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경황후(孝定景皇后, 만주어: ᡥᡳᠶᠣᠣᡧᡠᠩᡤᠠ ᡨᠣᡴᠣᠩᡤᠣ ᠠᠮᠪᠠᠯᡳᠩᡤᡡ ᡥᡡᠸᠠᠩᡥᡝᠣ Hiyoošungga Toktonggo Ambalinggū Hūwangheo, 1868년1월 28일 ~ 1913년2월 22일)는 예허나라 할아 출신인데, 일설에는 수완 나라 할아(蘇完那拉氏, 만주어: ᠰᡠᠸᠠᠨ ᠨᠠᡵᠠ ᡥᠠᠯᠠ Suwan Nara hala) 출신이라고 한다.[1][2]청 제국광서제의 황후로, 서태후의 조카딸이다. 이름은 정분(靜芬)이며 융유황후(隆裕皇后)로 알려져 있다. 시호는 효정륭유관혜신철협천보성경황후(孝定隆裕寬惠愼哲協天保聖景皇后)이다.
생애
엽혁나랍씨의 아버지 계상(桂祥)은 서태후의 남동생으로 아편 중독자였다.[3] 서태후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광서제와 엽혁나랍씨를 결혼시켰다. 그러나 황후는 고모의 꼭두각시였기 때문에 광서제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3] 대신 그는 서태후가 골라준 후궁 진비를 총애했는데, 이로 인해 황후는 진비를 미워하였고 서태후에게 그녀의 행동을 고자질하며 사이를 이간질했다.[4]1900년 진비가 서태후가 보낸 사람에 의해 우물에 빠져 죽자 광서제의 태도는 더욱 냉담해져서 엽혁나랍씨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였다.[5] 광서제가 죽기 열흘 전, 그를 찾아온 엽혁나랍씨가 방을 나가지 않자 노한 광서제가 머리카락을 잡고 문밖으로 밀어낸 일도 있었다.[3] 광서제와 서태후가 잇달아 죽은 지 3일 후 그녀는 태후로 봉해지고 융유(隆裕)라는 휘호가 올려졌다.[6] 엽혁나랍씨는 푸이를 양자로 들여 선통제로 즉위하게 했지만 1912년 청나라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1년 후 엽혁나랍씨는 자금성에서 중풍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청나라 소조정에서 올린 시호는 효정융유관혜신철협천보성경황후(孝定隆裕寬惠慎哲協天保聖景皇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