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경기도파주군아동면에서 태어났고, 금촌초등학교, 문산동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학업중단 위기에 놓였으나 야간부 장학생으로 공부하였으며, 체육특기생이었다. 서울대학교 학사 이학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유전공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했다. 졸업 후 토플영어강사를 한 것이 1994년 교육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박정어학원을 설립하여 유학 준비생들에게 GRE, 토플시험을 강습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 토플 책을 만들기도 했다.
1996년 큰 재해를 입은 고향 파주에서 홍수손해를 입은 수재민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며 수해복구 작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고향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2001년 새마을운동 파주시지회장, 파주시 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3년 파주미래발전연구소를 설립, 파주의 미래발전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도 이어갔다. 2007년 중국 샹판대 객좌교수, 2011년 고려대학교 뇌공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중국국립우한대학교 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2004년 참여정부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파주시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득표율 39.53%) 2011년 민주당 교육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파주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공천이 확정되었지만, 공천확정 3시간 만에 파주을 선거구가 야권연대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일방적으로 공천이 취소되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 이후 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거일 하루 전인 4월 10일 다시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었지만, 투표용지가 이미 인쇄되는 등의 이유로 단일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낙선했다.(당선자와의 표차는 4,980표, 무효표는 6,549표) 이후 계속해서 2012년부터 파주을 지역위원장을 역임해왔으며, 중앙당 국제위원장, 원외 지역위원장협의회 협의회장,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47.1%를 득표해 5,713표 차로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황진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