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코로 지진
돈도코로 지진(일본어: 外所地震 とんどころじしん、とんところじしん[*])은 1662년 10월 31일(간분 2년 9월 20일)에 일본 휴가나다 해역에서 일어난 규모 M7.6, 최대진도 6강(추정)의 지진이다. 유사 이래 규모가 가장 큰 휴가나다 지진이다. 1662년 휴가나다 지진으로도 불린다. 진원은 휴가나다 남쪽, 미야자키현과 가까운 연안 해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휴가나다 지진 중 가장 피해가 큰 지진이다.[3] 휴가국과 오스미국(현대 일본의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 오스미반도)를 중심으로 특히 오비번(현 미야자키시 기바나 지역자치구)에서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다. 지진 및 피해미야자키현 대부분 지역에서 진도 5 이상의 지진동을 느낀 것으로 추정되며, 사도와라번(현 미야자키시 사도와라초)에서 진도 6강을, 노베오카번(현 노베오카시)에서 5강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1] 또한 노베오카에서 오스미반도 사이 지역에 쓰나미가 덮쳤는데, 미야자키시 부근에서 4-5m, 노베오카시 부근에서 3-4m, 시부시만 부근에서 2-3m의 쓰나미가 덮친 것으로 추정된다.[2] 이는 휴가나다에 내습한 쓰나미 중 제일 높은 쓰나미이다.[3] 진도 6강을 느낀 사도와라번은 성이 붕괴되고 부유층 저택만 해도 800여 채가 붕괴되었으며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진도 5강을 느낀 노베오카번에서는 성곽 돌담이 무너지고 주택 1,300여 채가 붕괴되었으며 사망자 55명이 발생했다.[3] 사망자는 약 200명이었으며(자료에 따라 편차 있음) 주택 약 3,800가구가 붕괴되었고 휴가군, 나카군 연안 지역은 해일과 지반 침하로 7개 마을이 수몰되었다.[4] 지진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지역명인 미야자키의 돈도코로 촌(현 미야자키시 오자쿠마로)은 지진으로 한순간에 바닷속으로 수몰되었다.[5] 지진으로 1820년대까지 간척 공사를 벌이던 쇼운지 평야 일대(현 JR 규슈 니치난선 운도코엔역 일대)는 다시 강이 되버렸다. 기요타강은 지진의 영향으로 큰 시내로 바뀌었으며 이 시내가 매립된 이후에도 지하 강줄기는 게다강으로 합류하여 흐른다. 현재처럼 기요타강이 휴가나다로 바로 하구로 흘러들어가는 강줄기가 만들어진 것은 1950년대 이후이다. 공양비![]() 미야자키시 기바나 지역자치구의 시마야마 마을에선 지진을 추모하여 50년마다 공양 축제를 열고 있으며, 이때마다 공양기념비를 세우고 있다.[6] 1805년(분카 5년)에 3번째 기념비를 세웠으며, 1862년(분큐 2년)에 4번째 기념비를, 1925년에 5번째 기념비를, 1957년에 6번째 기념비를, 2007년에 7번째 기념비를 세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념비는 파괴되어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상태라 건립 연도를 추정할 수 없다. 첫 번째 기념비는 지진이 일어난 그 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7] 같이 보기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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