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슈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1]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2]
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3][4][5][6]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7]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8][9]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10]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