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全國敎育大學生代表者協議會)는 1987년 하반기에 건설된 전국 교육대학교 총학생회장들의 협의체로 약칭은 교대협(敎代協)이다. 6월 항쟁과 함께 건설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全國大學生代表者協議會,약칭 전대협)의 교육대학 부문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상위단체가 없는 독립된 최상위 조직이다. 기치는 '참교육의 자랑찬 선봉대'이다. 2013년 공식적으로 해소하고 전국교육대학생연합 (교대련)으로 조직을 전환했다. 역사와 활동교대협은 6월 항쟁과 함께 건설된 전대협의 교육대학 부문으로 출발했다. 1시기 - 교대협 건설기
2시기
3시기 - 교총련 전환기교총련 건준위시기이다. 전대협의 한총련전환에 맞추어 교대협의 교총련으로 전환이 논의되었다. 임용고사 철폐를 위한 무기한 동맹휴업 총투표가 부결[1] 되면서 조직이 약화되었는데 총학생회 연합으로의 전환이 단결과 실쳔력을 담보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내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부의 변화를 따라가는식이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실험이 된다.
4시기 - 교대협 환원기
구성개별 총학생회는 다른 상위단체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으나, 90년대 후반 토론 끝에 교대협은 협의체의 성격이므로 상위 단체에 소속되지 않음을 확실히 했다. 2008년경 실천적으로 해소된 전국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약칭 전사련, 전국사범대학생연합(건)과는 다른 조직)은 전대협의 한총련 전환기에 학생회연합으로 전환한 한총련의 사범대학 부문이었다. 각 교대 총학생회장들이 중앙위원의 지위를 가지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는 과학생회장이 중앙위가 된다. 경인교대는 인천캠퍼스와 경기캠퍼스 각각의 총학생회장들이 동일한 권한을 가지고 중앙위가 된다. 제주대 사라캠퍼스의 총학생회장도 중앙위의 권한을 가진다. 만약 각 교대에서 전년도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어 총학생회를 중앙운영위원회, 총운영위원회의 연석회의가 운영하게 되거나 중운위, 총운위를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여 운영하게 되더라도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인 연석회의 의장이나 비대위원장은 중앙위의 자격을 가진다. 단, 이 경우 교대협 의장선거의 피선거권은 가질 수 없다.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와 함께 집행기구인 집행위원회가 있다. 연대사업국, 사무국, 정책국등을 두나 집행국의 구성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유동적이다. 교육대학교의 총학생회 구성교대 총학생회의 특수성87년 형식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교대 총학생회가 크게 기여한 부분이 없었기에 초기 학생회 활동가들 사이에선 부채감이 있었다. 박선영열사의 경우도 서울교대 출신(수학교육과 85학번)이긴 하지만 외부 조직에서 활동했고, 당시 서울교대 내의 조직 활동은 미약한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도호국단이 총학생회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각 과까지 학군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학생 자주적인 총학생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87년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어용 총학생회가 자리잡고 있는 교대가 많았다. 대부분의 교대에서는 초기에 총학생회 민주화를 위한 싸움부터 시작했다. 과학생회의 경우는 더 오랫동안 스스로 학생자치 기구임을 선언하지 못했는데, 90년대 말까지도 많은수의 과학생회는 '학회'의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90년대말 학부제의 실시로 수많은 학생사회가 힘을 잃을 때에도 과학생회 단위가 잘 살아 있었고, 김대중 정권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의 "나이 든 교사 하나 쓸 돈이면 젊은 교사 셋을 쓴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실시한 교원 정년단축으로 초등교사 부족사태가 발생하면서 학생들의 취업문제가 보장되 2000년대 초중반까지 상대적으로 건전한 학생사회가 유지되었다. 교대는 일반 종합대와는 달리 1개의 단과대학으로만 구성이 되어있어 총학생회가 일반적인 단대 학생회가 하는 수준의 사업까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단운위가 없고 각 과의 학생회장들이 중운위가 된다. 99%의 과학생회는 3학년이 되는 학번에서 호선으로 정,부과학생회장을 선출하고 총회에서 인준을 한다. 4학기 이상 등록자는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도록 대부분의 과학생회에서 정하고 있으나 후보자 등록을 하고 선거를 치르는 과학생회는 현재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 교대 총학생회의 상황2003-06년 4년동안 민중민주계열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7년 선거는 후보자 등록이 없어서 무산되었다가, 재보궐 선거에서 민족해방계열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9년 선거는 후보자 등록이 없어서 무산되었다가 2009년 4월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가 건설되었다.'박선영 남태현 열사 추모사업회'가 자치기구로 있다. 2010년 선거는 후보자 등록이 없어서 무산되어 과학생회장단과 동아리연합회장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총학생회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민족사향이다. (민족사향 서울교대 XX대 총학생회)
♦ 인천캠퍼스 (~2010) 전통적으로 민족해방계열의 당선이 많았으나, 2007-08년 연속으로 전국학생행진의 민중민주계열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2009년 등록 후보가 없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어, 과학생회장으로 구성된 총운영위원회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총학생회를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캠퍼스 기능별 특화를 거치면서 양캠퍼스 통합 초대 총학생회가 건설되었다.
