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콜레라 전염병은 19세기 인도에서 시작한 콜레라의 세번째 주요 발병으로, 국경을 넘어서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UCLA 연구자들은 3차 유행이 1837년에 시작해서 1863년까지 지속되었다고 연구했다.[1] 러시아에서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1853~54년에 런던에서 10,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으며, 영국 전역에서는 23,000명이 사망했다. 이 전염병은 19세기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식된다.[2]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및 북미 지역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최악의 해로 여겨지는 1854년에 23,000명이 영국에서 사망했다.
1854년 런던의 가난한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는 존 스노(John Snow)는 오염된 물이 질병의 전염 수단임을 확인했다.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콜레라가 발생한 후, 그는 런던의 소호 지역에서 콜레라 사태를 연구했다. 한 지역의 수도 펌프 근처의 사례를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기 위해서 공무원들에게 물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하도록 설득해서 오염된 물을 마시지 않도록 조정하였고, 콜레라는 즉시 줄어들었다. 그의 이론은 전염병 통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존 스노는 1849년 콜레라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런던 역학 협회의 창립인이었으며, 역학의 아버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3][4][5]
미국인들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콜레라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미국 미시시피강을 따라서 질병이 퍼졌으며, 세인트루이스에서 4,500명 이상, 뉴올리언즈에서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9] 아일랜드인이 가장 많이 이민을 간 뉴욕에서는 수천명이 사망했다.[9] 1849년에서 1850년까지 내쉬빌을 강타한 이 사건은 전 미국 대통령 제임스 K. 포크도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캘리포니아골드 러시 동안 콜레라는 캘리포니아 트레일, 몰몬 트레일, 오레곤 트레일을 따라서 확산되었고, 약 6,000~12,000명이 사망했다. 1832년에서 1849년 전염병을 통해서 미국에서만도 약 150,000명이 사망했다고 하며,[10][11] 멕시코에서도 20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1850년대 유행
1847년에 시작한 러시아의 콜레라 전염병은 1851년까지 지속되어 약 백만명이 사망했다.
1851년 쿠바에서 온 배가 그란 카나리아에 전염병을 전파했다.[13] 58,000명의 인구 중에 여름에만 6,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