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함대 계획66함대 계획(일본어: 六六艦隊計画)은 일본 제국 해군이 1896년부터 1905년에 걸쳐 추진한 해군 군비 계획이다. 제 1기 확장 계획과 제 2기 확장 계획에 따라 구성되어 일본 제국 해군의 대 러시아 전쟁 준비의 핵심이 되었다. 배경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에 의해 청일 전쟁이 일단락되면서 영토 및 배상금 등으로 승패의 격차를 실감하였고, 배상금의 용도와 러시아의 남하 정책 등을 배경으로 정부 내에서 전후 경영에 관한 의견이 다수 나오게 되었다. 정부는 제 9의회(같은 해 12월 25일 소집)에서 와타나베 구니타케 대장대신(大蔵大臣)의 재정 의견서를 약간 수정한 재정 계획안(1896 ~ 1905년)을 참고 자료로 제출했다. 삼국 간섭으로 청나라에 반환하게 된 요동반도는 러시아가 점령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정비하여 뤼순을 군항으로써 크게 확장시켰고, 이곳을 기반을 한 태평양 함대의 내실을 기하여 왕년의 청에 비할 수 없는 위력을 갖게 되었다. 이 때 건조 중이었던 것은 1892년도 계획에 따라 가장 먼저 착수한 ‘후지’와 ‘야시마’를 비롯한 순양함 이하 몇 척에 불과했다. 새롭게 떠오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군대신(海軍大臣) 사이고 주도가 1896년에 전함 4척, 순양함 4척을 추가한 ‘해군 확장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계획 착수 후에도 러시아는 대규모 건함 계획에 착수하여 우수한 전함을 발트해에서 건조하는 동시에 프랑스와 미국에도 발주하였고, 건조한 대부분의 군함을 극동 지방으로 파견해 태평양 함대를 확대할 방침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1897년도부터 순양함 2척을 비롯한 추가 건조 계획을 병행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이 대규모 계획에 대한 예산 수립을 위해 사이고 주도가 다음의 취지로 내각에 설명서를 제출하였다.
실제 전후 경영에서는 번벌 정부와 민당 측 일부와 제휴하는 가운데, 재정과 공공 투자 팽창 등 적극적인 국가 운영으로 전환하면서 청나라 배상금 등을 바탕으로 군비를 확장했다. 이로 인해 1896년도 ~ 1905년도 군비 지출은 3억 1,324만 엔에 달했다(제 3기 해군 확장 계획을 제외한 제 1기, 2기 계획만 상정). 그 구성 비율은 육군이 32.4% (포대 건축비 8.6%, 시설 정비와 첫 해 조변 비용 16.0%, 포병 공창 확장 비용 5.8%, 기타 1.9%), 해군이 67.6% (조선 비용 40.0%, 조병 비용 21.2%, 건축비 6.4%)였다. 또한 재원 구성 비율은 청 배상금 · 산둥반도 반환 보상금이 62.6%, 조세 12.7%, 국채 24.7%였다. 계획 내용1896년부터 1905년까지의 10개년 계획으로 총액 2억 1,310만 엔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본 계획 이전부터 건조 중이던 전함 후지와 야시마 두 척 이외에 전함 4척, 장갑순양함 6척과 보조 함정 다수를 건조하고, 전함 6척, 장갑순양함 6척을 핵심으로 하는 균형 잡힌 대규모 함대를 한번에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제 1기 확장 계획제 1기 확장 계획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건조 (계획)건조 (실제)
제 2기 확장 계획건조 (계획)
건조 (실제)
제 3기 확장 계획러일전쟁 직전에 새롭게 추가된 건함 계획이었다. 건조 (계획)
건조 (실제)
군함 2척 추가 구입당시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해군 확장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가 이탈리아에서 장갑순양함 4척을 구입 후 추가로 2척을 발주한 상태였다. 칠레는 이 순양함 6척에 대응하기 위해 에드워드 제임스 리드 경( Sir Edward James Reed )이 설계한 전함 〈리베르타드〉( Libertad )와 전함 〈콘스티투시온〉(Constitución)을 영국에 발주했다. 그런데 두 나라는 예산난으로 인해 협정을 맺어 경쟁을 중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저 함선들이 모두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갈 우려가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전함 페레스베트( Peresvet )와 이 동형함에 대응하기 위해 주 영국 공사를 통해 구매 협상을 시작했지만 러시아의 방해가 심해 결정되지 못했다. 영국은 중립 동맹의 입장에서 이 전함들을 자국 해군에 인수하고 전함 〈트라이엄프〉( HMS Triumph )와 전함 〈스위프트 슈어〉( HMS Swiftsure )라고 명명했다. 일본은 칙령으로 긴급 지출을 하여 1600만 엔을 마련하였고 이탈리아에서 건조 중이던 순양함 〈리바다비아〉( Rivadavia ), 순양함 〈모레노〉( Moreno )를 아르헨티나로부터 구입하여 가스가, 닛신으로 명명했다. 이 두 군함은 러일 전쟁 개전 직후인 1904년 3월 16일 일본에 도착하여 주력함의 부족을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두 군함의 회항에 영일 동맹에 따라 영국 정부가 전면적으로 지원을 하여 러시아 방해나 나포, 공격 시도로부터 지켜주었다. (참고) 러일 전쟁 군사비에 의한 건조 계획1904년 3월에 임시 군사비가 할당되어, 함정 건조와 기타 비용에 충당하기 위한 ‘함정 추가 비용'을 재원으로 다음의 전시 건함 계획이 수립 및 실행되었다. 건조 (계획)
건조 (실제)
(참고) 러일 전쟁 종전 직후의 건조 계획건조 (계획)
건조 (실제)
계획 실시 결과본 계획의 추진에 의해 일본 제국 해군의 해군력은 종전의 4배 이상에 달하는 확장을 이루게 되었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이어 미국과 독일을 능가하는 세계 5위의 해군 대국으로 약진했다. 1902년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세계 제 4위의 해군력을 가지게 되었다.[2]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6척의 순양함이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3]
구식 전함에도 대응 가능했고 신식 전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 개념은 이후의 순양전함 또는 고속전함과 같아서 러일 전쟁의 결과를 보고 영국은 순양전함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각 나라마다 모두 경쟁적으로 대형에다 중무장한 장갑순양함을 건조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참고 문헌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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