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차노 키아루지
루차노 키아루지(이탈리아어: Luciano Chiarugi 이탈리아어 발음: [luˈtʃaːno kjaˈruːdʒi], 1947년 1월 13일~)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감독으로 현역 시절 공격수로 활동했다. 클럽 경력![]() 피사도 폰사코 출신인 키아루지는 피오렌티나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68-69 시즌의 우승 주역이기도 했다. 7년 동안 보라 군단(viola)에서 활약한 키아루지는 1972년에 밀란으로 이적했고, 적흑 군단(rossoneri)의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는데,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대회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우승을 견인했고, 득점왕에도 등극했다.[1][2] 1976년, 그는 나폴리로 미친 말(cavallo pazzo)로 자신과 별명이 같은[3] 조르조 브랄리아와 교체되어 이적했다.[1] 그는 청색 군단(azzurri) 일원으로 코파 이탈리아와 코파 안글로-이탈리아나를 우승했다. 그는 1978-79 시즌에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세리에 B에서 보낸 이듬해에 볼로냐에 입단하여 세리에 A 무대에 복귀했다. 리미니, 론디넬라, 그리고 마세세의 중소 구단을 전전하던 키아루지는 1986년에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팀 경력1967년 튀니스에서 열린 1967년 지중해 게임에 이탈리아 U-21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3경기 출전했다. 첫 경기는 3-0으로 이긴 동독과의 1969년 11월 22일 경기였다.[2][4] 경기 방식![]()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성급한 성격, 주력, 그리고 기술력으로 알려진 그는 미친 말(cavallo pazzo)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빠르고, 활력이 넘치며, 매우 창의적인 공격수로 골냄새를 잘 맡고 공몰이에 능해, 개인기 지향적인 경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속임수, 알까기로 상대 수비진을 농락했다. 그는 정확한 겨냥과 공 배급 능력을 통해 정지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경기를 했다. 그로 인해, 그는 스트라이커나 양쪽의 측면 미드필더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능이 넘치지만, 넘어지는 연기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이탈리아어 키아루지하다(chiarugismo)라는 표현으로 "넘어지는 연기하다"를 뜻하는 신조어를 만들었다.[1][2][5][6] 감독 경력1986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키아로지는 피오렌티나 유소년부 기술진에 합류했다. 그는 감독으로 활동할 때 피오렌티나의 감독 대행을 3번 맡았다.[2] 1992-93 시즌에 키아루지는 잔카를로 안토뇨니와 함께 알도 아그로피를 대신해 지휘했지만,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54년 동안 1부 리그에 속했던 구단이 세리에 B로 강등되는 일을 막지 못했다.[2][7] 2001년 2월, 파티흐 테림 감독이 떠나면서, 키아루지는 1-2로 패한 바리와의 딱 1경기에서 감독일을 대행했고,[2][8] 이후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취임했다. 오타비오 비안키 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극적인 2001-02 시즌에 감독 대행을 1번 더 맡았는데, 시즌을 세리에 B 강등으로 마친 후, 재정난까지 덮치면서 구단이 파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2][7] 2007년 11월 14일, 그는 토스카나 세리에 C2의 포지본시 감독이 되었다.[9] 그는 2008년 9월에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었다.[10] 수상클럽
개인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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