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필리핀 지역에 도래하기 이전 전통 종교인 필리핀 토착 민속 종교 (총괄하여 애니티즘이나 바탈리즘으로 지칭)는 많은 토착 민족, 부족집단, 가톨릭/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전통 종교로 귀의한 이들로 이뤄진 인구의 약 2%가 따르고 있다.[3][4] 이 종교는 자주 기독교 및 이슬람교와 혼합되었다. 불교는 일본계 필리핀인 공동체 등을 통해 필리핀 인구의 0.04%[5]가 신봉하고 있으며,[6][4]도교 및 중국의 민간신앙과 더불어 중국계 공동체에서 우세 종교이기도 하다. 시크교, 힌두교 역시도 소수의 신자들이 존재한다.[3][4][7][8][9]필리핀의 무종교 비율은 매우 낮으며,[10][11] 2020년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의 0.04%가 종교가 없다고 하였다.[5]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복음주의파는 인구의 2%를 이뤘다. 미국 및 한국 공동체, 북루손에서 특히 코르디예라 행정구, 남민다나오,[12] 필리핀 내 많은 부족 집단들에서 교세가 두드러진다. 개신교는 자유주의적 성향 및 복음주의 성향 양측 모두 2010년 이래로 2015년까지 매년 최대 10%의 상당한 성장 추세를 기록하고 있다.[13]
필리핀의 종교의 자유는 헌법 상에서 제3조제5항 (권리장전)을 통해 보장되어 있으며, "어떠한 종교를 국교로 지정하거나, 종교에 대한 신앙 고백 및 숭배를 차별이나 우대 없이 자유롭고 행사하고 누리는 것은 영원히 허용되어야 한다. 시민 및 정치권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종교적 시험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17] 2024년, 프리덤 하우스는 종교의 자유에 있어 필리핀에 4점 만점에 4점을 주었다.[18]
기독교는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상륙하면서 필리핀에 전래됐다. 1543년, 스페인 탐험가 루이 로페스 데 비야로보스는 당시 아버지인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이자 스페인 국왕으로서 카를로스 1세의 아래에서 지로나 및 아스투리아스 공이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를 기념하며 필리핀 제도에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라고 명명했다. 스페인, 미국의 필리핀 식민 통치 기간 이뤄진 선교 활동은 필리핀을 동아시아 최초의 가톨릭 국가로, 그리고 이후 동티모르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두 개뿐인 가톨릭 우세 국가 중 하나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전체 인구의 약 88.66%가 기독교 신앙에 속해 있다.[3][19]
가톨릭 (필리핀어: Katolisismo, 스페인어: Catolicismo)은 필리핀 내 우세 종교이자 최대 기독교 종파로 2020년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 중 78.8% (85,645,362명)[a]를 구성한다.[5] 1876년 스페인 헌법[20]에 따라 스페인 식민지 시기 필리핀 제도 대부분에서 국교의 지위를 누렸다.[21] 필리핀의 여러 섬들에 사는 이들을 개종시키려는 스페인의 활동은 강력한 중앙 권력이 부재했다는 점과, 현지 언어를 배워 설교한 수도사들의 활동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일부 전통적인 애니미즘 풍습은 이 새로운 신앙과 혼합되기도 하였다.[22] 국교로서 가톨릭의 지위는 단명한 말롤로스 공화국 때도 이어졌다. 미국의 식민 정부가 정교 분리 정책을 수립함에 따라, 마침내 필리핀의 국교로서 측면이 끝나게 되었다.[20]
천주교는 필리핀 사회와 정책에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986년 무혈로 끝이 난 피플 파워 혁명 당시 대중들의 지지를 결집시키는 데 중대한 역할을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마닐라 대주교이자 사실상 필리핀의 대주교이던 제이미 신은 라디오를 통해 대통령페르디난드 E. 마르코스의 독재에 대항하여 반란군의 지지를 위해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 대로를 따라 모여달라고 요청했다. 약 700만 명이 2월 22일부터 25일간 이 요청에 반응했고, 비폭력 시위는 마르코스와 그의 일가로 하여금 권력을 놓고 하와이로 망명을 가도록 했다.[23]
일부 가톨릭의 축일은 가족 행사로서 문화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상용력에서도 준수되고 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상용력 상의 새해 행사를 포함하는 성탄절이며, 3월이나 4월에 있을 수 있는 보다 엄숙한 고난주간도 가장 중요한 행사에 포함된다. 11월마다, 필리핀 가정에서는 성인들과 죽은 자들을 기리면서 만성절과 위령의 날을 같은 날에 기념하고 있으며, 조상들의 무덤을 방문해 가꾸고, 기도를 드린 다음 축제를 벌인다.[24] 2018년 기준, 12월 8일에 열리는 성모무염시태가 특별 공유일로 추가되었다.[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