♦ 경기캠퍼스 (2007~2010) 경인교대 경기캠퍼스는 2005년부터 신입생을 받았는데, 2005-06년은 캠퍼스 자치위원회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때 인천캠퍼스에서 파견된 집행국이 자치위의 집행국 역할을 했다. 2006년 말부터 자치위원장이 교대협 중앙위 회의에 의결권 없이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있었다. 첫 신입생이 3학년이 되던 2007년에 초대 총학생회를 건설하였는데, 인천캠퍼스와는 통합 총학생회장을 뽑는 등의 형태가 아닌 별개의 총학생회를 건설하였다. 학보사 등은 학생자치기구가 아니므로 양 캠퍼스에 걸쳐 하나만 있다.
♦ 통합 (2011~) 2011년 캠퍼스 기능별 특화로 양 캠퍼스 단일 총학생회가 건설되었다. 춘천교대 총학생회는 90년대 중반 교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들의 총학생회가 총대의원회 체제에서 전체학생대표자회의 체제로 전환할 때 전환하지 않아 현재도 총대의원회가 유지되고 있고 총학생회 선거시 선거관리위원회도 전학대회나 중운위가 아닌 총대의원회가 전환하여 구성된다. 하지만 총대의원회는 실질적으로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전학대회 수준의 의결, 승인 기구가 없고 최근 총대의원회는 비교적 간단히 총학생회의 예산, 사업계획을 승인해 주므로 이를 악용해 대내외적으로 총학생회의 사업을 알리고 학우들에게 승인 받아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치언론인 교지의 편집장과 독립자치기구들의 대표자도 중운위의 구성원이다. 예산자치제는 실시되고 있다.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민중이나, 최근 민족해방성향의 총학생회가 많이 당선이 되면서 민족사도를 기치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사도 춘천교대 XX대 총학생회)
2009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교대협과의 연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맨투맨 선거운동본부(총학생회장 : 서승우, 부학생회장 : 이광호)가 단독 출마하였으며 연장투표 끝에 당선되었다.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애국이다. (애국 청주교대 XX대 총학생회) 2010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청주교대 통폐합 반대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건 함께뛰는 선거운동본부(총학생회장 : 이광호, 부학생회장 : 송도)가 당선되었다. 2011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전년도의 공약을 이어받아 실현하고 사회의 기타 교육여건 개선에 헌신하고자 선거운동본부(총학생회장 : 송도, 부총학생회장 : 박정훈)가 출범하였다. 2010년도 총학선거에 단 한명의 후보도 입후보하지 아니하여 총학이 구성되지 아니한고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각 학과의 회장과 부회장이, 위원장은 초등미술교육과 김민선이 담당하고 있다. 공주교대비대위는 2011년 4월 3일 전체학생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되었는데, 4월 4일 비대위전체회의에서 현재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와의 통폐합이 사실상 결정되어 이에 대해 그리고 날치기로 진행된 통폐합 과정에 대해 반대입장을 천명하고 전체 학생들이 참여하는 투쟁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으며, 5월 중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통폐합반대 설명회를 청목관 정화홀에서 열기로 결의하였다.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애국이다. (애국 공주교대 XX대 총학생회)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민족이다. (민족 대구교대 XX대 총학생회) 2007년 민족해방성향의 두 선본이 경선하였는데, 민중민주성향의 활동가가 도움을 준 선본이 당선되었다. '한상용 이경동 열사 추모사업회'가 자치기구로 있다. 두 열사는 임용고사 철폐를 위해 분신했다. 학교와 총학생회 명칭앞에 붙이는 기치가 민족사도이다. (민족사도 부산교대 XX대 총학생회) 진주교대는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하고 있는 교대이다. 1963년 1월 1일 설치인가를 받고 3월 1일 개교하였다. 따라서 진주교대 학사 일정 중 개교일로 쉬는 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매년 3월 8일이 개교기념일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진주교대 총학생회장단은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다만 진주교대와 총학생회 앞에 붙는 기치가 애국이다. 또한 대부분 경선이 아닌 단선으로 찬반투표로 총학생회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06년도와 07년도에는 총학생회기구가 세워졌으나, 08년도부터 총학생회기구가 세워지지 않고 비대위 체제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12년도부터 총학생회기구가 부활하였다. 