healing on the Streets of Bath'에게 기도하는 자는 치유된다는 노골적인 광고를 중단시킨 결정에 대해 규탄했다. 이 서한에는 위원회 측에 신앙이 병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청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패런은 곧바로 그 서한이 "잘 쓰여진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하고, "쓰여진 그대로"의 내용에 따라 서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22]
2015년 총선에서 자민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거두면서, 패런은 자민당 국회의원으로 남은 유일한 여덟 명 중 하나가 되었다. 총선 이후 패런은 닉 클레그의 뒤를 이어 자유민주당 대표직에 오를 적임자로 고려됐다.[23] 2015년 5월, 패런은 BBC 라디오 4와의 인터뷰에서 자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확인했다.[24]
2015년 7월 16일 경선 당일, 패런은 56.5%의 득표로 자민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상대후보인 노먼 램은 43.5%에 그쳤다.[1] 대표직에 오른뒤 패런은 2015년 9월 본머스에서 열린 자민당 연회에 참석해 첫 연설을 하였으며, 이날 언론사로부터 호평을 받았다.[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