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1940년)
이종(李淙, 1940년 11월 9일(음력 10월 10일) ~ 1966년 12월 25일)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제국의 황족 출신 인물로, 흥선대원군의 5대손이다. 의친왕의 차남 이우(李鍝)와 그의 부인 박찬주(朴贊珠)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우가 운현궁의 종주인 영선군의 양자가 되었으므로, 가계상 흥선대원군의 장자였던 흥친왕의 증손자뻘에 해당된다. 자는 성명(聖明), 호는 석아(石亞)이다. 조선의 멸망 후에 태어났으므로 황족은 아니며, 일본의 왕공족 신분이었지만 7세 때 신적강하로 평민이 되었다. 1944년에 입국하여 서울 운현궁에서 생활하였고, 경기고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교 석사 과정, 브라운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 수학 중 196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때 성당에 미사하러 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다음날 사망하였다. 생애어린 시절그는 원래 의친왕의 친손자이고 고종의 증손자였지만, 아버지 흥영군 이우가 5촌 당숙인 운현궁 종주 영선군 준용의 양자가 됨으로써 숙종의 3남 연령군과 낙천군, 은신군의 후손이 되었다. 1940년 11월 9일에 이우와 박영효의 서손녀 박찬주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 이우의 일본 도쿄 별저(別邸)에서 태어났다.[1][2] 그에게는 친형 이청이 있었다. 1944년 6월에 귀국하여 운현궁(雲峴宮)에서 생활하였다.[3]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시행령에 의한 신적강하로 왕공족의 신위상실(身位喪失)되었다.1959년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정치학과로 진학하였다. 로마 가톨릭에 입교했는데[4], 언제 어디서 어느 가톨릭 사제 주관하에, 어떤 영세명으로 입교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수학과 최후1962년 1월 26일에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귀국할 때에 김포공항에서 영접, 동행하였다.[5] 1963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 저지 주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다시 브라운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 1966년 6월 석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의 박사학위 과정으로 진학하였다. 박사과정 연수 중이던 1966년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일을 맞아 성당으로 미사에 참여하러 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6][7] 1967년 1월 1일에 유해가 NWA 항공기편으로 당일 낮 12시 30분경 대한민국 김포공항에 운구되었고,[8] 폭설이 원인이라 한다. 사후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창현리, 후일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의 흥원(興園) 근처로, 양 할아버지 영선군 이준용 묘소 오른쪽 방향인 화도면 마석우리에 안장되었다.[9] 비석은 검은 오석 재질에, 묘비문은 완산후인이공종지묘로 새겨졌다. 후에 시신은 화장되어 흥원 내 아버지 이우의 묘소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납골묘에 안치되었다. 납골묘에는 이우의 2남이라는 것과 호 석아가 새겨져 있다. 결혼 여부와 자녀의 존재 여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비석과 석물은 2005년 1월 낙천군, 은신군, 흥친왕 등 선조들의 묘비와 함께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2-1번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학력가족 관계가족 관계조선 왕실과 운현궁 가계도
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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