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홍무제의 15남)
주식(중국어: 朱植, 1377년 3월 24일 - 1424년 6월 4일)은 명 태조의 15남이다. 생모는 한비이다. 첫 봉작은 위왕(衛王), 후에 요왕(遼王)으로 개봉되었다. 생애주식은 홍무 10년 2월 15일 (1377년 3월 24일)에 태어났다. 생모 한씨는 고려의 미녀로, 자색이 아리따워 명 태조의 총애를 받아 비에 봉해졌다. 한씨는 홍무 13년 (1380년)에 딸 함산공주를 낳았다. 홍무 11년 (1378년), 위왕(衛王)에 봉해졌다. 홍무 25년 (1392년), 요왕(遼王)으로 다시 봉해지고, 이듬해 요동 광녕위 (지금의 랴오닝성 베이전시)로 이사했다. 봉지가 동북 국경과 가까웠기 때문에, 주식은 군사를 익혀 여러 차례 무공을 세웠다. 건문 연간,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은 주체와 멀지 않은 곳에 군사를 두었던 주식이 주체를 지지할 것을 우려하여, 남경으로 불러들였다. 주식은 건문제의 명령에 따라 해로를 통해 남경으로 건너 온 뒤, 호광 형주부 (지금의 후베이성 형주시)로 개봉되었다. 주체가 제위를 차지한 후, 주식이 정난지변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영락 10년 (1412년)에 호위를 삭탈하고, 하군교위역 300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출사시켰다. 영락 22년 5월 8일 (1424년 6월 4일), 주식이 사망하였다. 9월 1일 (9월 23일), 시호를 간(簡)이라 하였다. 장남 주귀영은 일찍 죽었기에, 차남 주귀합이 10월에 주식의 작위를 계승하였다. 가계처첩
자녀아들
딸
묘소홍희 원년 (1425년) 3월, 주식은 호광 형주부 강릉현 팔령산 (지금의 후베이성 형주시 강릉현 팔령산 남쪽 기슭)에 묻혔다. 1987년 9월부터 10월까지 형주박물관과 강릉현 문화재국에서 발굴하여 수습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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