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최씨는 시조를 전주계(全州系), 경주계(慶州系), 강화계(江華系)로 달리 하는 세 계통이 있다.
전주계(全州系) :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한다. 최흔봉은 고려 태조(太祖)의 부마(駙馬)로 완원위(完原尉)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인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부마를 위(尉)에 봉하는 제도 역시 1451년(문종 원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므로, 후세의 윤색으로 여겨진다.
경주계(慶州系) : 최필달(崔必達)을 시조로 한다. 최필달은 고려의 개국공신이고,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신하를 군(君)에 봉하는 제도는 1298년(충렬왕 24)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므로, 후세의 윤색으로 여겨진다.
강화계(江華系) : 최문한(崔文漢)을 시조로 한다. 최문한은 고려 충숙왕(忠肅王)의 부마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인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강릉 최씨는 세 계통을 다 합하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1명을 배출했다.
인물
고려
최유(崔濡, 1072년 ~ 1140년) : 자는 원택(元澤). 1090년(선종 7) 19세로 문과에 급제하고, 인종(仁宗)조에 관직이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경(莊敬)이다.
최수황(崔守璜, ? ~ 1301년) : 고려 고종(高宗)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충렬왕(忠烈王)조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했다.
조선
최유련(崔有漣) :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 최유련 개국원종공신록권(錄券)은 보물 제1282호이다.
최이(崔迤, 1356년 ~ 1426년) : 최유련의 아들. 초명은 최원(崔遠), 자는 유명(惟明). 세종(世宗)조에 관직이 판좌군부사(判左軍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희경(僖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