총학생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총회, 중앙운영위원회, 총집행위원회, 감사위원회, 동아리연합회, 각과학생회, 교지편집국을 두고 있다. 또한 중앙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장, 총학생회부회장, 감사위원장, 동아리연합회장, 각과 학생회장으로 구성되어있어 감사위원장의 역할이 독특하다. 이 구조는 대의원체제를 감사위원회체제로 바꿈으로써 생긴 체제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언론사 기구인 JBS(진주교육대학교 방송국)와 신문사는 총장산하기구로 설립되어 있다. 하지만 교지편집국은 총학생회 산하기구로써 운영되고 있으며 다만 기구 상의 위치로써 존재할 뿐 업무 상으로는 독립적인 존재가 더 크다. 매년 총학생회의 임기는 12월 1일부터 다음해 11월 30일까지이다.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라캠퍼스)제주교대는 동아리 연합회가 구성되어 있지않다. 동아리 협의회가 동아리들의 대표기구이다. 학생수가 적은 관계로 총학생회장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회칙상 이 경우 중앙운영위가 과학생회장 중에서 호선으로 정,부총학생회장을 선출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정, 부총학생회장이 나온 과는 별도로 과 학생회장을 선출한다. 다른 교대의 경우도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될 경우 중운위를 연석회의나 비상대책위로 전환해 중운위중에서 의장 또는 위원장을 호선으로 뽑고 총학생회장의 권한을 위임받아 권한대행이 되지만, 제주교대의 경우처럼 총,부총학생회장을 선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교대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단이 중운위를 구성하는 과학생회장이나 자치기구장을 겸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006-07년 민중민주계열의 총학생회장단이 선출되었다.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학생회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학생회는 한국교원대 내의 다른 과학생회가 학교 내부 문제에 치중하는 반면 초등교육과 학생회는 교대협 활동도 병행하기 때문에 대내, 대외적인 성향을 함께 갖는다. 한국교원대를 구성하는 24개 과 중 하나이지만 초등교육과 학생회가 추진하는 사업과 영향력은 한국교원대 내에서 가장 크다 할 수 있으며 그 규모도 가장 크다. 초등교육과 3학년 11개 심화(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실과, 교육학)의 대표가 모여 초등교육과 중앙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운영위원 정원은 13명이다. 중앙운영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과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발언권만 있을 뿐 투표권이 없다. 학생회 임원과 중앙운영위원은 겸직이 가능하다. 2011학년도에 당선된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학생회장단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을 띠지 않고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없이 대내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이화여대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학생회는 2001년 교대협과의 트러블로 교대협에서 탈퇴하였다. 2006년 하반기 전국 교대 동맹휴업 때 일시적으로 중앙위 회의에 참석하고 교대협에 복귀했으나 이후 교대협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없다. 일상 사업방학중에 상하반기 간부대회를 연다. 교대협 출범식과 교대인 한마당을 정기적으로 개최했으나, 최근 내부 역량의 한계로 개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교대인 한마당교대인 한마당은 교대협에 하반기 대중사업으로 1995년 인천교대에서 ‘교대인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초등예비교사들의 삶과 문화, 교육에 대한 고민을 넓게 풀어내는 대동의 한마당으로 교대협 출범식과 더불어 교대협의 양대 사업이다.
의장 선거겨울 방학중 중앙위원중 입후보자를 받아 상반기 간부대회에서 선출한다. 선거권,피선거권 모두 중앙위에게만 있었으나, 2007년 선거부터 피선거권은 그대로이나 선거권이 각 학교 중운위(과학생회장만 포함, 자치기구장이 단위학교에서 중운위 구성원이어도 인정하지 않음)로 확대되었다. 선거권 확대를 두고 교총련식의 학생회 연합으로 전환을 논의하는 것인지 문제제기를 한 그룹이 있었으나, 선거권 확대를 제안한 그룹은 민주주의의 확대의 개념이라는 입장이었다. 의의와 한계, 비판교대운동의 교대협, 총학생회 중심성(모든 활동을 교대협, 총학생회 중심으로 사고) 교대협 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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