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3일, 경기장은 두 차례 월드컵 우승(1934년, 1938년)의 주역이자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주로 활약하고 밀란에도 몸담았으며, 이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감독을 2번 맡았던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경기장을 명명했다.[3]
경기장은 1925년에 산 시로 동의 밀라노에서 착공했는데, 당시 명칭은 산 시로 신 축구장(Nuovo Stadio Calcistico San Siro)이었다.[5] 경기장을 경마장과 같은 동에 세우기로 계획한 이는 당시 밀란의 회장이었던 피에트로 피렐리였다. 건축가들은 육상 주행로가 없는 민영 축구 전용 구장을 건설해 공금으로 지어진 구장과 차별화했다.[6] 경기장은 1926년 9월 19일에 개장했는데, 35,000명의 관중들이 인테르나치오날레가 밀란을 6-3으로 꺾는 것을 목격했다. 본래 구장은 밀란의 안방 구장이자 전용 구장이었다. 1947년, 도심의 시립 원형구장에서 경기를 하던 인테르나치오날레[7]가 입주하면서 현재까지 두 구단이 안방을 공유하고 있다.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아르만토 론카와 페루초 칼촐라리 두 공학자는 2차 확장 계획을 냈는데, 그에 따라 구장 수용 인원은 50,000명에서 150,000명으로 늘어났다. 칼촐라리와 론카는 수직으로 배열된, 3단 환형 구장을 설계했다. 각각 200m 높이의 19개의 나선형 탑을 통해 관중들은 경기장 상단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건설 중, 최상단인 3단의 관중석이 폐쇄되어 수용 인원이 100,000명으로 줄었다.[8] 이후 보안 문제로, 수용 인원이 60,000명에서 다시 25,000명까지 줄어들었다.
1980년 3월 2일, 경기장은 밀라노의 전설적인 선수 주세페 메아차(1910-1979)의 이름을 따 재명명되었다. 당시 인테르나치오날레 지지자들은 경기장을 메아차 경기장(Stadio Meazza)라고 불렀는데, 이는 메아차가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오랜 기간 인상적인 활약을 벌였기 때문이다.(14년 동안 선수로 활약했고, 3차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밀란 지지자들 모두 경기장을 줄여서 산 시로(San Siro)라고 부른다.
가장 최근에 경기장을 보수한 때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1990년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되었고, 이 공사에 $60M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이 시기에 진행한 보수공사로 경기장은 현대화되어 85,0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되었고, 지붕이 씌워졌다. 밀라노 시의회는 이 경기장 건설에 건축가 잔카를로 라가치와 엔리코 호퍼, 그리고 공학자 레오 핀치에게 맡겼다. 경기장을 확장하기 위해 3단이 추가되었는데,(3단은 남측, 북측의 스탠드와, 서쪽의 대형 스탠드에만 증축되었다) 관중들이 경기장에 출입하는데 사용되는 나선형 경사로가 설치된 11개의 탑이 3단을 지지했다. 콘크리트로 우뚝 솟은 탑들 중 4개는 스탠드 위로 높게 솟아 특유의 빨간 철근이 돌출된 지붕을 지지한다.
1996년, 경기장 내에 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역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 개장되었는데, 박물관 내부에는 역대 유니폼, 우승컵, 선수들 신발, 예술작품, 그리고 기념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마돈니나 더비가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전에서 2003년과 2005년 2번 성사되었는데, 밀란이 모두 승리했다.[9] 2005년에는 패배에 분개한 인테르나치오날레 지지자들이 밀란 선수들에게 홍염을 비롯한 투사체를 날려 경기가 중단되었고,[10] 구단에 벌금이 부과되는 것은 물론 그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 4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는 중징계를 받았다.[11][12][13]
이 경기장은 UEFA컵에서 결승전이 1·2차전에 나뉘어 진행되던 시절에 인테르나치오날레가 출전한 결승전 경기(1991년, 1994년, 1997년)도 개최했다. 유벤투스도 1995년에 같은 대회 결승전을 치를 때 본래 안방인 델레 알피가 아닌 이 경기장에서 '안방' 경기를 치렀다.[16][17][18] 1991년을 제외한 나머지 3번의 결승전에서 산 시로가 2차전 경기의 장이 되었고, 이 경기의 승자가 우승컵을 쟁취했다. 그러나, 1997-98 시즌에 단일 경기 결승전으로 개편된 이래 UEFA컵/유로파리그 결승전을 개최한 적은 없다.
산 시로에서 컵위너스컵 결승전이 개최된 적은 없지만, 1951년 코파 라티나의 결승전이 열렸는데, 4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밀란이 우승했다. 이 도시는 1956년 코파 라티나(이번에도 밀란이 우승)의 개최지가 되었지만, 두 경우 모두 시립 원형 구장(Arena Civica)에서 진행되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범유행 와중인 2020년 3월 25일, 미국연합통신사가 베르가모 연고의 아탈란타와 스페인의 발렌시아 간 이 구장에서 열린 2월 19일 경기를 "0의 경기"(Game Zero)로 수식되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아탈란타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사상 처음으로 통과했는데, 베르가모의 인구 4분의 1에 해당하는 40,000명의 관중이 이 경기를 관전했었다. 그 후 3월 24일에 베르가모 도의 7,000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고, 1,000명이 바이러스의 주요 확산처인 베르가모에서 넘게 사망해, 이탈리아에서 전염병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19]
신구장 계획
2019년 6월 24일, 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산 시로를 대체할 신구장 계획을 발표했다. 60,000명을 수용할 신구장은 산 시로 옆에 세워질 예정으로 800M USD의 예산을 들여 2022-23 시즌을 앞두고 완공할 예정이었다. 경기장은 미국조지아 주애틀랜타의 메르체데스-벤츠 경기장을 본따 지을 것으로 조감도가 나왔다.[20]
2019년 9월 26일, 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신 구장 조감도를 둘 제시했고, 예비 명칭을 밀라노 신구장(Nuovo Stadio Milano)으로 명명했는데, 두 조감도는 각각 파퓰러스와 MANICA가 제시했다.[24][25] 2020년 5월 22일, 이탈리아의 문화관광부 당국은 산 시로의 철거에 반대하지 않았다.[26] 2021년 12월 21일, 파퓰러스의 건설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