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앙드레 뱅상
프랑수아앙드레 뱅상(프랑스어: François-André Vincent, 1746년 12월 30일~1816년 8월 4일)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이다.[1] 생애뱅상은 1746년 파리에서 초상화 미니어처 화가 프랑수아엘리 뱅상의 아들로 태어났다.[2] 그는 조제프마리 비앙 밑에서 공부했으며 École Royale des Éleves Protégés에 다녔다. 1771년부터 1775년까지 로마 아카데미 드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그는 1768년 《자신의 진영에서 폭동을 진정시키는 게르마니쿠스》로 로마 대상을 수상한 후 로마로 여행을 떠났고, 자신과 같은 시기에 로마와 나폴리를 방문했던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화풍에 영감을 받아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던 만치니 궁전(Palais Mancini)에 자리를 잡았다. 1790년 뱅상은 루이 16세의 그림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1792년에는 파리의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1800년에 그는 초상화 화가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와 결혼했다. 그녀는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왕실 화가였다. 뱅상은 비앙 밑에서 같이 공부하고 경쟁자였던 자크루이 다비드와 함께 프랑스 미술의 신고전주의와 역사주의 운동을 선도했다. 그는 고전 고대 예술, 특히 라파엘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성기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3][4] 뱅상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프랑스 미술에서 주제와 테마의 주요 혁신가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3] 또한 뱅상은 1795년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프랑스 학술원의 일부이자 왕실 아카데미의 후신)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없었음에도 계속해서 공식적인 영예를 받았다. 작품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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