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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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3일 (1차 투표)
1995년 5월 7일 (2차 투표)

2002년 →

투표율 78.38% (1차 투표)
79.66% (2차 투표)
 
후보 자크 시라크 리오넬 조스팽
정당 공화국연합 사회당
득표수 15,763,027 14,180,644
득표율 52.64% 47.36%


선거전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대통령 당선자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95년 4월 23일5월 7일 양일에 걸쳐 치러진 프랑스대통령 선거이다. 2차 투표에서 공화국연합자크 시라크 전 총리와 사회당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맞붙었고 시라크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배경

1981년부터 집권해 온 사회당 소속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3선 출마를 포기하였다. 당시 미테랑의 나이는 78세였고 말기 암을 앓고 있었다. 본인의 정당인 사회당 역시 1993년 프랑스 총선에서 참패하여 우익 성향의 정당인 공화국연합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과 '동거' 상태에 있었다.

발라뒤르는 공화국연합 대표 자크 시라크에게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여론조사에서의 지지율이 높고 우파 정치인들의 지지 선언이 이어지자 출마를 결정했다. 당시 선거운동은 우파 내부에서 발라뒤르 후보와 시라크 후보 사이의 경쟁이 주를 이루었다.

대선 후보

좌파 계열은 미테랑 대통령 임기 중의 스캔들과 국민들의 실망감, 10%에 달하는 실업률로 지지율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1994년 6월 유럽 의회 선거에서 사회당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당대표를 맡고 있던 미셸 로카르 전 총리가 전격 사퇴하였다. 그 뒤를 이어 앙리 에마뉘엘리가 신임 대표로 선출되어 좌파 정권의 연장을 주도하였으나 좌파계열의 유력 후보였던 자크 들로르가 이에 동의하지 않고 후보로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좌파계열에서는 수많은 잠재후보들의 출마 가능성이 크게 열렸다.

당시 대선 출마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거나 출마를 권유받은 인물로는 자크 랑, 피에르 조스, 로랑 파비우스, 세골렌 루아얄, 로베르 바댕테르 등이 있었다. 이어지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교육장관이자 전 당대표였던 리오넬 조스팽이 에마뉘엘리와 최종경선에서 후보로 당선되었다. 조스팽 후보는 당의 신뢰와 도덕적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프랑스 경제는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불황으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경기침체와 더딘 회복의 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컸다.

한편 프랑스 공산당 (PCF)은 하락세에 접어든 지지율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신임대표 로베르 위는 이른바 '제왕적 돈'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며 신공산주의의 선봉장에 나설 것을 자임했다. 이후 이번에 4번째로 출마하게 된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아를레트 라기예르 후보와 함께 극좌 성향표를 놓고 경쟁에 나섰다. 두 후보 모두 1988년 대선에서 각 정당이 거둔 성과보다는 나은 득표율을 보였으나, 결선 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녹색당의 경우 도미니크 부아네를 대선후보로 내세워 좌파와의 통합을 택했다.

극우 계열의 장마리 르펜은 지난 1988년 대선에서 얻은 놀라운 득표율의 재확인에 나섰다. 극우 성향표의 확보에 있어 주요 경쟁자로는 유럽회의주의 성향의 원내 우익 정치인 필리프 드 빌리에르였다. 두 후보 모두 정부재정 상황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선거운동

1995년 1월 발라뒤르 총리의 출마 선언 당시 우파 세력 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SOFRES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라크 후보를 14%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1차 투표 예상결과, 32% 대 18%). 발라뒤르 후보는 총리로서의 '긍정적 평가'를 활용해 온건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였다. 시라크는 사회적 균열을 문제삼으며 발라뒤르 후보의 '지배적 사상'을 비판하였으며, 이번 대선의 대표 의제로 떠오른 실업문제와 관련해 "고용의 적은 급여명세서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3월 초부터 여론조사에서 시라크의 지지율이 발라뒤르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당시 발라뒤르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는 본인이 연관된 도청 스캔들이 폭로되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1]

시라크의 선거 구호는 '모두를 위한 프랑스' (La France pour tous)였고, 발라뒤르는 '프랑스를 믿자', 조스팽은 '더욱 정의로운 프랑스에 명확한 투표를'을 구호로 내세웠다.

선거 결과

리오넬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승리, 사회당의 지지율 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스팽의 2차 투표 상대는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아닌 자크 시라크로 드러났으며, 발라뒤르 후보는 시라크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였다. 장마리 르펜은 이번 대선에서도 약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데파르트망별 득표율

레지옹별 득표율

2차 투표

두 사람은 양자 TV 토론에서 대통령 임기 문제를 놓고 충돌하였다. 조스팽 후보는 대통령 임기의 5년 단축을 지지한 반면 시라크 후보는 7년 임기 유지를 고수하였다. 조스팽 후보는 "저와 5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자크 시라크와 7년을 보낼 것인가의 선택인데, 후자는 몹시 긴 시간이 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훗날 프랑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였으며 이는 다음 대선인 2002년 선거부터 적용되었다.

1995년 5월 7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발라뒤르는 낙선과 동시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어 알랭 쥐페 외무장관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데파르트망별 결과

레지옹별 결과

같이 보기

각주

관련 문헌

  • Cole, Alistair. "La France pour tous?—The French Presidential Elections of 23 April and 7 May 1995." Government and Opposition 30.3 (1995): 327–346. online
  • Dow, Jay K. "Voter choice in the 1995 French presidential election." Political Behavior 21.4 (1999): 305–324.
  • Elgie, Robert, ed. Electing the French President: 1995 Presidential Election (1996)
  • Lewis-Beck, Michael S., and Kevin Chlarson. "Party, ideology, institutions and the 1995 French presidential election."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32.3 (2002): 489–512. online
  • Maarek, Philippe J. "New trends in French political communication: the 1995 presidential elections." Media, Culture & Society 19.3 (1997): 357–368.
  • Schlesinger, Joseph A., and Mildred S. Schlesinger. "Dual-ballot elections and political parties: the French presidential election of 1995."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31.1 (1998): 72–97.

외부 링크

  • [1] 라디오-TV 토론 자크 시라크/리오넬 조스팽
  • [2] 2라운드 결과 TV로 발표
Prefix: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0 1 2 3 4 5 6 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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